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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활의 흔적들( 마 28:11- 2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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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활의 흔적들( 마 28:11- 20 )

주하인 2010. 4. 5. 11:07

제 28 장 ( Chapter 28, Matthew )

 

 

나의

삶에 주신

주님

부활의 흔적들을

 

나의

영혼에 허락하신

생명의 기운들을

손 흔들어

환영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미 되신

주님의 부활을

열렬히

찬양합니다  

 

 


11.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모든 된일.

이미 일어난 일.

그게 무엇인가?

'부활'이시다.

부활은 무엇인가?

생명의 돌아옴이다.

 나와 모든 육체를 가진 살아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돌아옴은 무슨 의미던가?
사망이 막지 못함이다.

사망은 '아담' 이후로 우리 인류에게 들어온

모든 죽음의 증상들이다.

갈등, 부정, 멸시, 병, 장애............모든게 사망의 증상들이다.

꽃은 아름답다.

특별히 그 위에 이슬이라도 몇방울 뿌려져 있으면

그 생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아이는 이쁘다.

아이의 포동거리는 볼과

그들의 쫀득 ^^~* 거리는 피부와

그들의 웃는 눈과

그들의 움직이는 팔의 궤적과 손가락의 꼬물거림...............은

생명이 용솟음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꽃과 아기로 대표되는

생기와 생명의 존재들도

시들어 가고 아플 수 있기도 하다.

 아픈 것은 '사망'이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우리 육신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숙명이 된 탓이다.

'상처'

세상에 상처없는 자 누구랴.

비록 그 정도는

사람에 따라

환경에 따라 천차 만별이겠지만

그 것 역시 사망의 흔적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상처로 허비하고야

눈을 감는 자들이 많던가?

 부활은

우리 삶이 점차로 생기로 가득차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 영혼의 젊음은 차이가 없어질 것이며

육신 역시

그 믿음에 따라 

사망의 흔적인 병으로 부터

점차 자유로와질 것이다.

삶은 생기가 그득해질 것이다.  

 

 

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그  

' 이미 된 모든 일'

이 부활은 '주님 '예수님을 믿으며

벌써 우리 들에게 와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예수님,

그 놀라운 분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 그 진리가

내 삶속에 그리 큰 효용을 나타내지 못함은 웬일이던가?

 의심이다.

의혹이다.

그를 가로막는 '상처'의 이유다.

 만일 부활이 내 영혼에 크게 각인되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다면

난 아마도 세상을 '주유'하는

깨달은 자가 되어 살다가

초연히도 주님 나라에 가게 될 것임이 믿어진다.

 

 

 어제 부활 주일.

예배를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부활주일.

내 깨달은 바에야

주님의 부활,

그 이미된 사실로 인해

내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림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혼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집으로 오는 길.

 내 직장의 리더께서 같은 교회를 다니신다.

그 분의 간곡한 부탁으로 당신 대신 '영어 예배 찬양 팀'으로

참여해달라하여 사전답사차 참여 했다가

귀가가 늦어 아내랑 따로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걸어가며 오랫만에 따사로운 햇빛 아래

사진을 찍으며 갔다.

부활을 축하하는 듯 해는 맑으나

마음은 아직도 그리 맑지 못하다.

날 오랫동안 붙들었던 '부정적 '생각이 올라오려 한다.

아침 묵상이 '갈릴리로 가라'다.

오랫동안 말씀 앞에 평화를 누리면서 게을리 되었던

'죄'와의 싸움을 늦추었다는 말씀 같게 느껴졌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 외로움'은 주님과의 시간을 늘이는 기회고

두려움은 주님께 더매달릴 기회고

..................다.

문제는 그것을 해결하려 몸부림치는 것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면 그게 옳은 것이다..라는 것.

머리 속으로 알던 것이 깨달음이란 느낌으로

조금은 가슴으로 내려오는 듯 하다.

그게 '자연스러움'이다.

그게 성경 말씀의 '약해짐을 기뻐함이고 곤란함과 핍박과 궁핍을 기뻐함'이고

그게 '약할 때 강해짐'이다..라는 생각이 들며

그것을 인식하고 내 곤란한 부분들을 들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갈릴리로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걸어가며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 이게 제 생각 만은 아니던가요?'

' 아니다.  

 네 깨달음이 옳다. '

아주 잠시 지만 그런 마음이 들며

그게 내 안에 옳게 강하게 자리잡는 일이 되면

그게 바로 '부활'의 주님의 뜻이 아니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처럼 즉시 기도하면 응답받고 회복되고

더 이상의 흔들림이 없는 나날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조금은 더 자연스러워 졌다.

 

 

 아침에 진료하는 데 '순결'한 처녀가

달달이 해야할 일의 걸러짐으로 ^^; 내원했다.

 복식 (배) 초음파를 보니 -이런 경우 뱃살이 많아 배 초음파가 어려우면

항문 초음파를 해야한다. ㅜ.ㅜ;;;-   다행이도 잘보인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

 어머니가 아이가 '살뺀다고 킥복싱 하고...' 했다 한다.

그게 원인일 수 있다.

교회를 다니냐 하니 다닌단다.

' 역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생리없음은 그게 원인일 듯은 싶다.

 그러나 3달은 지나야 우리는 이상이라 본다.

 따라서 검사는 필요없다.

 네가 참 이쁘다. .

 요새 아이들........................

 성적 문란..... 건강의 엉망.........남자들 만....여자는

철저한 희생...... 넌 그래도 예수님 믿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야기를 진행하니

어머니와 처녀 아이의 얼굴이 기쁨으로 그득해서

날 바라보며 연신 '잘 왔다, 잘왔다'를 어머니께서 되풀이 하신다.

' 살 빼는 것.

 그것도 과도한 기준.....세상의 기준..... 하나님 믿는 자는

 달라야 한다.

 넌 배가 얼마 없다. 

 증거가 배초음파가 잘보인다는 것이다. ^^~*

킥복싱.. 하지마라.. ' 했다. ㅎㅎ

처녀 아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환우들,

특히 젊은 처녀들을 설명하다 보면

예수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가 많다.

정말이다.

믿는 처녀들, 그 중에서도 기도를 많이 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다는 물론 아니지만 훨씬 많은 빈도에서

그들의 영혼이 순수함을 느낀다.

난, 예수님 믿으며 가장 좋은 것이

그들이 덜 죄악에 굳어짐,

그들 영혼이 훨씬더 선한 영향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축복임을 느끼곤 한다.

그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다.

끄덕이고 기뻐하신다.

 

' 부활'

나의 예를 설명했지만

그게 어쩌면 내 인생,

아니 내 일상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했다.

하지만 벌써 내 삶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부활의 증상들이

날 사로 잡고 있고

당연히도 예수님 영접하지 않고

그 분의 부활의 영향이 없이 지금껏 살아 왔더라면

내 인생이 진행되었을 현재의 모습  - 상상을 해보면,

혈압으로 반신불수 되어 있었을 수도

아마도 호호백발의 찌그러진 할아범 모습을 보일 수도

얼굴이 야차 같을 수도

담배에 쩔어 독방 팔순노인 냄새 날수도

머리 털이 많이 빠졌을 수도...

무엇보다 우울증이 생겼을 가능성이 많고

자살했을 수도 있다.

가정은 이혼........이구........

내 성질에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에 비교하여

부활의 증상들이 많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모녀를 통해 짐작하고 깨달아 본

내 부활의 증거들이다.

 

 그렇다면  주님의 부활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야 하는가?

'긍정'이다.

이전의 부정적 상황은 내려 놓고

주님의 주신 소망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그럴 것인 '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이고

주님이 내 인생에 주신 변화가 사실이고

앞으로도 부활로 날 계속 변화시킬 것이고

그것을 '성령'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 믿느냐'

'믿는 대로 되리라' 하신 말씀대로..

 

 오늘 묵상에서 '유대 바리새파'들은 철저히 사실을 '은폐'했고

은폐한 사실을 진실로 믿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말게 되는 것이다.

 

 나.

내 삶이 조금 더 부활의 역동과 생명으로 그득찰 시간이 당겨지기 위해서는

늘 주님의 부활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주님을 믿으면 주님이 주신다.

주님이 날 해방시키고

주님이 날 부활시켰기에

이전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전것은 사라지되

보라

새 것이 왔도다. '

그렇다.

새것이 올 것 이다가 아니다.

새것이 왔다.

 

문제는

'내 믿음 뿐이다.

부활을 감사하는 마음 뿐이다. 

그것을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함 뿐이다.

 

 

적용

1. 부활은 사실이다.

 믿음 만이 필요하다. 

 많은 부분 변했다. 

 앞으로도 더 그럴 것이다. 

 속도는 내 믿음에 달렸다. 

 

2. 아버지 학교 간다. 

 주님께 대한 내 최소한의 헌신의 표현이다. 

 

3.  의혹

 사실처럼 다가오는 '부정'의 생각들.

그것을 즐기는 것을 마치 '내 지혜의 산물처럼 착각'해왔다.

그것은 바리새파의 의혹이다.

 

4. 성경 여덟장 읽겠다.

 말씀 만이 살 길이다.

 

5. 변한 내 모습과 부활을 묵상한다.

 

6. 주님을 위하여 내 약한 것들을 기뻐하자.

  내 모든 부족함과 어려움은 주님을 위해서 그리된 것 뿐이다.

  자동적으로 그리 인식되기를 바라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자.

 

 

 

기도

 

  주님.

부활이후십니다.

부활절이면 새삼 내 삶이 확하고 바뀌는 것을 기대함은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것을

내 믿음의 연약함으로 오인하게 하는

매년의 시간들이 되풀이 되고

그러함에 따라 어떤 분들의간증 같은

완전한 돌아섬이 없는 내 모습이

한편 '추악'하게 느껴지기 까지 할 때도 있었습니다.

주님.

그러함에도

진실의 부활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 안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그러하심을 인도하시는 것 조차 주님의 뜻이심을 믿는 믿음이

확고히 내 영혼에 자리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변화없는 내 삶의 틀은

그러한 외로움을 통하여 주님 만날 시간을 더 늘이시고자 하는 뜻이시고

그러한 고난과 아픔을 통하여 주님께 더 기도할 시간을 늘이시고 자 하시는 뜻이시고

그러한 사실은 아직도 내게 고칠 부분이 많음을 알려주시기 위한 의도시고

그러함에도

실은 '부활'은 벌써 내 곁에 와 있음을 인정하는

나의 영적 성장을 발견하는 기쁜 기회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심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주님이시여

날 도우소서 .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고 

깨달은 것 

또 흘려 버리고 

또 잊어 먹고 마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게 하소서. 

간절히 비올 것은

날 주님의 뜻 안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소서. 

그런 나를 기쁘게 받아 들이고 인정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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