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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조차 유익일 수 밖에 없는 이유[스3:1-1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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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조차 유익일 수 밖에 없는 이유[스3:1-13]

주하인 2018. 4. 4. 09:13


 

3.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 하였다 한다.

그래서

제단을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다 한다 .



 
12.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그리고는

'첫성전'을 보고는

대성 통곡하기도 (기쁨의 통곡.. 아.. 난.. 안다. 그 의미를.. )

' 기쁨으로 함성을   크게 지르기도' 했다.




두려우니

예수님을 옳게 간절하게 바르게 찾았고

성전..

하나님의 성전이 '영혼'안에 제대로 섰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 증거로

통곡이 나오고

기쁨의 함성이 나오게 되니..

두려움은 두려워하여야 할 일이라기보다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할 일이 아니던가?


이게.. 맞는 일인가?

세상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다.

이 땅에만 눈이 고정되어서는

해결해나갈 수가 없는 게 고통이고 두려움이다.


승화.. 라 들어 보았는가?

정신적으로 부족함을 이기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

더욱 높은 경지의 이룸을 이루는 것..

그러나, 그것..

자기 만족으로 끝이다.


통곡.. 기쁨의 탄성.

그 절절함의 대상이

내 이룸이 아니고

내 안에 '성전'이 세워짐..

즉 세상의 눈으로 보아 나와 상관없는 다른 것(죄송.. 성전을 다른 것이라 표현해서.. ^^;) 이

이루어진 것을 승화라 하지 않는다 .

이 승화.

진정한 승화가 '두려움'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 것.

그것은

하나님의 전제로 하여야만 가능하다.


 나.

누누히 고백이지만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면서

세상을 어둡고 두렵게만 바라보아

28살 이전에 죽고 싶어했고

그것을 넘어살게 되니 40넘어서는 암흑이라 자살해야 할 것이라 살던 자다.

그러한 내가 38되며 예수님 첫사랑에 무너지고

60살을 곧 바라보게 되는 나이까지 살게 되면서

'진리'에 눈을 뜨니

이제는 '훨씬 ' 많은 하루의 시간을 '기쁨'과 '소망'으로 살고 있으며

내 .. 생각지도 못하던 자리,

P시에 이렇게 앉아

이 나이에 가장 앞서나가는 수술을 하는 자로 앉아 있다 .

그렇다.

세상의 성공한 자들 (내 친구는 40에 시작한 사업이 1조 5천억짜리 규모로 키웠다하니.. 원.ㅎ) 에 비하면

난. 조족지혈이지만

내 생각하던 부정적이고 안된다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자리 , 위치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냥.. 인도 받다 보니. 말이다.


그러나 특성은 어디까지나 완전 변하기 힘들다 .

가끔..

특별히 하나님의 기쁨을 놓칠 때..

그 분께서 허락되어지는

메마른 감성의 밤 (-> 아실 분은 아시리라. .십자가 성요한님의 표현.. ^^*) 시간에는

두려움이

날 자주 휘몰아 치려 한다 .

'사람'이 두렵고

환경이 그렇고

그런 내가 두렵다 ...


참.. 힘든게 두려움이다.

불안이다.

공포증, 공황장애..

그 1조 5천억을 일군 친구가 내게 한 이야기가 있다 .

그것 경험해보았냐구..

숨이 안쉬어지면서 .. 죽을 것 같은.......

그래서 자신은 어릴 적 부터 나가던 교회를 다시 나가서

절절히 매달린 후 이제는 '선교'에 매진한단다..

할렐루야지 않는가?

얼굴이 다르다.

돈을 추구할 때의 그 번득이던 어릴적 모습보다는

평화와 여유.


나.

비슷하다.

늘 칼끝 같이 예리하고 찌르면 찔릴 것 같던 성품이

그들 얘기로는 달라 보인단다.ㅎ


아직 남아 있는 내 두려움.

두려움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님을

난.. 예수님을 지금 도 붙들고 있기에

곧 감사와 감동으로

통곡과 기쁨의 탄성으로 맞이 하는 하루가 되리라.



주님.

감사합니다.

내 주여.

온통 두려움 뿐이던 시절.

바람처럼 다가오시어서

절 붙들어 주신 첫사랑의 은혜로 인하여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주님.

저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매사 두려움을 극복한

하나님 성전의 완성후 질러지는

탄성과

눈물과

기쁨을 봅니다.

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

또 다시 주님을 향한 눈을 듭니다.

두손을 들어 감동의 찬양을 드립니다.

내 주여.


슬그머니 제 자리를 차지하려는

두려움의 고통들을

기쁨을 받아 드립니다.

그로 인하여

주님을 더 깊이 매달리게 하는

약함이 강함임을

다시금 체험합니다.

내 주여.


감사드리며 오늘을 바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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