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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에(욥 4:13-19)

주하인 2008. 9. 4. 12:01

제 4 장 ( Chapter 4, Job )

 

 

불면의 
어둠 속을 헤메던

예전의 내가 

주님을 만나고

날로 날로

푸른 창공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 하늘의 깊음을 볼 때마다

깊은 가슴떨림과 더불어

그 하늘을 만드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전율케 하며
이쁜 하늘을 볼 때마다

사진기를 들이대게 되었다.

 

나팔꽃이 이루는

저 선의 아름다움이

내 굴곡의 인생이 엮어낼

더 큰 아름다움과

어찌 그리 비슷할까.. 
마구 흔들리는 나팔꽃을 
쫓기는 
아침 큐티 찬양인도 시간에

맞추어 서두르느라
촛점도 못 마추었네요..ㅎ

 

 

 

 

 

 

13.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 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사람이 깊이 잠들 때 쯤.

잠을 잘 시간이 되면

충분히 잘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불면증

잠을 못자는 불면증의 고통은

당해 본 자들 만이 안다.

특별히

'KBC'인 내 이름 끝에

'C 대신 '잠''이라는 이름을 붙혀

KB잠이라는 별명을 붙혀져

병원 내 '3대 잠보'...안에 꼽힐  정도로

잠이 많던 나다.

 늘 눈꺼풀이 무거워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중학교에 서울 전학 이후

중학교 세군데

고등학교 두군데

의대

인턴 레지던트 생활을

졸음에 견디지 못하고

잠을 잘 자던 나로서는

 - 통학 시절에는 만원 버스안에서 '서서도 잤다' ,

   앉아서도 버스 밖으로 머리가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자다가 말  안듣는 다고 오해 받으며 어른에게 혼도 났고,

   전학가는 학교마다 첫날 부터 졸다가 모질게도 혼났다.

   고등학교의 '국어'선생님은 첫날에 날 대걸레로 모질게.ㅎㅎㅎ

    나중에 그게 나의 어쩔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고통임을 이해하며

    조금은 미안해 하셨다. ㅎㅎ  ^^;;;;;;;;;;;;;;; 

     수술하다가는 인턴시절에는 수술기구를 당기고 있어야 하는 데

    그 기구를 잡은 채로 서서 잠이 들기 일수여서 많이 혼도 났다... - 

불면증이라는 게 

나, KB잠의

인생에 찾아 올 줄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 무서운 ^^;;  불면의 시간은

개원하고 나서

격무와

비교와

스트레스가 겹쳐지며

새벽 4시 넘어서야 겨우 잠드는

그런 불면 증을 앓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으면

눈은 빠질 듯이 아프나

잠은 안오고

머리 속에는 갖은 상념이 떠오른다.

'생각이 번거롭다'는

성경 구절의 표현이 절묘하다.

이게 어쩌다가 그렇다면

견딜 수 있는 이야기지만

거의 매일 눈 감으면

빙빙도는 생각의 꼬리들이

가끔은 과거의 속상한 일들이 겹쳐 오면

벌떡 벅차고 일어나

씩씩 거리다가

잠을 망치기 일쑤다.

이럴 때는

나가서

거실에 VTR 틀어놓고 멍하니

꼴딱 밤을 새우다가

눈이 벌겋게 되어서야

잠시 잠이 들고는 했었다.

 이러한 불면의 밤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건강을 자신했었으나

어느 순간에는

후회와

탄식과

미움과

불안과

갖은 생각으로

혈압이 서서히 올라가고

피워대는 담배의 수를 늘려가며

온몸이 삐걱 대기 시작했다. 


 
 
16.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주님의 역사는

이때 즈음 시작이 되었었다.

 어떤 일이 - 아~유~~생각하기도 싫은 ~~- 시작이 되고

내 불면의 단초가 되면서

아내는 '옳바른 선택'을 하였다.

중학교 때 열심이던 '교회'를 뛰쳐 들어갔고

그때부터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남편의 그 붉은 눈

- 눈이 빠질듯 아팠지만,

   아마도 그게 생각 속을 뛰노는 사단의 '눈'으로 나오는 표현이리라.ㅎㅎ  - 을 피해가며

새벽교회까지 나가는

대 역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삼년을 '수영가방'에 성경을 넣고

- 걸리면 새벽 수영 간다고 하려고...ㅎㅎ 거짓말 쟁이 아내.ㅎㅎ   감사한....너무도.....

   눈물이 나려한다.   가끔... 예수님 영접한 것이  그 아내의 그러한 고통의 시간 탓에.....ㅜ.ㅜ;; -

소파에 앉아서 자는

내 수면을 깨우지 않고

혹여 들키는 일에 대비할 목적으로

그리 교회에 다녔다.

이 강골 불신자가

그 얼마나 심하게 핍박을 했던가...

 

 아내는

그런 나를위해

눈물로서 그 삼년을

 기도했단다.

그리고는

삼년 만에 쫓아나갔던 교회에서

난 눈물을 흘려가며

예수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날로서

불면은 사라졌다.

할렐루야.ㅎㅎ

 

 

 오늘

욥의 친구 엘리바스의 '말'이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있다.

 친구로서

며칠 간을

정말 조심스럽게

정말 좋은 친구로서 가만히 있었다.

좋은 친구.......

그가

그를 만나러 오기 전

얼마나 혼란스러웠던 지

잠을 자지 못하고

많은 생각으로

불면의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는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되는

'영'과 만난다.

그 영의 형체는 뚜렷하지 않은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주님의 영이시라면

주님의 정말 온전한 뜻이라면

좀 더 뚜렷하고

좀더 맑았을 텐데

그가 그 영을 만난 상황은

혼란스러운 생각들로 뒤죽 박죽되어 있었던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옳은 소리를 한다.

누가 보아도 부인하기 어려운 소리.

'하나님과 비할 자가 누가 있는가?

 누가 하나님 앞에 옳을까?'

그걸

그는 가슴에 담고 있다가

이제 아주 오래 참다가

그는 토해낸다.

그의 얘기는 '벌은 죄의 결과다' 이다.

옳다.

그러나,

상황이 옳지 않다.

 욥은 혼자도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얻고 있다.

거기에

옳지 못한 무엇이 보여도

가만히 있고 동정을 해 주어야 하고

공감을 해서

그가 일어서도록 배려하는 것이 옳지 않는가?

 옳지만 옳지않은 것이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설교'다.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불면은 '생각'의 혼란의 결과이다.

생각이 복잡함은 몸도 마음도 흔들릴 수 있다.

단순해야 한다.

단순함은 '주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야 한다.

주님의 뜻을 찾으려지만

주님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화평' 가운데 '평강의 전율'과 함께 오신다.

그 분은 미심쩍고 불명확한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해야 한다 ' 보다 '네가 그랬구나'하시는 분이시다.

즉,

그 분은 사람의 아픔을 긍휼히 여긴다음

회복 후 인도하시는 분이시지

정죄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공의는 '사랑' 가운데 이루시는 것이시다.

 남이 어려운 가운데 있을 때는 지도하지 말아라... 특별히 주하인 !!!

 

 또 하나,

기독교인에 있어서는

 '고통'이 '권선징악'의 결과가 아니다.

고통은 주님의 뜻일 뿐이다.

고통은 '위로'의 또 다른 의미이고

축복의 변장일 뿐이란다.

 

 

 

 

 

적용

 

1. 불면을 없애주신 '능력'의 하나님을 다시한번 돌이켜 본다.

   감사하신

   살아계신 그 분 !

   나에겐 수없는 간증거리를 주셨다.

   열두 돌. 지계석...

 

2.   힘든 자를 위로 하겠다

  판단과 정죄는 마귀다.

 

3. 회개한다.

 엘리바스 같은 모습이 많다.

 

4. 성경 여섯 장을 읽겠다.

 

5.  남을 먼저 생각 하겠다.

  중보를 한다.

  고모부........

 

 6. 고난은 죄가 아니다.

 정죄할 이유도

 두려워할 이유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

 

7. 당직 방에서 '평화의 숙면'을 이루리라

  기도와 더불어..

  평안한 잠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기도

주님

불면의 시간을 없애 주시고

불면의 그 시간의 경험을 통하여

불면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그 과정을 통하여 드러내신

당신의 살아계심을 체험케 하시는 하나님.

내 경험을 나누고

말씀을 통하여

그러한 과정조차 주님의 은혜의 배려의 시간이 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신 감사하신 하나님.

특별히

주님을 믿으며

이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되면

배려 못하고

내지르며

정죄하고 아픔을 주던

엘리바스 보다 훨씬 못한 심성의 주하인을

다시금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판단은 피하게 하소서.

아무리 옳은 듯 해도

상황에 맞지 않은 옳음은

그럴듯한 마귀의 '천사 변장'임을 확신하게 하소서.

남을 먼저 생각케 하소서.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어떠한 것인지를

스스로 확실히 구분할 능력을 깨우치게 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향기를

당하는 자들이 느낄 기회가 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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