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기도는 황홀하다[행22:12-29] 본문
문득
걸어가다 올려다 본 하늘에 걸려있는
십자가가
뚫고 들어오듯
내 가슴을 흔듦은
그리고 그 하늘에 걸린
구름과 겨울하늘이
그리도 아련히 보임은
이 버겁고 모진세상 살면서
오직 내 의지할 곳은
주님 밖에 없음을
이제
내 전 영혼이 확신함이요
그를 알아
솟아오르는 힘듦을 참아내며
두눈 질끔 감고
우리 주 예수 십자가앞에 다가갈 때마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과
눈녹듯 녹아내리는 버거움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그 황홀한 기쁨
내 안에 누려지는 천국의 감동으로
날 맞아주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하심의 기억 탓이다
아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
언제나 만나주시는 주님
감사 감사
진정 감사할 뿐이다
17.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기도할 때 '황홀한 중에'... 라는 구절이
눈에 뜨인다.
기도..
황홀한가?
아..
난..
황홀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
그래..
왜 난 이 표현을 잘 쓰지 못했지... 라는 후회가 들정도로...
실은 .. 그런데
기도하는 내 이유, 아니.. 많은 분들... 사도 바울 님의 그 시점을 돌아보아도
황홀할 만한 상황이 되어서 기도하는 분은 거의 없다 .
오히려 황홀할 정도로 성공할 때는
잠시의 감사를 올리고는 오히려 더 기도가 짧아지고 약해질 수 밖에 없다 .
기도하는 상황은
정말 , 진정, 감사할 때 해야 하지만
이 미련한 인간들, 특별히 나는
어려울 때 기도한다 .
그런데 그때 만나주시는
하나님.
성령의 깊은 임재감은
황홀하다는 말이 참 .. .족하다 .
상황이 변할 것임이 예견되는 기쁨,
상황이 변화되어지지 않더라도 찾아오는 든든함,
상황과 상관없이 나를 채우는 충만함.
상황을 넘어서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망'의 기대감..
어찌 표현을하더라도
그 자체가 '황홀'함...이 맞다.
비록..
우리의 영적 성장, 우리의 심리적 불안정, 현실을 매개로 한 사단의 더 큰 누름이
눈을 뜨면 잊어 먹게 해도
그 때의 그러함은 '황홀함'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기도하려면 하지못하게 유혹하고 , 막아서는 영적 방해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버겁고 힘들고 하더라도
'기도'를 더 힘쓰게 되는 것이 아닐런가?
비록
황홀한 감동에 대하여
눈을 뜨면 잊고
기도하려면 더 버거운 공격이 와도 말이다.
기도는 황홀하다.
그래.. 기도는 황홀한 것이 맞다.
그래서 더 기도해야 하고
황홀함이 눈을 뜨고도 유지가 되고
그 황홀한 하나님의 임재감이 그리워 더 기도하도록 하시는 원동력이다 .
하나님은 황홀하신 분이시다 .
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기도'다 .
기도해야 한다 .
더 그래야 한다.
하나님.
머리가 아프려 하고
마음이 쪼개기려는 듯하고
불안하려 했습니다 .
그러나...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괜찮아 졌습니다.
미래가 ,
현실이
날 누르려 해도
난.. 현재의 하나님을 기도로 만나고 있습니다.
미래 마져 바꾸고
현실을 변화시킬 하나님을
기도로 만나고 있습니다.
황홀하신 하나님은
황홀한 기도의 기억을 자꾸 떠오르게 하시어
내 죽어
주님 앞에 가게 될 그때까지
'나를 변화 시키어
점점 더 나은 내가 되도록 하실 것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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