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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이없는 사랑에 내 마음이 녹습니다[눅20:1-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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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이없는 사랑에 내 마음이 녹습니다[눅20:1-18]

주하인 2025. 4. 7. 00:09

부제) 하나님의 사랑법에 진정으로 감동하며

      오늘은 예수님 반석 위 천국을 완성해 가는 하루다

      내 영혼의 반석 내 심령 천국의 주춧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이 초라한 버려짐으로 부터 새나라 , 천국이 이땅, 내 영혼에 이루어졌다(Copilot)

오늘은

그러고 보니 그랬습니다

 

오늘 하루

여지없는 내 안의 부대낌이

절망으로 이끌려 했습니다

 

온통 내 속을 치닫는 느낌은

건축자들이 버린돌 같은

폐허의 그 마음 말입니다

 

먼지

절망

죄송함

부끄러움

분노......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말씀이 떠오르면서

불현듯

이 폐허 속에서의

퉁이 주춧돌이 생각나지 않겠습니까

 

아 그랬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가이없는 하나님의 사랑법은

내 안의 이 처절한 불쾌를 감싸 안는

이해할 수 없는 용서 였습니다

관용이셨습니다

 

아.. 주여

그로 인하여 제가 살아납니다

아..주여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형언할수 없는

지고하고 지순한 하나님의 사랑법이

아주 조금

이해가 가려 합니다

 

다...

하나님의 덕

성령의 은혜

예수님의 그리하셨으심 임이

깨닫게 되도록 하심입니다

 

할렐루야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종 3명을 보냈는데  벌어진 악한 대우를 보고도

또 '아들'을 보내심.

 

 '존대'하리라는 기대.

'혹'.. 이라는 모르시는 듯한 느낌.

 

주님의 비유가 

그래도 기회를 주시는 절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능력 부족'의 '무골호인' 같은 뉘앙스로 보여

씁슬하기가 여지없다. 

 

 그래서 

아님을 알면서..

솔직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는' .. 

그 결단이야말로 

인간의 두뇌로 이해할 수 없는 

절대의 미련 ㅠ.ㅠ.. - 죄송^^;;  주여.. -인듯하지만

결국 주님의 그 사랑이야 말로 복음 임을 알지만.... 

 

 또, 그리하시지 않고는

우리네 인생 들은 반드시 '지 ㅇ'에 떨어질 

불가피한 '원죄적' 존재가 아님을 알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드는 '버거움'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구절이었다. ㅠ.ㅠ

 

 그러함...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그 복음의 존재,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우리네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원리가

마침내 

하나님의 저 '결단'을 통하여

세상의 무조건 지옥행 열차를 세우시고

'버려진 돌'같은 

절망을 딛고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오늘 '가슴'에 온다.

 

이 세상의

'반드시 도달하고말 절망'

'사망'의 운명의 인생 기차를 멈추어 세우시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심... 말이다. 

 

 그 기초석이

우리, 내 마음에 '버려진 돌'같은

건축자인 인간 세상의 큰 조류로 부터 벗어나는

'철학'과 '가치'와 '인생관', '세계관'... 등 모든 가치에서 벗어나는

그러한 어이없음을 넘어

'모퉁이의 머릿돌'이시라심이다. 

 

 그렇다. 

안다. 

정말 잘 안다. 

'모퉁이의 머릿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알면서 가끔은 

영혼 한구석에 허탈하게 도...

버려진 건축자의 돌 같은 느낌이 있지 않았던가?

 

 그것을 다시한번 묵상해보라심이시다. 

주님 예수그리스도는

버려진 거 아니다. 

 내 인생도 하찮은 버려진 돌을 붙들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위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반드시 '천국의 기촛돌'... 

이 땅위에서 부터 이루어지는 '천국의 삶'의 원리의 기초인

머릿돌...주춧돌로

내 삶이 꽉채워져 감이다. 

할렐루야 

 

 

 하여튼,

예수 십자가의 그 원리를 

'내 첫 신앙을 시작하게 된 '밝은 빛' 진리라는 

너무도 극명한 설명을 근거로 

깊이 깨닫게 된후 

절절히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 .. 

성령의 깨우치심,

말씀을 근거로 인도하심 받아

지금까지 인도 받아왔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나름 확실한 이해를 시켜주셨음이 아니셨다면

설령 ,당엲히 '예수님의 첫사랑' 

그 1998.12.27일  그때 이후

구원 받은 자로 살고는 있어왔겠지만 

지금도

오늘 말씀의 저 머릿돌 말씀이

전혀 '이해되지 못하고 '

막연히 '그렇다니 그런 복음'이실 수 도 있겠다며

그리 그리 힘없이 살았을 것이다. 

 

오늘 말씀이 그렇다. 

그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

십자가의 원리가

'하나님이 주시겠다'시는 

생명의 원리이시고

이 절대 멸망의 설국열차에 ^^; 오셔서

방향을 '생명'으로 바꾸어 버리셨다는 거다. 

 

절망의 운명을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 세우시고 

새롭게 '생명'의 운명을 만드신 거다. 

 

어제.. 

"주께서 쓰시겠다'' 시던 

그 말씀이외 

그 어디 다른 설명이나 이해가 필요했던가?

그냥 .. 드리게 되고

그냥 모셔 드리게 되니

어느새 '생명'의 반열로 서게 되고

그냥 이해가 되고

그렇게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되어

'약속'의 자리에 서게 된 거 아니던가?

 

 십자가 아니면

구원될 방법이 없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하신 십자가 제물과 대 제사장으로서의 

그 온전하신 역할이 아니시고는

우리, 

내 죄가 씻어질 수가 없었고

그리 아니하셨다면

난.. 지금 멸망의 입구 바로 앞까지 가 있는

속절없는 늙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거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 법이시고

그러하심으로 

세상의 원리가 바뀌고

그 기회를 잡은 자들에게

'생명'의 기회가 된 거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주여

 

정확히는 아니지만

그마져 하나님의 뜻이고

그게 하나님의 사랑법이고

그러므로 '제가 살았습니다'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이 깨달아 집니다. 

 

주여.

이제 문제는

그 놀라운 원리 안에 서게된 감사가

삶속에서 어떻게 적용될거라는 겁니다.

 

주여.

제게.. 요며칠 무겁게 다가오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나혼자 짊어지고 끙끙대고 살아올 수 밖에 없는 유형의 것들이었습니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해결될 문제들이 아닐 것은 알지만

그마져.. 주님의 영역에 있고

모퉁이돌의 영광속에서 

또 그리그리 해결되어 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내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하나님의 사랑법------

(( 내 prompt ))

13절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윗 구절을 보면 '주인'이 너무 착한 것인가? 아니면 미련한 것인가? 어찌.... 저런 자들에게 아들을 보내실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심을 감안하면 비유가 적절치 않아 보이는데 어찐 일인가? 그냥 사랑이 많으셔서 미련할 정도로 사람들을 믿는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비유가 안맞아...
설명부탁해요

 

(( Chat GPT 답 ))

주하인님의 깊은 묵상에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바로 그 질문이 이 비유의 본질적인 충격과 은혜를 드러내는 핵심이에요.
하나님이 모든 걸 아시는 분인데, 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하셨는가? 정말 중요한 신학적, 영적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 있어요.


1. 인간의 눈으로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은 선택

눅 20:13의 장면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행동입니다.

  • 종들을 계속 보내서 매 맞고, 쫓겨났으면, 다음은 당연히 심판입니다.
  • 그런데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혹 존대하리라”?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아니, 주인이 너무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자기 아들을 죽이러 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게 복음입니다.


2. 이 비유는 인간의 논리로 설계된 비유가 아님

이 비유는 그냥 "착한 주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암시하면서 말하는 비유예요.

하나님께서는

  • 이미 인간이 죄로 가득 차 있음을 아시고,
  • 선지자들을 보내도 그들을 죽일 걸 아시고,
  • 심지어 아들조차도 거절당하고 죽임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왜일까요?


3. 이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논리, 계산, 확률에 따르지 않습니다.

  •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은 미련하다 하겠지만, 하나님은 이 길을 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만이 죄인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4. 비유의 목적: 청중의 마음을 흔들기 위함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듣는 자들의 마음에 충격을 주고,
자신들이 얼마나 완고하고 악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려 하신 겁니다.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이 비유의 “악한 농부”라는 걸 직감합니다.
  •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고 하죠.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로 향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논리를 초월한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미련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이 너무 커서, 미련하게 보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 비유는

  •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
  • 인간의 죄악의 깊이,
  • 그리고 그 사이에 서신 예수님의 순종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혹시 원하신다면 이 내용을 토대로 묵상 일기 형태로 정리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또 이 비유 속 ‘아들을 보내는 장면’을 주하인님 모습으로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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