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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옥한흠 목사님 설교(펌

주하인 2008. 2. 21. 09:48
 
사랑의교회 옥한흠원로목사님 복음주의협의회발표문전문
 
 

  세속화라는 무서운 세균에 한국교회 감염됐다"

 

 
 
     
 

선배 되신 목사님께서 다 와 계시는데, 제가 왜 제일 먼저 순서를 맡았는지 이해를 못하겠네요. 김명혁 목사님이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기에는 정말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먼저 이해를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이 좀 약해져서 그런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제 마음이 항상 편치를 않습니다. 세속주의라고 하는 무서운 세균에 교회가 지금 보이지 않게 감염되고 있는데, 그 균을 이길 만한 저항력이 자꾸 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을 것 같아요. 여러분 교회 안에 가만히 보세요. 목회자로서 할 말 다합니까? 말씀대로 가르칩니까? 죄를 죄라고 똑똑하게 정말 가슴을 치면서 설교할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 세속화에 물들어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앞에 앉아 계신 어느 장로님 걸려 못하고,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어느 분이 걸려서 못하고,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또 교인들이 마음 상해서 상처 줄까봐 못하고, 이리 저리 못하다 보니까 우리는 성경의 반 토막은 잘라 내고 설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속주의에 물들어가는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거든요. 꼭 어린아이, 버릇없는 아이들, 먹고 싶다는 것은 먹이고, 먹기 싫다고 하면 못 먹이고, 그래서 애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부모와 비슷한 상황이 오늘날 목회자들의 모습 같아요. 애가 고개를 흔들고 짜증부리고 신경질내면 절대 못 먹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애는 자꾸만 편식 현상에 빠지고 체질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요즘은 책망하려는 사람, 성경을 바로 가르치려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뭔가 좀 사고가 부정적으로 잘못된 사람처럼 병자취급을 해 버려요. 우리 지난해 한국교회에 새로운 부흥을 위해서 여러 가지 각종행사도 많이 하고 집회도 많이 했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요. 행사로 다 끝났어요. 성도들의 삶이 바꾼 것도 아닙니다. 교역자들의 자각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행사로서 끝났어요. 왜 그러느냐? 자신을 바꿀 힘이 없어요. 지금 우리 교회가.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어요. 안 잃었다면 잃어가고 있어요, 지금.

 

이것은 우리나라 교회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를 보고 어떤 신학자는 냉정하게 이렇게 평가하더군요. 불개미가 기둥을 갉아 먹고 있는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집과 같다고 했어요. 이것이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의 오늘의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예외가 아니라고 제가 생각합니까? 한국교회도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상암경기장에서 좀 그런 경사스러운 집회에서는 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전했죠. 뭐 제가 전한 것 아니에요. 뭐 성령께서 도대체 그런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다른 말씀을 안주시니까 죽었다 하고 그런 나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을 전한 다음에 일각에서는 저에게 욕을 많이 했어요. 그 경사스러운 시간에 뭐 그리 부담스러운 말씀을 전하냐? 이러면서 아주 좋지 않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것도 교역자들이 그랬어요. 그래서 '아 오늘날 현실이 보통 심각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제 나름대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10년 후에 한국교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오늘날 10대, 20대가 나중에 교회의 중심이 되었을 때, 한국교회 모습이 어떨까요? 영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10년 뒤 한국교회 모습 어떨까

은퇴를 하고 나서 매일 집에서 집사람이랑 가정 예배를 보는데,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어 넘어가는데, 기가 막히는 거예요. 복음은 좋아요. 복음은 읽으면 행복하고 감사하고, 그 복음을 적용하는 면으로 넘어가면, 숨이 콱콱 막히는 거예요. 왜냐면 내가 그대로 살지를 못하니까.

 

그리고 가만히 돌이켜보면, 내 목회 때 이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한 일이 몇 번 있느냐? 한 번도 전하지 못한 말씀이 수두룩 수두룩하다는 거예요. 왜 전하지 못했느냐? 교인들이 부담스러워 하니까. 또 그런 말씀을 자꾸 전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목사처럼 들리니까 자연히 기피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집에서 성경을 보면서 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리낌 없이 가감하지 않고 말씀대로 전하는 목회자의 양심을 빼 먹고 25년 사역을 했구나 하는 저 자신의 가책과 아픔을 많이 느낍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작은 집회이지만 이 집회를 통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각성시키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사는 길은 교회의 고유한 능력과 거룩함과 또 교회가 지니는 고유한 진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예이지만, 간단한 예를 들겠어요. 1919년 간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변호사로 개업하고 있던 때입니다. 한 번은 일등석 기차를 탔어요. 그런데 유색인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쫓겨나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간디는 절대로 예수 안 믿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그가 인도로 돌아와서 독립운동을 30년 동안 했지 않습니까? 그는 예수는 안 믿기로 작정했지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을 실천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중에 특별히 산상 수훈,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 대라, 그 말씀을 자기가 지키기로 작정했어요.

 

그것이 발전해서 우리가 잘 아는 비폭력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비폭력 운동을 시작해서 30년 동안 독립 운동을 했는데, 이 한 사람이 말씀 한 부분을 붙들고 실천하려고 하니까 그 파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당시 인도 전역에 비폭력주의를 하다가 감옥에 끌려들어간 사람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비폭력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20만 명 이나 들어가 있으니까 그 감옥이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것이 감옥이 아니죠. 그래서 서서히 영국이 그 비폭력주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까? 드디어 영국이 항복하고 인도를 떠날 때입니다. 그때 간디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철수하는 영국인들에게 말했어요. "당신들이 만든 예수는 가져가고, 성경 속에 있는 예수는 두고 가시오. 내가 볼 때 당신들이 떠드는 예수는 당신들이 만든 예수지, 성경 속의 예수가 아니요. 성경 속에 있는 예수는 두고 가시오." 참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따끔한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를 믿어라

한 번은 유명한 선교사가 그를 찾아가서 힌두교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인도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몇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첫째는 당신네 선교사를 포함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기독교가 뿌리를 내립니다. 

 

둘째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철저히 순종하십시오. 그 가르침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저하시키지 마십시오. 그러면 기독교 삽니다.

 

셋째는 사랑을 강조하고 그것을 추진력으로 삼으십시오. 그것이 기독교의 중심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로 말했어요.

우리 생각에는 힌두교와 적당히 잘 조화를 이루어서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적당히 공존하면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기독교가 살 길은 기독교가 기독교  다울 때 사는 것이고, 교회가 사는 길은 교회가 말씀 위에 굳게 섰을 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디가 꿰뚫어 본 것이고, 자기가 실천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게 한 사건을 통해서 입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속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세상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그릇 깨지는 소리 내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교회가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고, 성도들이 세상 적으로 환영받는 길이라는 막연한 이 세속화에 물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뜨리고 기독교답고, 예수 믿는 사람답고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는 우리가 될 때 우리가 사는 길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우리 스스로가 실천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 우리에게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실 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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