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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 만을 바라는 자[시119:81-9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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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 만을 바라는 자[시119:81-96]

주하인 2025. 5. 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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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산다는 것.

심히 '피곤한' 거다.

 

 비록

주님의 말씀을 인하여

내가 여기까지 살아오게 될 수 있었지만 -정말이다... 난.. 주님의 말씀, 로고스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절대로....다. ㅜ.ㅜ- 그러나, 지금도 

자주도 '피곤한' 일 투성이고

힘든 게 사실이다. ㅠ.ㅠ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다행이도 

그럴 때마다 더욱 말씀에 다가가는 습관이 생겼고

그러함은 

그 '피곤함' 조차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계시며

주님께서 모를 일 없으시다는 

확실한 믿음과 근거 -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진, 허락되어진 내 인생의 간증들이 그 근거다.   이 블로그 근 30년 가까이 써올려온 것들이 그 근거다 ! -를 가지고 그리하지만

아직도 '피곤한 삶'에 대한 힘듦은 사실이다. 

 

 하나님 믿는 다고

누가 병이 절대로 없고 

항상 기쁘고 

늘 행복만 하다고 고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

"내 눈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다"라 되어있지 않은가?

 

 이 고백.

나는 이렇게 느껴진다. 

이분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깊이 만난 분으로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체험한 자이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으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코람데오 삶'의

기적과 그 일상의 체험들을 한 분이어서

'말씀'을 듣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을 

삶속에서 절절히 아시는 분...

그러나 그러한 그 분에게도

때로는 '정말로 필요할 때'

레마로서의 말씀,

하나님의 존재, 임재로서의 말씀을 들려주심이

잠시 '멈추어 '있는 상태일 거란 거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을 간구하고 간구하는 거다. 

그게 포인트다. 

 

 주님은 주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얼굴을 감추시고

말씀을 멈추실때 가 있으시다'는 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유익'을 위함이며

그 유익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말씀 사모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주의  

 

83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 연기 속의 가죽 부대' 라는 표현의 의미가 아래와 같다. 

 

시편 119:83의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라는 표현에서,

연기 속의 가죽 부대”는 고통스럽고 초라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문화적 배경과 의미를 풀면 이렇습니다:

  1. **가죽 부대(Skin bottle)**는 고대 중동에서 포도주나 물을 담는 데 사용되던 동물 가죽으로 만든 용기입니다.
  2. 이 가죽 부대가 연기 속에 오래 있으면, 그을려서 검게 변하고 마르고 쪼글쪼글해져서 보기 흉하고 쓸모 없게 됩니다.
  3. 시인은 자기 자신이 그런 모습, 즉 지치고 버림받고 소망 없는 초라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고백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이것은 시편 기자가 아무리 인생이 괴롭고 쇠약해져도

**하나님의 말씀(율례)**을 굳게 붙잡고 있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마치 외형은 다 말라가도, 내면은 말씀으로 붙들려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구절은 고난 중에도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깊은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비록, 이러한 상황에 처하도라도

이러할 만큼 '주님의 말씀'을 사모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6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모두 내 의지나 노력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가능치 않을 일들이다. 

오직 말씀은 '율법과 율례와 규례'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겠고

하나님은 '자유'보다는 '속박'이나 '도덕 '선생 -몽학선생 ^^;- 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가?

 정말. .아직도?.. ㅠ.ㅠ

 

아니다. 

주님의 말씀은 '계명'이지만

'신실한 계명'이시다. 

그 의미는 곧 나온다. 

'나를 도우는 신실한 계명'이시다...라 고백한다. 

 

주님의 말씀은 ''나의 즐거움''이다. 

 

 주님의 말씀이 있으시기에 

모든 핍박에서 건너 나올 도움이시며 

주님의 법- 법, 계명을 , 모든 주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기자가 말함은 그 어떠한 형식에도 주님은 신실하시고 즐거우신 분임을 깊이 깨달은 자유.. 를 거꾸로 상징함이 아니던가? 할렐루야 , 주님의 말씀은 계명이고 법이지만 생명이고 자유다!.. 다.-은 

"나의 즐거움''

그것도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 중에서도 

'즐겁게 살아나오게 할-그 당시는 심히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고난이지만 ,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주님의 성령의 은혜로 이끌어주신 그 과정은 심히 즐거움, 생명력이 이글거리는 시간으로 기억됨, 그 간증으로 남는 것의 이유는 우리, 나는 특별히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 멸망으로 부터의 유일한 길이신 

'즐거움'이시다. 

 

 이 시편기자는 이렇게 마무리로 고백한다. 

"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그렇다 .

모든 완전한 것 중의 

진실로 완전하신 것은 

주님의 계명이요...

주님의 말씀 하나하나는 '계명'처럼 딱딱한 것 같지만

깊이 말씀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는

'심히 넓은 ' 진실.. 

신실하고 

유일한 인생의 진실한 즐거움임을 깨달아 알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렇다. 

이 좁은 '내면의 우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세상을 바라다 보면

이제.. 이 지구, 이 좁은 'ㅍㅌ'에서 벗어나

넓고 크게 '관조'하고 바라다볼 수 있다. 

 

그때는 

이 인생의 풍랑, 바람과 먼지 같은 부대낌들이

말그대로 한낮 스쳐지나가는 미풍에도 지나지 않음을 깨달아

삶이 훨씬 가볍고 자유로와 지게 될 수 있음이다. 

 

 비록 나... 우리.. 

육신의 껍질을 쓰고

이땅의 '피곤'과 어려움의 칼바람 속으로 

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허락되어진 '광야 인생'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오늘도 또.. 한꺼풀 한꺼풀

이 피곤의 고난을 풀어내어 보리라. 

 

 주님.

심히 피곤합니다. 

특별히 ㅇ산 땅에 내려가 일도 많이 했고

지난 주말에는 주님 안에서 예배드린 후

'어버이 날' 가족행사 가졌으며

'어머니' 찾아 뵙고 .. 

'장모님'도 찾아 뵙고.. .

새벽에 입원한 두명의 응급환우들을 진료하고...ㅜ.ㅜ

많은 움직임 들이 있었습니다 

 

 나이든 육신,

아주 오래된 제 허리의 문제가 

또 몸부림 치며

이 피곤한 '화요일' 근무의 발걸음을 

또 무겁게 하려 잡아 다니려 합니다. 

 

주여.

말씀을 묵상함, 

주님 앞에 섬을 조금은 줄여도 이해하시지 않을까 .. 하는

잠시의 유혹은 있었지만

물리치고 말씀 앞에 서고

기도했습니다.

 

말씀으로 읽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오직 제 안의 피곤,

제안의 비난 조롱

제 안의 멸망에 대한 오래된 두려움..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오직 말씀 만으로

난.. 자유자다.

난... 신실하신 주님 앞에 서 있다.

난.. 완전한 주님 안에서 살 수 있다라는

마음의 뒤바꿈이 회복되었씁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오늘도 말씀 붙들고 이 피곤한 하루를 이겨내겠습니다. 

완전한 자유를 기대하며 그리하겠습니다.

감사하오며 거룩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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