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직도 고멜인가[호2:1-13] 본문
부제) 나의 내가 , 주님의 내가
.
5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고멜의 심사를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버거운 호세아를 묵상하면서
자꾸만 '호세아님'이 '예수님'을 닮았고
'고멜'이 우리, 나, 예수님 비유속의 둘째 아들과
그리 크게 다름 없을 자이지
결코 '호세아'님이 역겨워하며
그냥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같이 사는
순종의 도구일 뿐이라는
그런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다.
고멜.
어떤 이유에서든
그여인이 '음행'하게 된 거.. .
사연이 있지 않겠는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음란함'
잘못된 가정교육으로 어찌할 수 없는 '도피성' 죄- 중독적 성향이었던 나.. 그로 인하여 파생된 지금까지의 약간의 어떠한 어찌할 수 없는 성향, 지금 이자리에 이렇게 서게 한 역기능의 성장과정.. 그것을 도피성으로 피하게 하시고 예수님 십자가로 다 흐려주고 받아 주신 거 아닌가?.. 그것을 과연 손가락질만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고쳐야할 병이고 끼고 나가야할 , 품고가야할 불쌍함은 아닌가? ㅠ.ㅠ ,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보심이시다 . 우리를 그렇게 보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까지 하신거다. - 이거나
어쩌면 그 시대의 여성들의 삶의 방편이지만
그게 습관화 되고 버리기 힘든
핵심적 오류가 된 거 아니던가?
그런데
이 여인의 관점이 그대로 나온다.
'내가'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라는
깊은 그녀 행동의 핵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신다.
그것.
주님이 그녀의 그러한 행동의 이유를
그대로 읽어주셨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녀 고멜을 버렸다.
그녀 고멜이 그냥 버려져도 될 '사단의 도구'..
인생막장으로 우리네 심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웁지만
하나님이 선하신 뜻이 있어서
우리네를 위하여 쓰고 버려질 '소모품' 같은 대상으로서
그녀 ,고멜을 인식하고는
자주... ㅠ.ㅠ.. 그러듯
내 의식의 저켠에 눌러버린 '쓰레기, 폐기물'같은 대상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여인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그게 어쩌면 '바로 우리', '바로 나'와 하등 차이가 없음을 보게 된다 .
그녀의 외침을 보라.
'나'.. '나'.. '나'.. '내 기분'.. 내 먹을 것.. 내.. 가 아니던가?
거기에 그녀의 교육탓인가, 성품 탓인가...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정상적인 '가정'을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몸 만을 위하여 가져다주는 댓가의 유혹을
'자신을사랑해주기는 자'가 그들이라 생각하며 매달리는
왜곡을 보이지 않던가?
'나'.. '나를 '.. '내가'.. '내'..라는 관념.. 이
우리 모두를 움직이는 '동기'.. 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녀의 입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서 움직이며
그렇게나 탐닉하는 모든 핵심이 들어 있다.
다행이도
지금의 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달리시기까지 사랑했음을
눈치 채이게 된,
그나마 절대적으로 주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인하여
허락되어진 '인생의 시나리오'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절대로 난 뛰어나거나 훌륭해서
고멜과 다른 인생을 허락 받게 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나님 역시 '내게'.. 내 원하는 것을 허락하시기에
여기까지 오게 된 기본 동기가 아니던가?
깊은 내면에
'고멜의 내가 나의 내가 .. '로서 자리잡고 있음이다. ㅠ.ㅠ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신다.
'' '네가 내가'가
'나, 하나님의 내가'로 바꾸어야 한다. "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인 '내가' 주지 않은 것이 있더냐?
네가 너,
내가 나의 .. 라 하던 그 모든 것도
다 '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거다.
그 나 .. 마져 말이다.
그를 벗어나지 못하느냐...
아직도..?''
그러신다.
무엇인가?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려 하는가?
'내가 주인'인듯..
아직도 내 감정대로 살려 한다 .
내 감정에 맞지 않으면 다 끊고 살아간다.
그 고멜 같은 아픔을 아셔서
나.. 잠시 허락받은 인생이다.
더 이상 어찌할 바 없어 '도피'하게 만들어
그 안에서도 행할 수 있도록
도피성의 삶을 허락하신거다.
그런데 그러한 나...
'고멜'같은 나를
고멜 같은 버려질 그녀로 취급하면 안된다 하심이다.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내 내면의 깊은 기본이
아직도 '나.. 나.. 내.. 내것.. 내내내.. '함이니
돌이키라 하심이다.
이제는 그러라 하신다.
그모든 것.. 다 '하나님이신 '
"내가 주었다" 김ㅂ창아.. 하신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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