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안의 요동 본문
(마23:23-33)
아니나 다를까.
주님의 말씀은 다 맞습니다.
마치 예언처럼 맞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올바로 묵상을 하지 못하여
듣지 못하고 마음을 다잡지 못하니
'안'이 흔들려 버렸습니다.
오늘 묵상도 급히.. 늘 하듯
적용 부분도 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쫓기어
겨우 올리는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을 하니
'안'을 달래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감있게 듣지 못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영혼의 맑은 흐름에 대하여 잊고 있다가
여지 없이 속이 흔들려 버렸습니다.
비뇨기과 선생이 와서
격하게 반응을 하고
결국 나에게 사과한 후 돌아갔으며
과정에서 난 나름대로 정하게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과정에서 차분했던 내 마음에
부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거운 마음이 자꾸 나를 무겁게 누르려 했습니다.
그래도 신앙생활을 한 시간이 좀 길어졌다고
겉으로 표출은 안했습니다.
2시 부터 교회에서
성가대가 아닌 '찬양팀'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주관한다하여
그리 필요성을 못느끼지만
그냥 멍한 마음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나름대로 얻은게 많았습니다.
아내는 배우는 게 많습니다.
모임에 갔다가 찬양팀 세미나가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교회 정문에서 만났습니다.
만난 김에 식사나 하고 들어가려고
음식점에 들어 갔습니다.
난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해야
마음이 풀릴 듯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리 공감을 잘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예리하고 판단력은 뛰어나지만
감성은 많이 부족한,
한마디로 '바른생활 녀'의 표본 같은
그래서 찬양의 목소리도
기교라고는 전혀 없고 맑고 얇은 목소리로
마치 찔러대듯 발하여
나랑은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그러면서 그게 내 영혼에 많은 힘을 주어
내 지난 수년간의 찬양인도에 힘을 주는
그런 특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래도 난 누군가의 위안이 필요할 듯하여
아내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음식 판 메뉴를 보고 있는 아내는
내 말에 건성건성 대답하더니
막상 열심히 이야기 하려는 나에게
'여보 뭐 먹을 래.. '하면서
뜬금없는 메뉴판을 들이미는 게 아니겠습니까?
단골로 뻔한 음식점에
늘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우리들인데..
힐끗 쳐다보이는 아내의 얼굴은
어이없는 투정이다.. 라는 표정으로 순간
내 눈에 띄어왔습니다.
그렇잖아도 속이 뒤틀리는 것을
위안 받고 싶었는데 ...
뒤이어 아내는 또 예의 '훈계' 같은
영적인 이야기 - 연단.. -을 하려 하였습니다.
순간 속이 '확' 뒤틀리네요.
무거운 내 속에
돌덩어리가 하나 더 올려진 듯한 느낌이 들어가며
화가 올라옴을 느꼈습니다.
입을 닫았습니다.
그리고는 식당에서 나와
아내를 들여보내고
난 병원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1시간 더 있으면 '성가대' 칸타타 연습하러 가야 합니다.
나.
그리 열정적으로 봉사 구제.. 이런 것하고
교회 행정에 열심히 참가하여
중요 보직을 가질 욕구 있는 사람은 아닌데
오늘은 그리되느라 그리 바쁘게 되었습니다.
찬양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찬양에 대한 참여로..ㅜ.ㅜ;;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돌덩이 얹어진 것 같았습니다.
'미움'
'억울함'
' 또 난...이란 무게'에
' 아내'에 ..........
진료실에 들어와 앉아서 컴을 켰습니다.
반가운 분들이 리플을 올리셨네요.
그러다가 문득 '신학'이란 이름의
정체모를 분의 리플이 두개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영혼'에 대한
귀신에 대한 ..나름의 이론적 베이스와
(이전에 '귀신들림'과 '정신병'이란 논문을 쓴적 있습니다.)
축령복음 병원의 모 정신과 선생님의
귀신들림에 대한 폭넓의 의학자의 견해를 쓴 글을 감명깊게 읽으면서
나름대로 영적인 원리와 신학을 이해하게 되고
거기에 '의학적' 베이스로 썼던 글입니다.
그 때의 지혜는
지금 진료실에서
많은 분들에게 영적 육적 심적 통찰을 주는
기회가 되고 있고
그를 통하여
주님을 증거하는 토대가 되고 있는
나름대로 사랑하는 내 글입니다.
거기에..
아래와 같이
신학하시는 듯한
'신학'님의 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전...
그 '신학'이란 뉘앙스에서
이제 갓 신학을 시작한
열심있는 젊은이의 뉘앙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자신의 블로그나 정확한 이름조차 내세우지 않고
'신학'이란 '가명'을 쓰며
그 뒤에서 신학의 위명을 힘입어
자신의 이야기에 힘을 싣고자 하는
심리적 허약성을 읽었습니다.
그러한 논리적 배경은
'이단'이란 소리가 너무 쉽게 나온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처음보는 사람.
더구나 신학을 하는 사람이 아닌 '주하인'에게
'이단'이란 표현을 쓴 것,
더구나 그 글이 5년도 넘은 것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몰라도
아마도 써핑 중 '귀신'이나 '영혼'의 글에서
들어오신 기회에
자신의 알고 있는 신학적 기본과 다른 소리를 하니
대상을 불문하고 '이단'의 소리를 썼을 것을
아주 쉽게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제 블로그가 '귀신'을 퇴마하는 내용의 성격이 아님을
조금 만 읽어보거나
블로그 타이틀 사진 위쪽의 글에
' 매일 주님의 말씀의 감동과 순수한 영혼이 되기 원하는
나와 선택받은 다른 소수를 위하여..'라는
글을 한줄이라도 읽으셨더라면
그러한 이단 논쟁은 펴지도 않으셨었을 것을...
내 블로그의 특성이 '큐티'인
'발칙한 큐티'란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내가 의사이지 목사님은 아닌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생각하셨더라면
저리 아픈 '이단'이란 소릴
이런 귀한 주말에
억지로 찾아와서는
'신학'이란 귀하디 귀한 이름 뒤에서
함부로
싸우기 위한 논조로 걸지는 않앗을 것을...
난,
속이 상했다.
'왜 이땅에는 이렇듯 싸우려는 사람들 만 많은가?
왜 배웠다는 사람들은 조금도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가?
왜 신학을 한 사람들은 '사랑'이 가장 기본인
하나님의 원리임을 조금도 행하지 않으려는가?
처음보는 남에게
자신을 밝히고
자신은 어떠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어떠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주실 수 없는지
조용히 물어보지 못하는가?
왜 메일쓸줄도 모르는가?
이렇듯 숨어서 남에게 함부로 '이단'정죄해야
마음이 편하던가?
그래서 살림살이에...ㅎㅎ..도움이 될..........'
그래서
위에 보듯이
조금 날카로운 답글을 남겼다
무거움이 천배 만배다.
그들에 대한 속상함보다는
실은
난 내 자신에 대한 속상함이 더 컸다.
말씀대로 성공한 게 하나도 없다.
세명과의 대화에서 모두 졌다.
주님의 말씀대로 된게 하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함과...................'
오늘 묵상은 틀림없이
내 '안'
내 내적 상태의 깨끗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보라.
무엇하나 성공한게 있던가?
그래도 그리고 나서는 성가대 연습에 갔다.
마음의 무거움이 더하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르다.
할 것은 한다.
내 엉터리 같은 심사도
' 깊음도 높음도 천사도 세상의 권세잡은 자도
속상한 나도
그 안의 사단의 획책도
상처의 아픔도
내 실수도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을 끊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
그리고는 아홉시 넘어서야 나와 집으로 행하다가
기도원에 행했다.
기도원에 가서
십자가 밑에 앉으니
머리가 빙빙 돈다.
'주님 아시지요?
' 주님 왜 나는" 하다가 그냥 왔다.
난 이렇다.
이렇듯 연약한 자 다.
정말 그런자다.
주님 예수님의 도우심이아니면
난 죄덩어리 죄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난 숨도 못쉴 만큼 눌려 있을 것이다.
주님.
그 주님은
내 속 사람에
그래도
회복의 바람을 불어 넣어 주심을 느낀다.
실패.
실패를 통하여
좀더 내 속의 깨달음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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