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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염려 & 의와 자유로움[마6:19-3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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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염려 & 의와 자유로움[마6:19-34]

주하인 2023. 1. 31. 06:30

세상에 대한 욕심이 붉을 수록

자신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염려와 불안과 불행은

비례하여 커지게 된다

 

오직 주님 앞의 의로움만이

그러한 인생의 모든 염려와 불행이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하며 현명한 길이다

 

최소한 그 길 위에 서 있다 

할렐루야

 

.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하신다. 

무엇을 보물처럼 여기느냐에 따라 

'염려'와 '자유'가 결정된다는 말씀이 아니신가?

 

 염려라는 것은 정말 아무 쓸모 있지 않은 것이다. 

염려는 불안을 초래하고 

불안은 '볼행'을 초래한다. 

 

그리고 '염려'는 '자족'하지 못함에서 생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필수 불가결한 의식주의 기본을 넘어서는 

'소유'에 의하여 파생되는 것이란 이야기다. 

 

그렇다. 

불안은 '자족'함을 넘어서는 '욕심'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고

그 자족함을 넘어서는 '소유욕'이 '보물'처럼 

우리 영혼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마음이 그곳으로 쏠리고 

마음이 쏠리는 그 이유로 영혼은 늘 필요없는 욕심과 좌절로 북적이게 되며

그로 인하여 '염려'와 '불안'과 결국의 '불행'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2)

 오늘 말씀을 보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구절이다.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늘의 레마로 삼길 원하시는 

'염려'의 실체에 대하여 한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과 동일한 행태도

그 염려의 근원인 '욕심'과 더 가지고자 하는 것이 지속되게 되면

그게 '이방인'들이 되는 지름길.. 이라고.. 

 

 이방인들은 '구원의 백성'이 아니며

이방인들의 갈 곳은 '천국'이 아닐 것임을 말씀하시지 않던가?

 

 염려하면 너 이방인이다. 

염려하는 너는 잘못이다.. .뭐 이런 내용이 아님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 .

오늘 말씀은 '불안의 근원'이고 

'실족'하여 이방인이 될 근원이기도 한 '염려'를 내려 놓으라심이시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먹고 마시는 의식주 이외의 다른 가치

'욕심' , 소유욕, .. .결국 자신의 가치를 보물로 삼는 것의 증거 증상인

염려를 내려 놓으라심이시다.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라심이시다. 

 그래서 '염려'.. 염려.. 염려.. 하시며

말씀을 강조하시는 듯하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정말 염려는 내려 놓기 쉬운것인가?

마음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던가?

정말 소유를 버리고 속세를 떠나 면벽하는게 

그들이 말하는 '도'처럼 청정해질 수 있던가?
 무소유가 행복임은 절간에만 가도 

아니.. 책으로 대박친 몇몇 존중 받을 것 같은 세속인 ^^;; 들도 있다. 

 하지만 알듯이.. 

마음은 결국 마음에 먹힌다. 

그 마음의 끝은 모두 자기의 욕심이며 자아의 완성의 욕구일 뿐.. 

가장 청정하고자 하는 욕심도 소유이고 

가장 '겸손'의 끝은 가장 큰 교만이라는 이야기처럼인간의 의지로는 할 수 없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하늘 나라의 보좌를 떠나이땅에 오신 이유는

결국 '인간의 자아', 의욕으로는 이룰 수 없는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기 때문아닌가? 

당연히 우리 ,믿는 자들에게

좁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우리네

불쌍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가장 귀하게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복음'이 있다.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에게는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분의 뜻대로

이 인생을 살아내겠다 결심하는 자들에게는

'의'의 길이신 '십자가 예수'께서

우리에겐 있다는 사실이다. 

 

 '의'를 사모하면 된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오늘 하루 살 결심만 하면 된다. 

 말씀을 통하여 흐르시는

'성령 하나님'의 에너지

그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늘에서의 뜻, 천국의 감성인 평강이 흐르고 흘러 

내 영혼의 성전 안으로 쏟아져 내리게 되면

욕심은 흐려지고

우리의 관심은 겨우 이땅, 이 3차원의 유한한 물질을 넘어서는

'온전한 가치'가 되어

우리의 관심은 이 땅이 아니고

'하나님 계신 하늘 나라'가 되며

우리의 영혼을 썩어져갈 보물로 채우기보다는 

그 보물이 '하나님 나라'에 옮겨지고

우리의 영혼은 점차로 비어져

욕심은 사라지고 

어느새 오직

은혜의 기쁨과 행복과 여유로움과 가벼움으로 채워져

날아갈 것 같게 된다. 

 

 감사로 넘치게 된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리고 어느새

그러한 자들의 먹고 삶은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변케 하여 주시게 된다.

 

 인생들이 다 똑같은가?

다 똑같이 가난하고

다 똑같은 헐벗음으로 있어야만 자유로와지고 염려가 사라지는가?

 

 모든 자신들의 위치에서

소유를 목표로 번들거리는 유혹을 좇아 몰두하는 어떤이들의

그 번들거림은 좇지는 못하겠지만

그 위치에서

가장 타당한 허락함으로

일상의 필요마져 다 채우시는 게

하나님의 원리이심을

난....처절히 깨달아가고 있다.

 

그 인생의 변화들.

이 3차원 세상에 필요한 물질적 이루어짐.. 

현재의 내 위치에 서서 누릴 정도의 누림을 허락하심

그를 인도하심...

소위 말하는 '간증거리'들로 

이 블로그에 그득 차있다. 

참... 어렵고 힘들고 '욕심'과 불행과 불안과 염려의 아이콘 ^^;; 같던 

내 인생이

어느새 모진 .. 추악한.. 썩은 듯한 모든 염려들이 

거의 많이 사라져 

삶의 염려는 

정말 가장 적당히 해결 해주신..........

감사하고 감사한 인도하심으로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주님.

오늘 말씀은 염려에 대한 것이십니다. 

욕심과 자아의 만족과 염려의 관계... 

그리고 '의'를 추구함으로 

자연스레이 마음이 염려로 부터 자유로와 지고

자족하는 삶다보면 

일상의 모든 문제까지 해결되어가게 하시는 

주님의 원리를 보게하십니다. 

 

주여.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염려에 대하여 다시 말씀하시는 이유에 대하여

오늘 묵상의 레마로 붙들고 가겠습니다.

 

이쯤이면 되었다 생각하는 시점에

또다시 똑같은 유혹과 흔듦으로 넘어지고 

다아는 거 같은 실족으로 넘어질 위험을 경계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나이다. 

 

주여.

우선 '염려'를 가져오는 '소유'에 대한 욕심을 되돌아 보겠습니다. 

하루의 삶에서 나를 아직도 흔들고 있는

주님 이외

내 '보물'로 아직도 삼고 있는 

은근한 다른 가치는 없는 지돌아보겠습니다. 

 

주여.

하나님 나라의 의를 막아서는 

그 어떤 원리도 

다 주님 앞에 내려 놓겠습니다. 

 

은밀하게 계시고 

은밀하게 보시는 주님.. 

살아계신 하나님.. 

늘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의 삶의 기본 가치를 

놓치지 않고 유지케 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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