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영생의 자격자로서의 사랑 [눅10:25-37] 본문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 은
'무엇을 해야만'
영생을 얻는 다한다.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복음'은
예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한다.
얼마나 쉬운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하신 분을
마치 공기에 쌓여 있으며 공기를 잊기 쉬운 것같이
이 적은 존재들 (영원의 찰나, 우주의 먼지 보다 적은..인간들)의 나약한 인지력으로 인하여
도저히 그 분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아시고(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이신가?)
이 땅에 '성육화'해서 오신 분이 아니신가?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일만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 하시니
이 예수님의 이유 만을 아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여기는 율법에서 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댓가 처럼 나오지만 그게 아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은혜를 체험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된다.
그것.
사랑이란 그런 속성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더욱 더 내 이웃을 사랑하여야
그 하나님의 사랑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대로 따르려 노력하는 것.
하지만 나.
아니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은 조금 더
이웃을 사랑하기 보다는 쉬울 수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분의 조건없이 주시는 사랑을 체험하면
그 분은 안전한 상대로 인식하고
마음을 열 여지가 있지만
아직 주변 사람, 특히 의미있는 타인( 부모..형제.. 스승,... 친구...등 )에 의한 상처는
아직도 온전히 사랑하려면
여지없이 반발하고 나오는
아니 오히려 더 급박히 그들에게 매달리고 싶게 하는
영혼 속의 원죄를 통하여 지워진 상처를 자극하기에 그럴 수있다.
그렇다면 어찌할까?
예수님을 믿으며 이웃을 그리사랑하지 못하는 내 자신.
정말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의 어떠한 부분도 사랑한다.
내 부족한 '이웃 사랑'의 부분.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대하여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더욱 누려야 하고
그분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앎으로
그분이 진정 기뻐하시는 것이
내 이웃과의 화합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기쁘게 만드신
그뜻에 동참하려는 결단이 나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주님은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셨다 ;
그 아픔과 버거움을 극복하고 사랑치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변화가
역으로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자의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 신앙의 척도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코 '무엇을 하여서'
특히 선교지에 나가서...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서
구제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날려서.........가 영생을 얻음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적 사랑'의 불완전한 세상 사랑법이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평강을 이룸으로
이웃과의 사랑도 자연스레이 나옴을 기대하고 기다리신다.
내 할일은
그러한 결심을 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용서하기 힘든 자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라니
사랑할 결심을 하고
그렇게 마음이 풀려 나가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회개하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길 기도하여
그 안에서 점점 더 회복되어져 가는
이 은혜 안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위가 할일이다.
귀하신 하나님.
아침에 일어나 묵상을 하게 하시고
내 조건적 안절 부절이 아니고
주님이 먼저 허락하신 그 위대하시고 거대 하신 사랑의 정수이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고 만남으로
은혜 가운데 흐르는 평강의 기쁨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그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고
그 것을 척도 삼아 좀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생활하기를 결심하는 것.,..
그것이 마땅히 영생을 얻은 자들의 해야 하는 일임을 잊지 않아
영생의 자격자 주하인,
더 그리 살도록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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