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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오해(막6:14-9)

주하인 2015. 1. 17. 11:22

 

16.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헤롯은 '오해'를 한다.

예수께서 살아난 요한이라고..

헤롯은 오해를 한다.

예수님(하나님)을 겨우 요한(사람)으로..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듣고 이르되' 했다.

조급함이다.

조급한 판단이다.


조급한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죄의식'이다.

'두려움'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 탓이다.


그는 그의 권력을 믿고

그의 남자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술기운으로

....

다양한 이유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요한을 목베었으나

그는 가슴 속 깊이

두려워 하고 있었다.

'잘못이 아닌가?

 혹시 선지자를 잘못 건드려 ...벌을.. ?

 ...'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일체의 '논리적 판단'이 마비가 되었다.

일단 예수 , 그 분의 나이가

요한과 그리 차이가 없었음에도 ....^^;;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된 것 마져 우습지 않은가?


오늘 주께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그것인가 싶다.


 찬양대.

나름 열심을 보이고자 '언양'에서 올라오자 마자

급히 (6:20분 도착.. ) 찬양 복으로 옷을 갈아 입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찬양의 자리에 섰다.


음악을 좋아하거나 예술적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괴팍한 자신의 특성이 많이 있음은

교회 안에서 '찬양'으로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찬양대,

그것도 나이가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일반 사회의 그것과 다름없다.

아니 오히려 '거룩'의 틀안에서 가리우려다 보니

본성을 인식 못하고

순간 순간 튀어나오는 모습들을 볼 때가 많이 있다.

그게.. 인지 상정이지..


몇몇 독특하신 분들이 있다.

음이 쳐지는 지 모르시는 분..ㅎ

바이브레이션이 아주 심하신...

거기에 말이 거치신 분.

난.. 목소리가 크고 급하고..


찬양의 자리에 설 때마다

기도를 하는 제목 중의 하나가

' 주여 제 귀를 막아서 남의 잘못이 들리지 않게 하시고

  주여 저들의 입술과 영혼에 성령으로 주장하셔서 좋은 찬양하게 하시고

  반주... ' 한다.


그러나,

이상히도 그들,

음 쳐지는 분들 (거의 음치에 가까운 ^^;;)

트로트 부르면 맞을 듯한 (죄송 ^^;;) 바이브레이션 가지신 분들이

유난히도 마이크에 바짝대고

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서 더 크게 소리를 내곤 한다.

 어제는 이상히도 가정적 부딪침이 있었는지 ^^;;

거북한 반응을 보이는 집사님들이 꽤 있다.


나.

유난히 음에 민감하다.

기도를 하고

예수께서 작은 배에 앉으셔

바닷가 ( 해안을 둘러싼 절벽에서 사람들이 내려다 보고 있을 ) 를 연상하면

마치 교회에서 둘러 쌓고 찬양대를 바라보는 시선들과 하나로 느껴져

은혜롭다.

주님의 말씀이 또렷이

내 입술의 곡조를 통하여

그들 , 교인들에게 하시고싶은대로

그들의 심렴에 젖어드는 것 처럼 느껴져

잠시 잠시 깊은 은혜에 들어간다.

아니.. 잔잔한 차분함...

평강의 은혜에 조금씩 실체적으로 다가가려한다.


그러다가,

격한 바이브레이션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나는 그리 느껴지고 특별히 어제 피드백에서 모두 어필했다. .^^;;) 

맥을 끊을 때마다

내 기도하고 들어온 보람이 없이 ..하면서

속이 상하려 함을 막으며 찬양에 집중하려다 보면

많이 힘이 든다.

 여러차례 돌려 얘기 했음에도

더 마이크 가까이 들이대는....ㅠ,ㅠ;;

한참의 시간동안 찾은 결과 ,

누구인지 안다.

(거기에 某 곡의 반주 코드 틀림....여러번 얘기해도 .. 아유...아유.. )


금요예배가 끝난 후 모여서 기도하기 전

의견을 피력하다가

목소리 들이 높아진다.

마음으로는 안그러고 싶은데

난... 그런 미련함 (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르고 더 열심을 부리는 ... )함에

화가 자꾸 올라 오려 하고

강한 성품의 몇몇 집사님들이 말을 끊는 바람에

자꾸 토론이 세어진다.


돌아오면서 마음이 안좋다.

저들의 버거움도 버겁고

내 어리석음도 죄송스럽고

어린 청년들 (반주.. ) 보기도 민망스러워

그만 찬양대를 그만 둘까.. 하다가도

아직 허락받지 못한 역할이란 생각에

그냥 마음은 접었지만

그래도 찝찝하다 .


돌아와 오랜 시간을 묵상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 보고

기도를 하고 잤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들여다 본 묵상은

너무 유명하고

너무 자주 나온 구절들이 연속이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또 다른 레마를 허락하신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해'다.

조급한 심성으로 인한 오해.

그리고 그로 인한 잘못된 결과,.

그 결과 마져 예수의 십자가 구원의 또다른 복선이고

그러함은 인생의 모든 하는 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다 '뜻' 가운데 있음을 깨닫긴 하지만

기왕이면

내 무지한 조급함으로

내가 ' 헤롯'의 역할'이 되어서야 쓰겠는가 싶다.


어제의 일을 대입해본다.

조급한 판단.

무엇일까?


우선 내 죄책감에 대한 부분이다.

그들이 나를 .. .부분이다.

그거.. 과도한 자책이 아닐까?

그냥 소리 높임은 잘못이지만

그거로 인하여 큰 좌절은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코 그들을 포함, 나도 조금은 더 자제되고

조용한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 옳은 일이긴 하다.


그리고 내 속에 ' 음' 조절 못하고

인식마져 못하여 더 나서려 하는 자들에대한

미련한 자로의 비판은

내 조급한 판단이다.

어쩌면 그 안에는 내 잘난 맛의 교만이 잇을 지 모른다.

회개할 부분이다.

그리고 뜨악한 자들.

그것은 그들 문제다.

모두 오해다.


오해는 내려 놓고 기다려야 한다.

조급하면 안된다.

주님이 판단하시길 기다려야 한다.

주님이 나를 판단하시고

주님이 그들을 판단하시고

주님이 나를 고치시며

주님이 그들을 찾아가 고치시길 기다리자.


내 조급한 오해를 내려 놓자.



주님..

적절히도 지적하십니다.

그래서 유명한 구절에 대한 묵상의 부담이

또 오늘 깨졌습니다.

혼자 들고 읽을 때는 모르겠더니

말씀을 블로그에옮기려 앉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서 지워가니

말씀이 깨달아 집니다.

글이 주루룩 써집니다.


주여

주신 말씀에

내 조급한 판단

어리석은 오해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전 거기까지는 잘 깨닫습니다.

그 후 문을 닫고는 묻어 버립니다.


이제..

모든 것 주님께 의탁하오니

주께서

제 조급함을 가라앉히시고

오해를 풀게 하소서.

더 죄 짓지 않게 하사

헤롯 같은 실수 하지 않게 도우소서.


내 주님.

간절히도 빕니다.

주님이 하시면 다 되실줄 믿습니다.

제 인생에 그리도 뚜렷이 드러내신

주님의 살아계신 증거로

제 죄가 아닐 듯한

오해의 심사를

죄로 인식하게 하시고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영혼이 되게 하시사

주께 서 원하시는

딱딱한 식물 씹는 장성한 믿음의 주하인 되게 하소서.


내 주여.

그리하여

주의 기쁨이 되고

주님은 제 온전한 삶의 의미가 되게 하소서.


주의 주신 더 큰 평강을

오늘 레마를 이룸으로

더 이루게 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내주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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