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때문에 무시 함이 무시되다 [마15:21-39] 본문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어쩐일로 '무시'하신다.
제자들은 '경멸'한다.
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그러고 나니
예수께서는 어쩐 일이신지 '무시함의 이유를 드러내'놓고
무시하신다.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
높은, 절대의 존재께서 그러신다면
온유하신 분의 경멸과
그러하신 분의 단정적 이야기.
그때
누가 버틸수 있을까?
철저한 무시.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그래도 무시를 무릅쓰고
이렇게나 매달렸는데
"주여 저를 도우소서"
(아... 난... 이렇게 매달려 본 적이 있던가?
아.. 있다.
일년전... 절박의 순간.. 고속도로에서 사고날까 잠시 아무데나 세우고
그밤에 새벽까지 매달리며 주만 의지할 수 밖에 없던
그 기도의 순간... 그때...
그때의 그 고백 같다. .
그리고 보니..
주여.. 저를 도우소서' ㅠ.ㅠ;;;; )
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아.. 거기에
존경할 만한 분께서
'나에게 만은.. '
이렇듯 '개'.. 라고까지
비록 그게 그 당시의 사마리아 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표현이 맞다지만
아픈 , 그래서 이렇게 절박한 매달에
무시를 넘어서 잔인한 표현까지 써가며
무시 받을 때
그 대상이 비슷하거나 엉길 (^^;;) 대상이라도 되면
'분노'가 올라오겠고 얼굴이 화끈 거리겠지만
높은, 절대의 존재께서 그러신다면
'좌절' 아니겠는가?
온~ 몸의 힘이 풀려 저항하지도 못하고
털썩 주저 앉아
머리 속에
가장 마지막의 시간들..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될 그런 상황.
..........그런 절망 말이다...ㅠ.ㅠ;;
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위에 고백한 바처럼
나도 그러고 보니 여인처럼 절박하게 매달렸던 기도의 기억,
그래서 너무도 평안한 마음을 얻고 결국 이겨냈던 영적 승리의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그래도
이렇게 '무시'당할 것을 상상도 못하던 상황이다.
주께서...
날 위해 그렇게 십자가에 돌아가실 그 사랑의 하나님...
매일 같이 말씀으로 만나던 그 주님께서
무시라니...
그렇다면
오늘은 '주님의 무시'라기보다는
주께서도 '무시'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과연 그 무시받는 상황에서
어찌 반응하는 게 옳은 가를 보여주시고자 하심은 아니실까?
보자.
여자는 일단 수긍했다 .
'주여 , 옳도소이만'
이게.. 맞다.
무시받는 상황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냥 거부하기 보다는
무시받는 대상인 나를 '인정'하면 된다.
언젠가 병원에서 괜히 갑질하던 젊은 남편의 고함 앞에
내 급한 성품을 자제하고는 '맞습니다' .. 하고 나니
갑자기 순한 양처럼 조용해지는 그 분을 본적이있다.
읽어 줌이다.
인정함이다.
이제 입장을 바꿔
내가 무시를 받는 자의 입장에서
무시하는 자들의 소리를 인정하면 된다 .
우선 .. 내가 그들이 그러한 공격이 맞음을 받아 들이면 된다.
그런데, 과연.. 그게 쉬운가?
무시받으면 아프고 성질나고 올라오는데.. .
심장이 뛰고 동공이 적어지면서 얼굴에 벌게지고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내 뇌리 속에는 오래된 익숙한 감정인
'부당한 그들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떠드는 그들의 무식함을 ^^;;
통쾌히 깨 부수어
내 정의로움, 내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됨, 그들 때문에 이렇게 까지 된 상황에 대하여
알려주고 교정해 아무 말 못하게 하고픈,..
그렇게 못하면 바보가 될 것 같고
그렇게 하게 되면 내가 파괴되고 망하더라도 이루는게 정의일 것 같은 착각에
강한 밀림을 받는데......
그게 과연 되는가?
그런데........
주님이
오늘
몸소
직접
그 부당한 대상의 역할을 하시지 않는가?
내 그러한 엉터리의 논리, 오래된 구습의 깊은 곳에 숨은
오류를 깨닫게 하시고
무시 받을 때 자주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나를 보게 하시고
그런 나를 들여다 보게 하시며
무엇보다
이 여인같이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말이다. . ^^*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 개도... 먹나이다'
그들이 원하는 바 인정(?) , 아니 최소한 긍정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원하는 바를
똑바로
하나도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해함이 없이
똑바로 얘기하는 것이다 .
그렇다.
난..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아는가?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바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매일 매일 옳은 방향의 감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은 ' 무시' 함엗 대하여 예민한 내 분노와 좌절 속의
잘못된 생각 , 그를 만들어준 상황에 연결된 자들에 대한 옳은 깨달음..을 갖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옳은 대처하여
주님 만나뵐 그 날 전에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가며
내 주변과 내 삶의 반경에
주님의 살아계심을
나로 하여 더 드러내게 되는
그러한 도구로서 살다가
주님이 축복하시는 현실의 누림도 누리면서
때가 되어 주님이 세상에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날 부르시면
내 인격과 내 삶의 능력과 환경에 맞추어
가장 적당한 대상을 상대로
주님의 살아계심을 선교할 수 잇으면 그리되기까지
그리 살다가
가게 되는 것.... 그것이다 .
그때까지
무시함에 대하여
그 어지러운 '인간 죄들의 얽힘'에 대하여
더 읽힘이 없게 되길 원한다 .
맑고 깨끗이...
그들이 그리해도
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청정한 영혼을 유지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소서.
이제..
주여.
오늘의 소원은
주님이 보여주시고 깨닫길 원하시는 대로
'무시 '하는 자들에 대하여
무시받지 않게 하소서.
내 원함이 확실해서
그 무시를 내 가슴 속의 아픔으로 갈무리 하지 않고
'그냥 옳도소이다' 마는
내 원함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니
제게 또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내게 무시로 대하려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이유로
말씀을 이유로
무시 받지 못하게 하소서.
영혼이
이전의 더럽고 혼탁하고
아직도 남아 아프게 느끼게 하려는
자아의 거친 행태를 내려 놓게 하소서.
상처러는 이름으로
내 행동과 생각을 사로 잡으려는
이전의 이론과 생각들의 오류가
주님의 성령, 주님이 말씀으로 보이신 말씀으로 인하여
깨끗이 회복되게 하사
'옳도소이다.
하지만 .. ' 하며
흔들리지 않고 옳게 내 바램을 이야기 하는 자 되게 하소서
무시하되
무시 받지 못하게 하소서.
무시하는 자들을
미워할 시간조차 제게 허락하지 마소서.
주님의 허락되어진 도구일 뿐인 그들을
아무 미움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게 하시고
무시 받는 내가 '좌절'이나 내 오랜 원망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마소서.
연민이라는 달콤한 족쇄를 떠나가게 하소서.
내 주여.
오직 주님이 위로 하시고
오직 주님이 보이시는 대로
맑고밝고 건강하게 대처되게 하시사
주님의 축복어리신 약속을 얻어 살게 하소서.
내 주여.
제 삶속에서 어서어서 이루게 하소서.
거룩한 주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 , 그 거룩하신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2010.02.13 묵상 분)
제 15 장 ( Chapter 15, Matthew )
주여 저를
주여
저를 불쌍히만 여기소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여
그리하여
이 영혼에도
주님의 사랑으로 만개하게 하소서
주여
저로 제 이웃의 눈을 뜨게 하는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저를( 마15:21-28 )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간절히 간구한다.
' 내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그리하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딸을 불쌍히 여겨야지...왜 자신을 불쌍히 여기라 하는가?
딸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과 동일한 이야기지만
거기에는 '모성'이 담겨 있고
딸을 염려하는 찢어지는 눈물이 담겨 있다.
딸도 불쌍하지만
자신의 찢어지는 가슴도 너무 아프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맞지 않는가?
간절함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오늘 하루
'나를 불쌍히 여기실 것' 무엇인가 묵상하고
주님 앞에 절절히 외치는 하루가 되어야 겠다.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간구는 방해가 따르기도 한다.
제자들이지만 기도에 방해가 되는 어떤 존재를 암시하기도 한다.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주님은 시험하신다.
시험하기에 제자들이 기도의 방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상황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더불어 눈에 들어온다.
간구
간절히 바라는 그 어떤 것.
어떠한 강한 압력이나 반대를 모릅쓰고
아니 그것을 극복하고 , 뚫고
심지어는 주님의 시험(test)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을
그 어떤 간절함으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할
가난한 심정.
이 여인의 찢어질 듯한 아픈 가슴을 가지고 비는
그 간절한 소원.
그것이 무엇이던가?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소원.
이 간절한 소원은
그 비는 논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응답을 이루어 낸다.
정욕에 쓰려고 구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따라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소원의 강함'에 따라 반드시 이루어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간절함.
그 간절한 소원.
찢어지는 가슴으로 가난해질 만큼 가난해진 간구.
그것은 강한 믿음을 가져오고
절박한 그의 간구는
그의 입에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는 소리가 나오게 하고
어떤 방해에도 굴하지 않으며
주님의 시험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주실 줄 믿고
처절히 매달리는 그러한 모습을 가져왔다.
나.
오늘 부터 연휴.
내일이 당직이라서
아내와 큰 아들 만 오늘 고향에 내려 보내고
오늘은 혼자 지낸다.
내일 아내가 올라오면 바톤 터치하고
모레 당직 마친 후
어딘지 결정되지 않은 '기도원' 행을 행할 생각이다.
동해를 가려 했으나
폭설로 어제 대관령이 막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쪽으로는 포기했다.
아마도 이전에 갔던 '한얼산'이나 근처의 다른 곳으로 행할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마져 결정하지 않았다.
금식기도를 할 예정이나 자신이 없긴 하다.
하여튼 무엇이든 강하게 결정내리지 않았다.
금식기도를 하려는 바램은있다.
아침마다 스치듯 하는
주님에 대한 감사와 찬미
가족을 위한 중보와
내 '소원'을 가지고 하는 기도.
약 세가지 정도 크게 목표를 가지고 하려 한다.
실은 모두 절박하고 아주 간절한 제목이었으나
내 성품상 어디 집중하고 하려면
많은 부대낌이있어서
하루하루 밀어왔던 것이
13년의 신앙생활 후 이제야 결단된 것이다.
소원을 몇 가지 나누어 정리 해 보았다.
많다.
일단은
자식들의 중보의 소원을 제외하고
내 개인적 기도제목 만해도
크게
내적과 외적인 기도 제목이 있다.
내적 제목은 '사랑과 긍휼 회복'이다.
아직 부대끼는 부분이 많이 있다.
하나하나 집어 내어 많은 시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햇빛에 습기 말리듯 말려지길 원한다.
외적인 기도 제목은
내 달란트를 어디에 쓰실 것이신가.. 지금도 충분하다는
주위의 위로성 격려 말고,
주님이 진짜로 원하시는..
대충은 감잡지만 그것 말고..
내적인 것과 분리될 수는 없지만
세상을 향해 내 가진 달란트를 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목 붙잡는 터부들 제거해 주시길...
또한 '아픔'을 통하여 지금까지 폭이 깊어질 기회를 허락하셨지만
이 아픔이 제거되고 나면 나약해지고 실족할 위험성이 없도록
더 큰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과
하나님의 기쁨이 더 커져 아픔이 회복되더라도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55세 이후의 내 삶의 패턴.
현실.............
3일이라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과정 중에서 주님을 만나면
안될일이 어디 있겠는가?
혹여 제자들의 방해같이 흔들리는 상황이 있겠지만
어머니의 그 찢어지는 간절함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님이 뭐라 말씀하시던
그게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며
나 자신을 위하는 ' 조건에 어긋 나지 않으면
간절히 간구할 수 있길 원한다.
부디 3일 금식을 완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푼다한다.
결박,
흉악한 결박
나를 묶고 있어
세상을 향해 주님의 뜻을 펼치는데 장애가 되었던
그 결박이 풀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선한 영향력'을 남길 수만 있게 되는
그런 시간이 되면 정말 좋겠다.
기대한다.
기도
주님
오늘은 여인의 간절함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간절함이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하는 기도로 나옴도 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을 막아서는 각종 방해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만나는 모습도 봅니다.
예수님의 시험과
뚜렷하고 간절한 소원도 배웁니다.
그리하여 응답을 받는 결과도 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나의 그동안의 모습은
소원의 뚜렷지 않음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곧 3일간의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아직 그 특성을 정확히 구분은 하지 않았지만
출사여행을 동반한 3일 금식 기도로 하려 합니다.
주님
똑같은 내용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이제 저 여인의 간절한 가슴과 그 여인의 뚜렷한 소원
그리고 매달리는 저 절절함을
이제야 묵상하게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으신 줄 압니다
얼마전 부터 서서히 '소원'에 대하여 기도하고 픈
마음을 주시고
환경을 조성하고 계셨습니다.
주님.
늘 '안돼'라는 소리에 막혀
무엇을 달라는 소리
간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내 바램을 뚜렷이 한다는 것을 참 어색하게 여겨 왔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의 마음 속의 바램마져
하나하나 들어 이루어 주셔
지금껏 인도하셨습니다.
그 과정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이제 '나'를 벗어나
조금더 뚜렷이 '주위'를 향해 눈을 돌리길 원합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내 내적 정결을 이루어 주셨다면
이제 내 주위를 향해 주님의 뜻을 알리고
내가 아는 주님의 놀라운 평강과
주님의 확실히 살아계신 증거를 알릴 수 있는
그런 소원으로 기도하렵니다.
주님
거기에 방해가 되는 것 제거되길 원합니다.
주님.
더 적극적으로 절 낮추시고
더 적극적으로 절 주님 만 바라보게 하시고
더 적극적으로 이웃을 위해 살 제가 될 수 있게 하시고
그 과정에서 그러는 '저'와 잘 연합되고 통합되고
스스로를 주님안에서 기쁜 나로 인식하게 되게 하소서.
주님.
귀하신 주님
날 불쌍히만 여기소서.
그러지 못해왔던 절 불쌍히 여기소서.
이제 주님
절 도우소서.
주님 제발 저를 도우시사
지금껏 유지해왔던 주님과의 평화
주님과의 연합의 기쁨을 더 굳게 하시고
그 것을 이웃을 향해 기쁨으로 펼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도우소서.
제발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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