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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도해야할 이유[욘4: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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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기도해야할 이유[욘4:1-11]

주하인 2022. 4. 24. 09:11


내 손녀가 기도하면
정말
어찌 할 바 모르게 사랑스럽다.
그 기도하는 목소리에 온 세포가 찌르르 찌르르하고
그 마주 잡은 손이 하루 종일 뇌리에 남아
홀로 피식 피식 거릴 정도로
온통 이쁘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수 없다.

아이
어찌 아이의 단점이 없으리라
가끔은 앙탈도 부리고
가끔은 어이없는 반항도 하지만
아이라서 이쁘다.
내 손녀라서 사랑스럽다
아이가 날 할아버지라 부르고
내 가정 안의 한 존재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 안에서 소통을 끊이지 않으려 하니
그 모든게 자연스럽다

나.
자주 분노하는 자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내 영혼이 알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그 분과의 소통을 은혜로 깨닫는 자이니
내 어쩔 수 없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시
자유를 확인 받는 듯하다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행복하다
주님 안에서의 자유가
사랑스럽다
대견하다
스스로..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이 자.
요나는 조금 , 아니 많이...^^;; 황당한 자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가까이서 모시어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선택을 하셔서 니느웨에 선포하라고까지 할 정도로
영적으로 민감하고 사랑 받는 자면서도
하나님께 정면으로 대적 (대적이 그의 이기심 때문이였으면 정말 대적이 맞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어찌할 수 없는 성품적 대적은 그냥 봐주시나 보다... ^^;)하듯 대드는 기도를 하는
황당한게 맞는자다.
보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낸다고 나온다. ㅜ.ㅜ;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그러면서도 '기도'한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성내고 있는 거'다. 하이구..
기도의 내용을 보면 더 황당하다 .
'내게 이렇게 이렇게 얘기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내가 도망하였는데도 주께서는 은혜.... 로우신 분 아니셨어요?
주께서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 내가 알았어요.
하나님..
그런데 난.. 죽고고 싶을 만큼 싫습니다. ..' 라고 한다 .
비아냥 거리는 말투도 보이고
정면으로 하나님 말씀에 반대하며
격한 어조로 거부한다 .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그런데
주께서는
'얘야'(내 상상ㅎ )
'네가 성냄이 옳은게 아닌거 같구나'.......
아..
용납.
엄청난 편애.
이전의 그 누구도 받아 보지 못한 어리광을 받아 주시는 느낌.
그게.. 이 몰상식한 듯한 요나에게
하나님이 대하시는 느낌이시다.
마치 , 잘못 기른 과보호 몇대독자 아들에게 쩔쩔매는 듯한
왜곡된 부모 같은...(주여.. 죄송합니다. )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그럼에도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께서
어찌되나 호기심을 놓치 않고 니느웨를 내려다보는 요나에게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박넝쿨을 통하여 깨우침을 허락하신다.
' 네가 이리 분노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음을
내 말을 들으면 잘 이해가 가리라.
네가 좋아하는 이 박넝쿨을 네가 기르지도 않았음을 보면(이유없이...논리 없이.. 그냥 자신의 주관으로... ^^;)
네가 미워하는 니느웨도 어찌 아니라 할까?
하지만 보라......
이 큰 성읍 니느웨는 ...내가 아끼는 .......'라시며......

무엇을 내게 보이시는 가?

나.
성내며 분노하는 요나의 마음을 잘 아는 자.
그러하면서도
정말 다행이도
하나님을 놓지 못하는 자.
이 분처럼 거세게 하나님께 반발하며 저항하지는 못하지만
그 것이 어쩌면 요나는 분노하지만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
그 분이 정말 자신을 절대로 끝까지 놓치 않으시고
자신이 그러한 분노를 통해 회초리는 드실 것이지만
그러함에도 자신을 사랑하심을 잊지 않아
'장애의 수준까지 내려온'
자신의 분노조절 장애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비교적(그래 비교적이다. 더 성숙하려면 분노를 이겨야지.. 사랑으로... 그 부분에 요나는 서 있다. ) 자유를 누리는 자다.

그는 잘못에도 불구, 스스로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을 놓지 않았다 .
죄송하거나 눈치 살피려 도망다니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극도로 화낼 때마져도 찾아와 위로해주신 하나님이 이유시지만..

정말 중요한게 이거다.
어떤 마음의 어려움,
어떤 현실적 문제
심지어는 스스로 장애라 느껴질 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자신의 앞에 있다 하고
현실을 막아선다 해도
무조건
주 안에서 해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후폭풍과 장해물이 가로막더라도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게 비로 '분노조절장애'인 요나라도
무조건 주님 앞에서 아뢰고
주님 안에서 해결 받아야 한다.
최소한 상급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는 떠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어찌 허락받은 자격인가?
어찌 누리는 자유인가?
어찌 받은 예수 사랑 안에서의 행복인가?
어찌 찾아볼 수 있는 은혜인가?
.......
아......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 사랑..............
아......유일한 통로, 유일한 이 땅의 허무에서 탈출할 기회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찌 우리의 미련함으로
잠시의 '분노'와 그 후폭풍에 휘둘릴 손가?



주님.
오늘은 그리 분노하고
그리 억지를 부리고 있는
아이 심사같이 불 타는 요나의 심성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기도하는 자의 모습을 봅니다.
비록 하나님 앞에 비아냥 대는 듯한 뉘앙스가
정말 마주하기 어려운 죄송이긴 하지만
그러함에도 기도함을 기뻐하시는 주님을 뵙니다.
그 안에서
깨우침과 '네가 어찌'라며 다독이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마주합니다 .
주여.............
감사합니다.

세상에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 동안 나고 소멸하였던
수도 없이 많은 인생 안에
얼마나 다양한
부족한 자들의 심사를 다 꿰뚫으셨겠나이까?
그 원죄적 성품의 결점들을
다 마주 하시면서도
사랑하심을 놓치 않으신
주님의 그 크신 긍휼하심,
그리고
그 안에서
저 같은 자.........
저 요나 같은 엉키고 엉킨 심사의 제 상황을 보시면서도
결코
저를 사랑하심을 놓치 않으셨을 것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주님 영접하고 이십 몇년의 시간 동안의
제 불같고 폭풍우 같은 노함과 죄로 인하여
주께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 지
돌이켜 깨닫습니다.
홀로 있을 거 같던 그 시간도
주님이 지켜보시던 시간이며
그 어떤 상황도
홀로 두지 않으셨을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
그러지 않아야 겠습니다 .
제 눈에 분명코 불합리 할 것으로 보이고
분노 하기에 합당한 일이라 생각되어지는 그 어떤 것도
어쩌면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 상황일 것임을
돌이켜 생각하여
그들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는 이타적 생각을
제게 허락하시며
어떠함에도 주님이 사랑하시면
가라앉히고 같이 사랑할 마음의 버퍼를 허락하소서.

주님.
굳어진 흐름.......
그 안의 또아리 튼 잘못된 망상적 생각들..........
주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대치 시키소서.
내 주여.

요나의 상황을 허락지 마시고
요나의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시며
혹여.......실수하더라도
요나처럼 주님 앞에서 해결받도록 하소서.
주님 말씀 듣는 민감성을
분노로 놓치지 않도록 하소서.
주님.
오직 주님 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주님을 이유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압니다.
모두 주님 앞으로 가져올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 앞에 무릎꿇을 제가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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