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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자(부제: 놈놈놈 II) ( 욥12:13-2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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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자(부제: 놈놈놈 II) ( 욥12:13-20 )

주하인 2008. 9. 23. 12:31

제 12 장 ( Chapter 12, Job )

 

주님을 알기만 하는 '자'가

엊 저녁

묵상 적용을 위해

비오는 기도원 벤치에 앉았다.

 

주님은

놀라운 깨달음과 평강으로

내 마음을 어루 만지신다.

이러시는 것 같다.

'잘 왔다.  

내 사랑하는 자야..'

그래서

주님이 좋다.

그 분의 임재감이 쌓이고 오래되면

'주님을 깨달은 자'로 갈 것이

분명하다.

 

 

아침에 나오는 데

단풍이

지난 밤의 이슬을 달고 있다.

참으로 신선하다.

맑다.

주님은

이러한 평강으로

내 영혼을 채우실 것이다.

곧......

늘.......

그런 자가 되게 될 것이다.

 

 

 


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지혜 권능 - 좋은 내용

 모략 - 나쁜 내용

 
 
 
16.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능력과 지혜 - 좋은 내용

속고 속이고 - 나쁜  내용
 

 

19.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 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나쁜 내용
 
20.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나쁜 내용..

 

 

 주님은

좋은 것

나쁜 것

다 주관 하시고

그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

그것이 '주님의 뜻' 인 줄 아는 가 아닌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불신자들은 '고난'과 싸우다 치여 죽는다.

 

 주님을 믿는 자들도

'안다고 생각하는 '

'알기만 하는 '와

'깨달은 '의 세 부류가 있다.

 

 영화의  '놈놈놈'처럼 '..'ㅎㅎ

 

 

  '안다고 생각하는 '

 대부분의 믿음의 초신자들,

선데이 크리스찬은

'주님을 안다고 생각만 하는 자'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 등은

이 부류에 속할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게

인간이 하나님을 어찌 아는가하는 전제다.

이런 전제를 넘어서는 논리의 오류,

'권선징악'적 생각에 꽉 사로잡혀 있다.

자신은 하나님을 너무 잘 안다는 생각...

하나님을 자신의 틀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개가 주인의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를 까?

이것이야 말로 '개가 웃을 생각 아닌가?'

하지만,

누가 고통을 당하거나

내가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될 때

이런 생각에 한번 정도 파묻혀

죄책감이나 정죄의 유혹에 사로잡혀

자기연민이나 분노에

아니면 우울에 빠져 들고픈 유혹이 없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있지 않은 것이

주님의 영역이다.

가부를 어찌 알 수 있는가?

주님을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련의 '고식적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은

'알기만 하는 ' 다.

 난

이 부류에 속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의 뜻을

한곳에 집어 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이제는...

좋은 상황에도

견디기 힘든 - 내 보기에 나쁜...- 상황에도

주님의 뜻은 있다고 생각하고 믿는다.

하지만

일상에 들어서

고통을 받거나

날 그토록 누르고 있던 오래된 구습에 매일 때

까맣게 잊어 버리고

원망

분노

속상함

좌절

스스로 비하함.........등의 감상에 빠지려한다.

순간적으로..

만일 '욥'의 상황에 빠질 때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내 일상에 펼쳐져

당장 실직의 장기 상황에 빠질 때........

수없이 연상되는 부정적 상황에서

오래

지금의 평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은 않다.

즉,

머리로는 아는 놈 -ㅎㅎ '자'-다.

 나같은 이러한 부류들은

고통이 오면

성경의 구절을 찾아

거기에 대입시키고

맞추어 이해한 다음

기도하고

엄청난 노력을 통하여

좌절과 시련을 겪은 다음에야

주님의 뜻에 다가갈 기회를 얻을 수가 있는 자들이다.

 

 

 다음으로

욥의 오늘 고백으로 대표되는

'깨달은 ' 들이다.

 정말 진한 고통,

계시록의 7년 대환란의 상황

순교의 상황에서도 ,

아니

그 보다 더 힘든

이해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진한 고통 중에서도

주님의 뜻임을

영혼 깊숙이 이해하고

그냥 받아 들일 수 있는 자.

 자연스럽게

어느 상황에서도

그리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행운 속에서도 너무 좋아하지도

불행 속에서도 너무 좌절하지도 않고

모든 게 주님의 뜻임을

영혼으로 깊숙이 알 수 있는 자다.

 

 이들은

세상의 흐름 속에 그리 구애 받지를 않는다.

그냥

조용히 흘려 보낼 뿐이다.

대신

흐르는 바람소리

들려오는 시냇물 소리

어두움 속에 들려오는 '빗방울 부딪는 소리

멀리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쳐다보아 보이는

저 하늘의 푸른 색에 .............................

더욱 감동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을 만드시고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에

그 영혼이 전율할 뿐이다.

세상은 세상일 뿐이다.

세상은 흘러가고

지나간 그들의 존재들은

단지 썩어갈 뿐인 것 들이다.

그것들의

있고 없음에 그리 구애를 받지 않는다.

 

사도바울 께서 이리 고백을 하셨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욥

이 분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고난의 극치에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잠시 잠시 흔들릴 뿐이지

결국

모든 것은 '주님의 뜻'안 에 있고

주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 분이시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면

세상이 얼마나 자유로와질까?

마음은 얼마나 평화로와지며

여유로울까?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죽음도 두렵지 않고

헛된 명예나 재물에 욕심이 당기지 않으며

그를 붙잡을 어떤 것도 없으니

그 삶이 얼마나 복이 될까?

 

 하지만

이러한 ''깨달은 ' 로서의 경지는

순식간에 오는 것도 아니요,

누구들 처럼

면벽 몇년

고행 몇십년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주님의

주님을 위한

주님에 의한 -  누가 아마도 흉내 냈을 것임.ㅎㅎ - 인도하심과 더불어

우리의

주님을 기뻐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불어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

주님은

욥의 엄청난 고통 안에서도

그가 누리게 될 '평강'에 대하여 보이신다.

비밀은

단지

예수님을 '앎'을 벗어나

그 분을 동행하며

그 분이 진리이심을 영혼 깊숙이 깨달은 자로서

누리는 '평강'이라는 것이다.

이제 힘이 생긴다.

희망이 커진다.

 주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기뻐하고

시간이 지나고

그 분의 사랑이 내 안에 커지면

난 자유로와 질 것이다.

 

 

 

적용

 

1. 모든 게 주님의 뜻임을 믿는다.

 아직은 심령 속에서 거부 반응이 일려 한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게 주님의 뜻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황할 일도

흔들릴 일도 없다.

평강 가운데 난 살게 될 것이다.

 

2. 두려워 할 일도 기뻐하자.

 그게 원리다.

 그마져 주님의 뜻이다.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없이하시리라

 

3. 난 깨달은 자로 서야 한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말씀이 길이다.

 

 

기도

 

주님

힘을 주소서.

흔들릴 일이 없게 하소서.

그 마져 주님의 뜻인 것을 이해하게 하소서.

그래서 기뻐하게 하소서.

주님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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