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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인의 누릴 즐거움( 마 25:14-3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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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인의 누릴 즐거움( 마 25:14-30 )

주하인 2010. 3. 21. 09:56

 제 25 장 ( Chapter 25, Matthew )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언젠가가 되든

주님은 꼭 오실 것이고

그때는 반드시 '회계'함이 있으실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심은

우리가 '종'의 삶,

수 달란트를 받은 '청지기'의 삶을 살기를 전제로 하신 것이다.

조건이 아니다.

의무다.

 십자가 구원은

우리의 평안만을 위하신 것은 아니다.

실은 주님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신 것이시다.

그 분은 그 분의 사랑 많으심에 합당한 즐거움을 위하여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주셨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빚 진자다.

그게 맞다.

빚진 하인.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일달란트는 주석에 따르면

3억 정도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일 달란트'도

' 5달란트'나 '10 달란트' 모두 큰 돈이다.

주님은 이러한 큰  달란트를

재능을 우리에게 주시고 가셨다.

십자가 사건으로

더 이상의 도움을 주시지 않고 그냥 가신게 아니란 말씀이다.

그냥 구원하시고 나서

방치하고 많은 시간 후에 오셔서

그냥 '내놔라' 하시는 분이 아니시란 이야기 시다.

그것이 무엇이든

엄청난 탤런트(달란트)를 각 개인에게 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성령'의 도우심을 주셨다는 것이다.

얼마나 세심하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시던가..

 어제의 묵상에 따르면
등을 주시고 기름을 채워 주셨다 한다.

등은 '예수님'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 받아야 받는 것이고

그 등의 크기와 품질은 '달란트'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성령은 기름이시고..

 

 그런데 그렇게 달란트를 주신 하인들에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라 하신다.

작은 일이라니..

그렇게 큰 재능을 주시고 '적게 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지 않는가?

그리고 '잘하였다'  ' 착하다', '충성된'..이라며 칭찬하시며

다시한번 그 인생을 '종'의 정체성으로

잘 살았음을 칭찬하신다.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코끝이 찡할까?

언제오실지도 모를 그 주인을 위해

그 사랑이 감격해서

실족하고 넘어질 위험성을 수차례 피해가며

겨우 겨우 인내하여

주님의 뜻대로 달란트를 남기고 나니

저리 칭찬을 하신다.

가슴이 '멍'할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칭찬은 10달란트 하인 뿐 아니라

동일한 비율의 수익을 올린

5달란트 하인에게도

아주 똑같은 칭찬을 하신다.

그 뉘앙스가 '정말 수고 했고 사랑스럽다'라는 데서

하등의 차이가 없으시다.

'작은 일'

'동일한 칭찬'

여기에 주님의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알리고자 하시는 뜻이 숨겨 있는 듯하시다.

 

 15억 내지 30억 수준의 달란트.

그리고 그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림.

이 땅의 소득물은

주님에게는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보다 훨씬 큰 재물이나 다른 이룸도

그 보다 적은 양도

주님에게는 '적은 보상' 일 수도 있고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교를 나가

수없이 많은 종족들을 구원시키거나

이 땅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양의 돈으로

구제를 행해도

금식을 밥먹는 것 보다 더 많이 해도

주님에게는 그리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저리 기뻐하시는 것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 기뻐하는 것은

두 종 모두에게 똑같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충성도'의 정도를 기뻐하시는 것이고

그들의 정성을 보는 것이지

그 이룸의 양 자체는 주님에게 큰 의미가 없으시단 것이시다.

 오히려 그 보다는

'그들의 달란트에 비교한 이룸의 비율'을 

더 보시는 것이시다.

각각 두 사람은 100% 달란트 수익률을 올렸지 않던가?

수익률이 반드시는아니겠지만

그들의 이 땅에서의 충성도를 간접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지표가 아니던가?

 그러기에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표현하신다.

만일 한달란트 받은 종도

한달란트를 남겼더라면

똑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또하나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 네 주인의 즐거움'이다.

' 주인의 즐거움'

당연히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영생을 사는 즐거움.

스베덴 보리의 천국 묘사에서

주님의 보좌의 '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행운을 말하는 것임으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네 주인의 즐거움'이란 표현이

조금은 더 현실적이고 레마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묵상의 시간과 집중하는 기도를 하지 못하는

영적인 성장의 부족으로 깊이 느껴지지는 못한다.

 

 오늘 주일

'내 주인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느꼈으면 좋겠다.

 

 희망이다.

난,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겟다.

의사

찬양의 능력

육체적 능력

조건..........이런 것을 떠나서

난 나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제한이 있다.

누구들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 던지고 '선교지'에

내 전 인생을 걸어가며

주님을 처절히 느끼고 싶은 충동도 있으나

그러한데 제한을 거는 것들이 많다.

그것을 달란트라는 데 의거하여 생각을 해보면

난 어느 정도일까?

나이 38에 예수님 영접하고

이제 나이 지긋한 때에 도달해 있는 나에게

남아 있는 젊음의 끈이라는 제한점을 생각하면

또 얼마의 달란트로 나에게 주셨을까?
나에게 어떤 것을 바라실까?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은 구제와 헌신과 ... 바라실까?

하지만, 오늘 비율적인 소득에 대한 칭찬을 보면서

난 그리 급하고 촉박한 안절 부절은

덜느끼게 된다.

 그 달란트 마져

나의 나머지 인생 동안 해 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게 된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난 말씀 앞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즐거움.

그 즐거움이 어떠한 것인가

기대가 된다.

짐작이 가기에 더욱 기대가 된다.

그 짐작에 말씀으로 약간은 더 뚜렷이 기대하게 해 주시니

감사한 주일이시다.

 

 

주님

귀하신 주님

오늘은 달란트와 소득,

그리고 주님의 칭찬에 대하여

또한 주님 주시는 '즐거움'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십니다.

주님.

전 무지하고 미련하여

그런 능력이 없지만

주님이 인도하시면

늘 그러셨듯

또 다시 저에게 인도를 허락하실 것임을 알기에

기대합니다.

주여

또한

주님이 주신 달란트는

일달란트 조차도 실은

대단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수달란트 라면

어느 하나

누구 하나도

가치가 없는 사람이 없고

가치없는 재능은 없음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구원 받은 자는

누구할 것 없이 참으로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모든게 감사합니다.

오늘 주일.

주님 만나고

주님의 즐거움을 체험하는 하루 되길 소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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