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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양[눅10:1-1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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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양[눅10:1-16]

주하인 2016. 2. 4. 06:35




3.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갈지어다'

나도 곧 출근한다.

예수님이 '선교사'님들만을 위해서 왔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모두 선교가 유일한 이땅의 삶의 목표이고 예수님 믿는 이유라면

너무 제한적인 사람만 믿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선교할 능력이 없으셔서 우리를 선교의 도구로만 생각한다는

논리가 성립이된다.

 갈지어다...는 그렇다면

내 삶 속에서 매일 이루어지는 삶의 선교적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 아침, 주님의 말씀을 듣고

곧 직장으로 발걸음을 내딛거나 하루의 삶을 시작하는 모두에게 해당하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갈지어다'는 '가서 열심히 살면' 내가 도우마... 시는 예언적 , 선포적의미시다.


그러시면서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 가는 것 같다고 하신다.

그것.

마치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어놓는 부모의 반드시 해야지만 할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하여 아주 조심스러운 당부를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성장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위험, 제자들은 어떤 위험에 대치되기에

예수님께서 저리 걱정을 하시는가?



4.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실제로 돌팔매 맞거나 폭행을 당하는 위험...보다는

예상과 다르게 '청빈' 만 강조하신다.

길에서 아무에게나.. 라시며 '분주'한 머리를 갖지 못하도록 신신당부하신다.

그것과 '이리'의 위험,

예수님을 안타깝게 하시는 그 이리의 발톱은 무엇인가?


5.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계속 '평안'을 말씀하신다.

평안... 평안.. 평화.. 평강..이라고 이해가 된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는 쉬운 버튼으로

십자가를 마음에 담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함' 만으로 단순화 하신

복음을 들고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후'의 도피적 상황 만을 말씀하셔서

세상을 도외시 하고 사는 것만을 강조하지 않으셨다.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믿는 자들의 어떠함에 대하여,

그들의 아픔이 회복되는 '여호와 라파', 치료자로서도

오늘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평안'과 '이리'의 비교를 통하여 깨닫게 하시려는

인생의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그 행복을 잊지 않기 위함에 대하여

그래서 그러함을 세상에 널리 알려 누리게 하기를 바라시는

그러한 의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계시는 것이다.


 이리와 양의 차이.

물리적 힘이 있음과 덜함.

포악과 온순함.

생각이 복잡함과 단순함

갈등과 평안..


그 차이를 결정함은 당연히도 '예수님'을 영접하느냐 아니냐다.

이리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종말적 시대다.

모든 이들이 성공과 성공하지 못하는 기로에서

성공의 기회를 얻어 가진 소수,

그 가진 것으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한 몸부림에 서려고

갖은 노력을 하다가

결국은 노후가 되어 누리지도못하고 파멸의 길, 사망으로 간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가?

부족하면 그들은 곧 절망이다.

단 한순간도 빈 그들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이리'가 난무하는 괴로움의 인생이다.

당연히도 예수님을 모르니 천국백성이 될 수가 업다.

그들이 그렇게라도 사는 것은 이땅위의 잠시가 전부다.

그리고 멸망이 있을 뿐이다.


 '양'인 우리가 누리는 기본 감성은

'평안'이다.

평안은 '예수님'을 깊이 영접함에서 나온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으로 채워지고 예수님의 복음으로 든든해지면

더 이상 흔들릴 일이 없다 .

세상이 어떻게 내 상황을 조율하려 해도

내 맘은 항상 고요다.


나.

실은 조금 고민하는 일이 있다 .

이전한 병원이 지금까지는 아주 맘에 든다.

열심히 한 만큼 아낌없이 돌려주시는 이사장님이 계셔서

전국 최고의 환우 분들이 몰려드는

소위 동급 병원 들 중에서는 top에 속할 만큼

병원은 활기에 차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의 샘과 비교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여기에서 내 가치가 시험을 받고 있다.

정확하고 의학적인 상황에서 앞서나가는 수술과 치료를 그들에게 제공하여

정당한 댓가를 누리는 것...

나.. 그게 좋다.

그러나 의학은 변수가 있다.

사람 몸이란게 수학이 아니기에

의사들 마다 조금씩 치료의 방향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 부분에 의사의 세상적 이치에 발을 들여 '누리는'경우^^;; 가 있다.

이런 부분에서 평안이 잠시 흐트려 졌나 부다.


평안하라..

평안하라..

넌 양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흔들리지 말라..

예수님의 영을 믿어

점점 더 순결해져야 한다.

이게 너를 이 땅에서 정결케 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보장하는 것이다...라시는 거 아니신가. .?



주님.

가라고 알람 벨이 울리네요.

여섯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묵상 먼저 하고 출근합니다.

이제시간이 되어서 가라합니다.

'이리 속으로 가라' 라 시며

그들에게, 제게 '양'의 평안,목자 있는 양이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리는 문제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네요.

주여.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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