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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짐은 기회다(요9:35-41)

주하인 2009. 2. 4. 11:52

제 9 장 ( Chapter 9, John )

 

칠흙 하늘의 초생달.

외로운 듯 보이지만

그 곁에 별이 있다.

 

주님 안계신 초생달의 삶.

으스스하지만..

주님이 계심

별밤이다.

 

곧 새 날이 밝아올 것이고..

 

 


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쫓겨난 자.

소경이었던 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예수님 쪽에 가까운 자.

 

쫓아낸 자.

바리새인들.

하나님을 알지만 은혜는 모르는 자들.

세상의 대표.
 

 쫓겨날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렇지 않음이 확실한 듯하다.

어제 묵상의 당당함을 보라.

현실적으로는 먹고살길이 막막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눈을 뜨기는 했지만 세상에서 내치임 받았으니 현실이 막막할 것은 예상이 된다.

만일 나를 저기에다 대입시켰더라면..

과거라면 많은 혼란이 있을 것이다.

비록 예수님의 구원의 기쁨은 컸을 지라도..

지금은 . ...

창피하고 속이 상할 것은 변함이 없지만

잠시고 곧 안정이 될 것 만 같은 생각이 든다.

 

왜?

주님이 들으실 것을 신앙의 경험이 쌓였기에 믿을 수 있고,

그분이 나를 만나주실 것을 알기에

두근 거리는 기대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속이 상하는 마음은

옛 상처의 흔적으로 

아리게 내 속을 흝을 것은 분명하지만

은혜의 체험에 대한 '향수'같은 기대로

분명코 난 기대하고 있을 지 모른다.

그런 가정을 하면

주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눈을 뜨고야 만 소경과

이제 시력회복되어가는 나,...

모두 세상에서 내어 쫓김의 경험이 불행 만은 아님을

쉽게 주장할 수 있다.

 

 내어쫓김.

홀로 내쳐짐.

외로움.

.......

지금도 전 세계적인 대란으로 인하여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경험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그런 두려움.

 나 주하인.

수년 전 .

의료사고를 당하고

IMF가 몰려와 나를 짓누르고

이곳 저곳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손길을 내밀지 않고

내 속의 깊은 상처는 또아리를 풀어가며

나를 자극할 때

난 홀로 세상에 내어버려진 듯,

세상에 혼자 뿐인 듯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을 듯한 절해의 고독을 느꼈다.

 속은 타들어 가고 심한 외로움으로 살풍이 불어오는 듯하고

잠은 오지 않아 눈은 빠질 듯 하면서도

피곤은 몰아치고

하루 종일 그 좋아하던 라면 한 젓가락 삼킬 수 없는

식욕을 잃음 속에서도

서서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내 영혼에 발아 되면서

말씀 앞에 서고자 하는 일련의 기회가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폭죽이 터지듯

이 어두운 영혼 안에

주님의 은혜가 쏟아지면서

점차로

세상에서 내어버려짐은

꼭 절대의 고난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게 되었다.

이제

고난은 유익이라는 '통속적'인 듯한 구절이 사실이며

고난과 더불어 위안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친다는 것도 진실 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소경이 눈을 뜨고

그 진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자기 '의' 덩어리 유대 바리새파 들 ,

어쩌면 세상의 거센 힘으로 상징되는 그들에게서

그들의 믿고자 하는 거짓 진실에 부응하지 못하는 소경이

멈칫멈칫 하다가 그들 손에서

결국 내어침을 받자마자

예수님은 그 '소문'을 들으신다.

 

 이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주님은 늘 들으신다.

주님은 세심하게 우리를 살피신다.

우리가 고통 받고 눈물 흘리고

우리가 버림 받고 세상에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기다리고 보시고 계신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

그리고는

바람처럼 다가오셔서

넘어져 있는 소경같은 우리들에게

손을 내미신다.

 

 그리고는 다시

'네가 믿느냐'고 물으신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믿을 용기와 지혜를 깨닫고

결단의 소리를 내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그럴 때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서슴없이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절도 해야 한다.

행동도 따라야 한다.

 

소경의 입장을 다시금 돌아 본다.

그는 눈이 떠졌다.

그래서 보이지 않던 앞이 확하고 커튼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캐나다를 작년 초 다녀왔다.

그 아름다운 풍경은 정말 가슴이 감동으로 뛰게 했다.

수일 지나니

눅눅한 습기와 차가움, 이국적 풍경에 대한 버거움과 더불어

감동의 무감각해짐이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더 지나니 감동이 없어졌다.

 눈을 뜬다는 것.

생물학적으로 감동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렇게 될 것이다.

눈을 뜨고 사는 '나'는 최소한 보는 게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못하다. ^^;;; 

실은 감사하고 살아야할 조건이지만..

캐나다가 매달 한번씩 가보고 싶은 나라이긴 한 것 처럼...

이제 그렇다면 그 소경에게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고민이 있게 될 것이다.

먹고 사는 것.

이전에 앉아서 두손 벌리고 머리 숙이고 모자를 잡고 만 있으면

풀칠할 정도의 돈은 쌓여서 되었겠지만

이제 어떤 생활의 방편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지

실은 현실적인 장래의 대책이 머리가 아플 수 있다.

내 나이 50.

주님을 알지 못했다면 - 실은 믿고나서도, 작년 초반까지도 - 인생의 후반의 삶에 대하여

많이 혼란 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 장님이 눈을 뜬

그 후의 삶에 대하여 왜 생각이 없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세상에서의 내쳐짐'은

 어찌 생각하면 위에 적어 놓은 주하인의 절박함과 근접한

고통이 될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소경이 참 담대하다.

주님 앞에서

'주여 내가 믿나이다'하고 털부덕 절을 해대는 그의 모습은

순진하고 생각이 없이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주님이 말씀하시는

여기서의 '소경'은 육체적 소경을 말함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영적인 소경이다.

 주님은 주님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도

눈을 뜨지 못하는 바리새인 같은 기독교인들은 포함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다 영적인 소경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되 세상에 양다릴 걸치고 있는 자들이며

그들은 온전히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에 구분된 자들이 아니며

그들은 눈뜬 소경처럼 세상의 걱정 근심을 멀리하고

온전히 주님께 감사함 -감사함이 중요하다. -이 있지를 못하는 자들이다.

온전히 주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죄가 있는 자들이다.

온전히 죄씻김 받기 위해서는

구원을 받은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눈을 떳으되 시력이 회복되기 위하여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주님을 온전히 믿는 영양제가 필요하다.

눈을 잘 관리하는 요령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순전한 소경의 그것과 같은 순수함이 필요하다.

감동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주님은 감동이다.

주님은 기쁨이다.

주님은 눈물이다.

 

눈을 뜨게 하시고 시력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버려짐은 경험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을 감사할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늘 묵상해야 하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주여 오소서.

마치 소경에게 오신 것 처럼 오소서.

실망하지 않도록 그리 오소서.

날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있지만

그리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거의 소경에게

맑게 오소서.

그리하여

소경에게 '네가 믿느냐 '물으신 것처럼

저에게도 천둥처럼 물으소서.

'주하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하면 제가 대답하겠나이다.

 '주여 당연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요.

주여.

이 소경같던 자.

눈뜨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여 .

이 소경같은 자.

아직은 주님을 기뻐 믿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그러나, 세상이 날 버린다는 생각에 미치면

두려움이 몰려 오려 합니다.

마치 버려진 듯한 기억 탓인 듯도 합니다.

너무도 추웠던 옛 상처의 탓이기도 한 듯합니다.

주님 이제는 옳게 눈뜨고 보길 원하여이다.

주님이 날 원하시고 바라셔서 허락된 고난임을요.

어떠한 고난이 와도

주님이 내 곁에 계시고

주님이 날 위해서 그러하셨음을 믿게 하소서.

더 좋은 주님의 뜻을 위해

날 기다리고 계셨음을 알게 하소서.

그래서

매사가 기쁘고 긍정적이게 하소서.

주님이 모르시는 일.

하나도 없음을 다시금 돌이켜 생각합니다.

그게 온전하게 영혼에 박히는 원리가 되게 하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적용

 

1. 난 소경에서 눈뜬 자다.

 이제 시력회복하고 있는 자다.

 나는..

 

2. 세상의 버려짐을 두려워 말자.

  홀로 소외된 듯한 잘못된 감상에 속지 말자.

버려짐은 얻음이다.

천국을 얻음이다.

 

3.주님은 늘 날 보고 계신다.

  잊지 말자.

 내 어려움을 다 아신다.

 

4. 주님은 손 내미신다.

 버려질 때 함께 하시는 시간이시다.

고난과 위안은 같은 말이다.

 주님 예수님으로 인하여서 만 그렇다.

 

5. 주님은 사랑이시다.

 주님은 기쁨이다.

 주님은 안정이다.

 

 예수님이 전제 되지 않은 그러함은 어디에도 없다.

 

6. 성경 일곱장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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