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 며칠[행9:10-19] 본문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
응답.
모든 '믿는 자'의 기대하는 바.
'응답'
그것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는
깨어 있다가 얼른 '뛰처나가듯' 튀어나오는 대답이기에
힘있는 응답으로 느껴진다.
그러기 위해 ' 하나님'의 부르심이 선행되시어야 한다.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위의 느낌처럼 '깨어 있어야 한다'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깨어 있음은 '기도' 함이다.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어떠한 상태인가?
'영혼의 대 격변'
' 지진, earthquake'이 일어나
땅과 하늘이 뒤 바뀌듯
그의 가치관 전체가 완전히 180도로 바뀔 상황이다.
정체성이 바뀌는순간이다.
한 사람이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단지 며칠 만에 이쪽 가치에서 저쪽 가치로 바뀌기 위해서
그 얼마나 힘든 갈등의 시간이 있었을까?
죽기 보다 어렵지 않고는 어찌 가능할까? ㅜ.ㅜ;
그리고,거기에 눈이 멀었다 .
'죽이려 '하던 자가 죽임을 당하려던 자의 보복이 무서울 상황.
공포까지..
오늘 묵상 해석 구절에 '극심한 혼란'이라 표현했다.
그것...
맞다.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그리고는
박해하던 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라 나온다.
느껴지는 바가 있다.
극심한 혼란....
그것을 경험했었다 .
얼마전..
비록 사도 바울님의 그것과 비교하기는
저.. 위대한 순간에 비할 수는 없지만..
단지 극심한 혼란.. 안에서의
믿음에 대하여 그랫단 말이다.ㅠ.ㅠ;;
세상에 태어나
식은 땀을 그렇게 많이 , 오랜시간, 지속적으로 흘려본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엇다.
더구나 나이들어 그러니 견디기 쉽지 않았다.
아예 힘이 없어 운전을 할 수도 없어
집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원룸하다가 주말마다 올라가야 하는데... )
땀이 이불에 젖어 , 그 추운 온도에 어찌할 수 없을까
잠시 힘이 돌아올 때 겨우 일어나 드라이기를 꽂아 놓고
누어 있던 이불 속을 말려가며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덨다.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잇는 동류의 사람이나 이해해도 직접도움을 줄 친구가 없었다.
(내게 뿐일까?
이 나이들어 내 그러함 같은 현실을 해결할 친구 가진 분, 몇이 될까?)
술이라도 퍼먹고 누워 볼까.. 잠시 가당치 않은 상상을 해보려 햇지만
술먹으러 갈 힘도 없었다.
아.. 음식이 내 뱃속에서 거부 당한 것은
20초반 '그리 사랑치 않던 여인과 헤어지고 나서 ㅜ.ㅜ.( 아.. 여리기도 하지.ㅎ )' 와
40대 '의료사고'로 개없했던 병원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할 때 밖에 없었는데...
평소에 '나 식욕 떨어지는 것은 죽기 직전'이란 농담으로 얘기할 만큼
많은 식욕을 자랑하던 그 식욕이 감쪽같이 사라져
며칠 만에 3키로 가까이 빠지는 그 절해의 어려움.
장래에 대한 걱정.
그 일 (ㅠ.ㅠ;;)이 되풀이 떵오르면서 다가오는 죽을 만큼의 공포.
죄책감.
거기에 '기도'를 열심히 하지 못했던가.. 하는 의구심..
양심을 가장한 '혼란'...
힘이 없어 수술하기 어려울것 같은 곤란함..
지독한 두통... 역겨움...............
일어나서 기도하여야 하지만
힘이 없어 소리내기가 두려워
그냥 이불 속에서 겨우겨우 '주여..' 하며
며칠을 '참으로 힘들게 지내야만 했다.
'죽음'.. 유혹..ㅠ.ㅠ;
홀로이면 가능할 듯했지만.. 내 그러한 전례를 통해 .. 내 자식들에게
내 주변에 비슷한 영향을 줄 까봐 두려웠다.
하나님께서 큰 질타할까 두려웠다.
' 도피'
책임은...
법적인.것은?
' 이동.. 이전.. 탈출'............
어디에도 답이 없었다.
갈데가 ... 쉽게 얘기하면 ... 없었다.
이리도.. 저리도..
앞으로도 .. 뒤로도..
......................
.....................
....................ㅠ.ㅠ;;
........................
'극심한 .. ' 혼란..........혼돈.
그러다가 '주일' 이 가까이 되면서 서서히 가라 앉아가고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최악'의 경우.. 내.. 그토록.. 내 삶속에서 마지노선의 욕심..
이 마져 놓으면 별로 삶의 의욕이 없지 않을까..
망하는 지름길일 듯한 그 '線'까지 마음을 내려 놓았다.
이것..
어디까지가 기도이고 어디까지가 내 머리 속의 의지의 판단인지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냥.. 하나님..하나님...하나님.. 하고 되뇌이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가 없기에 그랬다.
그러면서 .. 깨달았다.
'아.. 그래도 .. 이 절대의 극심한 혼란 중에도 .. 나.. 주님을 놓치지는 않고 있네'
그러면서
내 안에 그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힘이 생기면서
'그래 .. 최악의 것도 허락 받은 것.
고난이 유익이라시니 지금 이 것도 어쩌면..
그렇다..
결국..내게 원하시는 것은 '나'를 낮춤이시다.
아니.. 그들이..그래도 완전히 죽을 수 있는 '자존심'을 꺾고
그들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는 긍휼함을 회복함이다.
그거.. .
자아부인'이다..
.........' .. 가 정리된 생각이었다.
며칠 만에 허락되어진..
자리를 털고 일어 났다.
다행히 '주일 아침' ,
영하 12도 이하를 넘나들던 강추위가 봄날 처럼 풀려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했고
잘 닦은 다음 예배를 드리러 갔다.
'며칠 만'에 함께 드리는 예배
오늘 사도 바울이 그런 툴툴 털고 나오는 마음 아니었을까...
따사로운 '햇살'이 몸을 휘감는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는 잔잔한 힘이 솟음을 느낀다.
두려움은 두렵지만 더 이상 내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준이다.
배가 고파온다.
예배를 드렸다.
본 교회가 아닌
자주 병원일로 올라가지 못할 때 들리는 가까운 HJ감리교회.
목사님께서 '중후한 중저음'으로 쏟아내시는 설교가 일품이시다.
'말씀'.. 위주..
그날 그러신다.
" 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자아가 죽어감이고 자아를 부인이지요.
그것 만이 옳은 믿음의 결국입니다.
그러나, 그것..
기도할 때만 가능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오셔서
자아가 무엇인지 가르치시고
자아를 죽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며...
........"
아..
아멘이다.
사도 바울께서
죽음의 밑 바닥까지 내려 갔다 왓을 것이다.
그 젊음의 비상한 머리를 가진 '귀족'의 신분의 그가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 예수님' 사도로 거듭 나기 위하여서는
' 절대'의 시험을 받았을 것이며
그것은 '죽음' 문턱, 죽음 보다 힘든 과정을 겪었고
그것은 지축이 흔들리고
상하가 바뀌며
지진이 일어나고 땅과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뒤바뀌는
대 변혁의 곤란함을 의미하는 고통을 가져왓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는..
아나니아의 방문을 받았다 .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사이트로
징조로
응답으로
그의 새로운 발걸음이 떼어지게 되었을 거란 것이다.
나.
'극도의 혼란' 속에서
그래도 난 주님 만을 찾을 수 밖에 없음이 다행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고
더 낮추고 더 낮아져도 살만함을 배웠으며
이제는 내려 놓아도 될 수 있을.. .모든 것..
심지어 생명... 까지도 두렵지 않을 수 있을
가능성을 보았다.
내 자존심.
'자아'로 표현되는 '내 ' 것에 대한
그 강력한 집착
그 아집이
이제는 조금은 손에서 놔 지는 것 만 같은
'수일.. 며칠.. '이었다.
주님.
깊이 내려갔다 오니
조금은 더 자유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엇.. 더 붙들어야 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더 붙들지 않아도
우리 예수님 만으로
내 무의미할까 두려울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극심한 혼란.
혼돈의 시간을 거쳐서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사도바울의 그 며칠' 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됨을
아..
그 시간을 나름 승리의 시간으로 가지게 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나이다.
주여.
부디 잊지 말게 하시사
더 낮추고
더 낮추어지더라도
그리 크게 혼돈 스러워 하지 않는 제가 되게 하소서.
주여.
자존심으로 표현되는 내 자아가 더 죽어가게 하시고
매정함으로 표현되던 내 속의 조급한 판단 들이 사라지게 하시며
걱정과 불안으로 다가오려던 무의미의 어리석음을 내려 놓게 하시사
우주를 말씀으로 만드시고
그 먼지보다 적은 지구의
바이러스보다 적은 저란 영혼의 깊은 데까지 간섭하시는
코스모스 적이시며
동시에 너무나 마이크로적이신
도저히 필설로 형용하고 말로 표현해내기 어려운
우리 주 하나님의 능력에
진심으로 감동하며 따라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내 주여.
오직 주님 만이
내 모든 것을 아시고
오직 주님 만이
내 앞길 다 인도하시며
오직 우리 주님 만이
내 영원의 구주이심을 고백합니다.
내주여.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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