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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되 보지 못하고 알되 알지 못하고( 마 26:1-16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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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되 보지 못하고 알되 알지 못하고( 마 26:1-16 )

주하인 2010. 3. 23. 10:29

  제 26 장 ( Chapter 26, Matthew )

 

 

이 장면이

두렵게 보이시나요

안정감이 있게

보이지는 않으시나요

 

어떤 분에게는

끔찍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지요 

하지만

주님의 회복시키실 것임을 믿는

저에게는

오히려

안온하게 느껴진답니다

 

수술이 잘 되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부드러운 사진의 톤이

안정감을 주고

링겔에서 떨어지는

한방울 한방울의 수액이

아픔보다는

생명의 회복을

두려움 보다는

의술진의 땀을

느끼게 한답니다

 

보고 알고 느낀다는 것

이것처럼

같은 것이라도 

완전히 다르게

느낄수가 있지요

 

주님 말씀  만이

주님 성령의 평강만이

진리의 기준이 될 뿐입니다

 

샬롬


 
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

제자들도 그랬다.

 유월절  .

그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말씀 하셨기에

그들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에는 '유월절'의 행사만 기억되고 있지

예수님의 십자가라든지

그 분의 고난 등은 기억되지 않았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다.

 

 안다는 것.

그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안그런가?

많이 배웠다고 인격까지 따르던가?

예수님 믿은 시간이 길다고

반드시 '영성'과 상관이 있던가?

왜 그런가?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던가?

 

 

3.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그때에(then),

바로 그 시간에

제자들은 알되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바로 그 시각에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넘어서는

악한 일이 도모되고 있었다.

 알지도 못하고 악한 일을 하는 것.

인간들의 모습들..

 

   
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우리라고 무엇이 다를까?

만일 성경을 모르고 그 당시에 상황에 던져졌더라면

이들 제자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그리 장담하기 힘들다.

 제자들은 '웬 남루한 여인이 비싼 향유를 들고와서

갑작스레이 식사를 하고 계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격에 맞지 않는

아주 값비싼 향유를 필요없는 행위인 주님 머리 위에 붓는 일을 하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로 느껴졌을까?

 그래서 그들은 '보고' 분함을 느꼈다.

보고 느끼는

그 사이에 어떤 메카니즘이 작용해서

분노로 표출 되었을까?

 아마도 여인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면서

'자격없는 여인'이라는 무시가 있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한걸음 더 나가 그녀의 격에 맞지 않는

과도한 향유의 소지를 보며 '도둑질..? ' 하면서

의심을 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아니면 제자들의 마음에 숨은 '아까움'이

분노메카니즘을 자극하지는 않았을까?

그보다는 자신들의 허락을 맞지 않은 데 대한

기득권 침해의 논리는 아닐까?

..

무엇이 맞든 간에

그들은 '본 것을 보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짝 비틀어 보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본것을 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왜곡'을 불러 일으켰다.

 

 위의 '유월절'에 대한 것은 어떨까?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알지만

그들의 욕심이나 유월절 행사에 대한 흥분으로

주님의 고난에 대한 것은 잊어 버리고

유월절 행사 자체만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니던가?

  
  
14.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그때에(Then)

바로 그 시각에.....

어처구니 없이도... 라는 뜻이다.

가롯 유다라는 제자는 예수님을 팔아먹고 있었다.

 이게 인간이다.

 

 

  참으로 인간은 어리석다.

그리고 그들은 또

그들이 보고 아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모두 인것으로 착각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하나 더 첨가하면

사람 만큼 추악하고 바보같은 존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이 기뻐하시고 이뻐하시지 않는다면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

무엇을 기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주님의 그 사랑 많으심은 참으로 놀랍다.

무엇 때문에 이들을 위해

나같은 죄인을 위해

이 판단과 감각의 오류덩어리 속물에게

십자가라는

그 엄청난 사랑을 쏟아 부으시면서

날 사랑하셨던가?

 

 이 인식의 오류 덩어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의 오류덩어리들인

'인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비록 내 안에서

'이 어리석은

 이 엉터리 같은... ' 비판의 소리들이

날 휘어 잡아 남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려 하고

나 스스로도 감싸지 못하게 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말라기서 이후

400년의 고뇌 가운데 결단하시고

그 아들을 보내시어

이 땅에서 피뿌리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엄청난 사랑의 이유가 있으시단

그 때문에 그냥 인내하고 참아 볼 뿐이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을 보내시면

그 마음을 펼치시고 넓히시어

이전의 혐인적 생각에서

이제는 긍휼한 마음이 생기고

사랑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 알파님 아침의 리플에

'사람을 사랑하는 온전한 믿음'에 대하여

기도 중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달아 놓으셨다.

 

내 방에

정말 귀한 분들이 오신다.

인터넷 .

 이 지옥도 같은 사이버 공간에도

마치 칠천 선지자 같은 분들이

싸이버 특유의 헷갈리게 하는

묘한 재미를 착각하고

그것이 영성인양 '바글 바글' 시끄럽게 하는 류의

그런 분들이 아닌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려는 -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는 주님이 판단하실 것이다. ^^* - 자들이

한분 한분 모이시고

좋은 영적 영향을 베푸신다는 사실이 기쁘다.

 

 나.

보고 듣고 생각해서 판단내리고...

아주 빠르다.

그러기에 내 눈이 보고 내 귀로 듣고

머리 속에서 경험의 바탕을 한

여러가지 정보를 규합하여

판단 내리는 데 아주 '이골'이 난 자이다.

그런 나는 일 부분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 '오류'를 일으킬 위험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사는 시간이 늘어나고

귀밑에 서서히 흰머리가 늘어나면

내 판단이 옳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가고 있을 위험이 다분하다.

 특별히 말씀 묵상의 시간이 늘어가며

블로그에서 글 올리는 분량이 오래되어가면서

난 나 나름대로 내가 받은

주님의 말씀 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을 위험성이 많다.

 

  인정한다.

특별히 오늘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 감각적으로 보고 듣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오류'에 대하여 특별히 말씀하시고 자 하시는 것 같다.

 너무 제한된 생각.

너무 고식적 판단.

이러다가 주님 마져 내 재단 속에 들어오지 않으시면

잘못되었다 할 무서운 일 범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말씀 앞에 온전히 서 있음.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 놓고

주님이 채워주시는 생각과 판단 만을

주님의 성령이 주시는 평강을 검증으로 하고

십자가의 원리

주님 예수님의 그 사랑의 원리에 의하여

걸러내고 검증하고

예수님의 그 때에 행하신 행동을 바탕으로

닮아가려 노력하려는

자기 검증의 시간들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특별히

어렸을 적은 나름 대로 인정받고 옳았던 행동들이

성장하면서 점차로 '유아적'이고 유치한 것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성장의 몸부림일 수 있다 .

 

 적용

 

1.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판단은 죄악이다.

 알면서도 버리기 힘들다.

 주여 도우소서.

 오늘 특별히 말씀으로 인도하시니 그러소서.

 

2. 감각적인 반응을 피하자.

 눈이 보고 머리가 알아듣는 것을 다 믿지 말자.

 늘 주님께 여쭙는 삶이 되길 원한다.

 화살 기도를 잊지 말자.

 '주여 저것이 맞는 지요.'

 

3.  주님의 뜻을 알자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는 위험을 벗어나자.

  주님이 원하시는 그때,

  주님을 반대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

  성경 여덟장 읽겠다.

  읽다 보면 마음을 걸러주는 구절이 늘 새로이 눈에 띈다.

  말씀 앞에 나를 늘 비추자 .

 

4.  지인의 모친이 아침에 소천하셨다.

  바쁘더라도 가보자 .

 이전엔 부탁을 너무 싫어 했었다.

  나도 , 남도 나에게 하는 일련의 부탁은 극도로 싫어 했었다.

 하지만 손해 봄이 주님이 원하심을 알게 되고

 둘째 아들의 문제로 도움의 손길을 통해

 사는 것은 서로 도우면서 사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이제라도 이러니 다행이긴 하지만 ..

 

6.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더 진중하고 더 사랑하자 

  모든 사람은 다 그렇다.

  그런 자들을 주님이 사랑하셨다.

  나도 사랑하자.

  이 인식 오류 덩어리인

 나를 위해 주님 돌아가셨다.

 

  

기도

 

  주님

귀하신 분.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지만

가끔은

사람들에게서

나 자신에게서

어리석고 추악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분노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기본 품성이 좀 급했습니다.

주님.

이제 돌아보면

그런 부족한 것은 화 낼일이 아니고

오히려 감싸 안고 칭찬할 일일 수도 있었습니다.

마치 향유옥합을 보고 분내는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었던가

그냥 거울에 비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깨달음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반영될지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

솔직히 성공하는 확률이 1%도 안될 것 만 같습니다.

용서 하소서.

이 부족한 죄인의

어리석은 판단을 잡아주시고

내 감각기관을 맹신하는

이 아둔함을 깨닫게 하소서.

지혜를 주소서.

모든 사람이 이유가 있음을 전제로 하게 하소서.

그들이 다 이유가 있음을 믿게 하소서.

그리고 사랑으로 그들을 덧입혀 받아 들이게 하소서.

주님이 하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을 때

내 인생의 폭이 한량없이 넓어질 것을요.

주님.

저.

잊지 않게 하소서.

도우소서.

보고 아는 것.

그것을 믿지 않게 하소서.

주님 뜻대로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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