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난 지금 어느 광야를 밟고 있는가[삼상24:1-22] 본문
1.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누가 그런다.
" 다윗은 엔게디 광야에 있네요"
광야.
인생광야에도 비유가 되며
출애굽 이후연단과정이어서
가나안,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 품성에 맞도록
우리의 거친 품성을 갈고 닦아내어
정결화된 영혼이 되어 가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한...
난..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어떤 광야를 밟고 있는가?
나를 향해 사람들은 어떤 광야에 있다고얘기를 할 것인가?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의 나에 대한 비평과 평가는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면서
조금더 합리적으로 날 보는 방편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소리로 받아들여
더 회개하고 겸손하면
그것이야 말로
다윗님이 왕이 되기 위해 버티어 나가는 과정처럼
제대로 가게 되는 것 아닐런가?
5.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보라.
같은 일을 당해도
다윗은
사울을 적으로 알기보다는
하나님의 기름 받은 자로만 보려 애썼다.
어찌 가능할까?
하지만 하나님 기뻐하시는자의 모범,
우리의 마땅히 생각해야 할 지표적 모델이 아니던가?
나.
인생 엔게디 광야에 서 있을 지 몰라도
내 속의 흐름은 이제
이리 흘러야 하지 않겠는가?
잘 싸우고 있다.
열심히 넘어지지만 열심히 일어서려 한다.
다윗의 광야에서 바라보던 황량한 광야에서의
활량 보다는
하나님의 임재와 뜻을 보려 노력하는 것처럼
나도 그리하리라.
아직...넘어지고 쓰러지지만
그러면서 자꾸 일어서며 더욱 성숙하리라.
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사울은 좀다르다.
그의 착함,
그의 착한 반응도 모두
규칙과 기준이..
"나"다.
자기가 기준이 되어서 타인을 의롭다 한다.
어느 사람이 안그럴까...
사는 이유의 근본이 자기를 드러냄이라 얘기하다.
자아 욕구가 없어지면 살 이유를 모르는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기본이다.
자기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더 이상 세상에 용인이 되지 않으면
그들은 서슴없이 자신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들은 광야에 살되 그것은 넓은 들의 광야가 아니고
미친 들이 된다.
들을 인식하고 인정하기 싫어하다가
결국 궁극적으로 마주 하는 그 절명의 진실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게 인간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어느 광야에 서 있는가?
나는 잘 서있는가?
무슨 생각으로 이 허무의 광야에서 내 삶을 보둠고 있는가?
하나님이시던가?
그렇다면 난...든든하다.
그렇다면 난 계속 흐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난 점차로 성장하고 변화될 것이다.
계속....
주님.
귀하신 내 주님.
아직도 벗어나지 못화는 이 영적 엔게디 광야를 봅니다.
성장 과정의 출애굽의 광야의 한 부분 중
내 인생에 내게 특화된 내 엔게디 광야요...
거기에 발을 딛고 살지만
그 곳이 넑고 크신 하나님의 우주, 하나님의 만드신 별, 하나님의 가늠할 수 없는 광할한 품이 아니고
두려움의 미친 광야가 되지는 않고 있는지요.
주님.
다행이도 매일 같이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묵상하는 한
제 슬그머니 찾아드는 광야의 미친 소리들이
제게는 해당하지 않음을 믿습니다.
주여.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주님 만은 아시는 지 압니다.
제 광야의 삶이 아직, 주앞에 갈때까지 계속되겠지만
점차 잘 적응하고 변화되어
점점 더 나은 광야레 임하길 원하빈다.
주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성화를
이땅에 있을동안
우리 주님의 성령, 십자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그리될수 잇길 원합니다
오늘
다윗의 말씀을 통하여
주하인아...너는 과연 어느 광야를 밟고 있는가 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주님뜻대로 참아 발전해내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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