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도 선한 자의 궁극적 선[시73:1-16] 본문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절대로 이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나, 주님의 내게 대한 선한 보응을 믿고
내가 결국 '선'해질 것임을... "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그러나, 난 ..
아.. 나 뿐이랴..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는 많은 분들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것..
그들을 실족시키고 답답하게 하는 문제.
더 나아가서는 '불신앙', 실족의 문제까지 다다르게 하는
본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악인의 형통함이다.
오만한 자를 포함한 악한 이 들의 형통함을 질투함이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그들의 한없이 잘사는 듯한,
그러다가 죽을 때조차 어려움이 없는 듯한..
그러함으로 '시험'에 들고 실족함이다.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악인이 누구인가?
오만한 자인가?
포악한 자 인가?
그렇다면 난.. 오만하지 않은가?
난 강팍하고 포학하지 않은가?
솔직히 .. .죄송하게.. 정말 주님께 면목없지만
교만과 강포가 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날 특징지우는 특징 중의 하나일 게다. ㅠ.ㅠ;;
나 스스로도 매일같이 날 쉴사이 없이 파고드는 교만한 생각과 그로 파생되는 '화'로 인하여
깜작깜작 놀랄 때가 너무도많다.
외부로 표출하다가 급히 자제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모르게 그래 놓고는 후회는 수도 없이 많고
강한 사로 잡힘으로 회개가 싫어질 때도 많다.
그러고는 난.. 스스로를 자책하고 내 한계에 답답해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난.. 악인인가?"
처음 '記者가 쓴대로 난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여
저들 악한 이들이 형통한 모습을 받아내지 못하는 것이던가?
하나님이 나를 '선한 보응'을 받지 못할 악한 행동을 하기에 축복하지 않으심이던가?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 생각해야 할 2가지가 드러난다.
첫째로 , 하나님의 '축복'은 과연 이 땅에서 국한되는가?.. 다.
다시 맒하면 우리가 바라는 '형통'이 ' 하나님의 선' 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영생'까지 확장을 시켜 진정한 '선'을 정의한다면
이 땅에서의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하는가?
또 그렇다면 이 땅 살 동안 우리, 특별히 이 낮은 영성과 조급한 성품의 주하인 같은 자들은
이 땅을 버틸힘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둘째로 , 진정한 '악'에 대한 것이다.
악한 자들과 그들을 악하다고 바라보는 측의 '선'한 편에 선다고 하는 나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다.
나도 교만하고 강포하다.
그들도 그렇다.
그렇다면 악과 선'의 구분이 되는 기준점은 무엇일까?
여기서 말씀하시는 '악인'의 대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고
선한 편은 ' 하나님을 믿는 자... 그 중에서 말씀대로 살려 는 자' 다.
비록 그들의 마음에 동일한 '교만'과 '강포'가 있더라도
선인과 악인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세 상의 잘 나감은 그 축복의 본질이 아니다.
오히려..
난... 교만과 질투와 강포를 죄~송하게도 아직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인해 '고민'하고 '갈등'하고 '회개' 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함은 실은
세상의 많이 가지고 못가짐보다
그 것을 가지고 있음이 더 불행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무리 많은 누림을 누려도
그러한 교만 , 강포.. 등으로 인한 갈등 조차 없이 '마비' 된 자들의 영혼이 겪어야할 현상(심리적이든, 관계적이든...) 진정 '불행'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징계'라 생각한다.
점차로 난..
말씀대로 '갈등'하고
그러다가 아주 적은 빈도지만 '주님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조금씩 이겨나가면서 느껴지는 영적인 평안,
하나님이 나를 보고 웃으시는 듯하심을 느끼는
임재의식이야 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길 바 없는
진정한 '행복'임을 점차로 깨달아가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게 되고 있다.
나.
평택에 와 있다.
가까운 곳이 천안이다.
내 출신 고등학교가 '천안 BI 고등학교' 다.
그 출신 후배들 중 의대 후배까지 되었던 동문 들이 꽤 있다.
1기 선배인 나와 2, 4기...신생 고 출신의 의대 동문 들이 얼마 안되어
제법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에 따라 , 관심에 따라 세상에 나가서 점차로 차이가 나게 되고
30여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연락이 끊겼었다.
고향으로 내려운 후배들 대부분이 큰 성공을 이루었다.
그게 중요치 않은 지는 알지만 이곳에 '과장'으로 봉직하려 내려오면서
가장 큰 선배로 연락을 하기가 그래서 가만히 있던 중,
며칠 전 새벽녁 깨인 잠에 스마트 폰 검색으로 후배들을 찾아 보았다.
얼굴에 시간이 많이 내려 앉은 후배들이 었지만
이제 되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제적 성공들을 이루어 냈다.
나.
세상의 평균보다는 낫지만 가장 큰 선배로 비교의 마음과
표현키 어려운 속상함이 사로 잡았다.
그 새벽의 잠을 물리친 후 정리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던
비교와 질투와 ......내 가치의 체계가 다시 혼돈이 되려 함에
하루 종일 많이 갈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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