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될 주하인아 ( 딤전 6: 11-21 ) 본문
( Chapter 6, 1 Timothy )
오직
나
주하인,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프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어쩌면
하나님의 사람일 지도 모를
난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작은 풀꽃이 그러한 것처럼
하늘
그곳의 아버지 만을
바라보겠나이다.
주여..
절
꾸미소서.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아~~!!"
하나 하나가 가슴을 찌르는 듯하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사람일 '너'야~ 왜 그것 밖에 .. '하시는 듯도 하고
'오직' 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찔러 찌르르 하게 하는 듯도 하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단어가
감히
나 같이 쉽게 열이 끓어 오르기도 하는 자에게
합당한가...하는 생각도 들고
'오직.. 주하인..아..' 하고 부르시니
개별적인 부르심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참 복합적이다.
그러면서
그 뉘앙스가
'레마'의 말씀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더 '레마' 같은 것으로
눈을 들어 묵상집을 보자마자
가슴으로 다가온다.
'이 것들을 피하라' 하신다.
순서를 바꿈으로 강조를 하는 어법.
마치 직접 얘기하는 듯한 느낌.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 될 사람
주하인 아..'
이것들 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니?
어제 말한 '정한 재물 이외의 탐심을 피하는 것 말이다. '
그러면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고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하신다.
어찌 생각하면
도덕책이고
윤리적이고
율법적일 듯한 말씀.
이게
영적 수준이 낮거나
믿음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리 눈에 뜨이지 않았던 구절이면서
귀찮은 잔소리나
고리타분한 도덕 책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
이제는 조금은
지켜야 할 레마로 느껴져 온다.
아침에
잠시 주님을 관상하듯 묵상을 하고
묵상집을 들여다 본
내 눈에
예전에 스쳐 지나가며
하나도 남지 않던 구절들이
가슴찌르르하는 느낌과 더불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모두 '디모데'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디모데는
영적인 지도자의 그룹이다.
오늘 하시는 말씀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는 것은
도덕책이 아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계셔서
하나님이 말씀이고
말씀이 하나님이다.
그러기에
디모데에게 말하지만
영접한지 얼마되지 않던 주하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제
산전수전 겪고
많은 영적 위안과 평안을 허락하심을 받고
어느정도 경건과 절제와 의와 사랑에 대하여
의지를 들여서 받아내야할
주님 말씀 안에서 시간을 보낸
영적 지진아 '주하인'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때
따라다니는 무리는 많았어도
오직 '제자'는 열두명이었다.
세상에 살아도
사는 인생의 목적을 알고 죽는 이가
그래서 보람있었다고 착각치 않고
진짜로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 자가 얼마나되겠는가?
오직
그 진짜의 웃음은
주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의미다.
오늘
주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 자격이 있는 자에게
'네가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하신다.
주님은
모든 자를 지옥에서 구해줄
십자가의 은총을 베푸시되
인생을 의미있게 살고
사는 인생의 목적을 알고
뚜렷한 삶의 방향을 가질 자는
소수로 선택하셨다.
그 소수에 들음은
천국의 축복이며
영생의 자랑이다.
주님은
그 조건으로
'주님을 기뻐할 수 있는 자.'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
거기에
오늘 말씀 처럼
의지를 발휘하여
의와 사랑과 믿음과 온유와 경건과 인내를
선택하고 선한 싸움을 싸울 자를
말씀하신다.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정함이 없는 재물.
주님의 재물에 대한 원리.
위에 말씀하시는
의... 등의 말씀이
각론적으로 적용할 때
어찌할 바 모를
지혜 부족한 '주모'에게
주님은
이리 정확히도 말씀하신다.
정함이 없는 재물을 위해 목숨 바치듯
10억모으기가 인생의 유일한 목적인양
리더로 오르고
세상의 축복을 다 받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양 착각하는 분들께
주모에게
그것은
인생을 사는 목적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정한 재물은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에 맞추어
삶도
직업도
사랑도
일생도
최선을 다해 살다가
주님의 허락하신 한도에서
누리는 재물이
정한 재물이다.
그것은 결과물이지 목적이 아니라시는 것이다.
이제 수술을 마쳤다.
오분후
다시 전인치유 무대에 내려 가야 한다.
그래.
이게
이러한 봉사가
주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 달란트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하면서
주님의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한
아주 약간의 희생으로
그들에게 시간을 내 줌으로
같이 주님의 평강을 나누며
그러다가
그 결과로
내원하는 환우 분이 늘어나고
나로 하여
환우 분들에게 조금은 더 고급스러운 혜택을 돌리고
이 병원에 조금이나마 현실적인 이익을 안겨드리다가
내 가슴에 자부심이 늘어나고
주님에 대한 감사의 기쁨이 증폭되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면서
나에게 허락되어진 물질 만을 즐기려는
기본 마음이
그게 '정한 재물'이 아닐까 싶다.
작금의 기독교인들이
그처럼 바라고 갈구하는 축복은
기복이지
정한 재물의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구하고 생겨난
결과물이 '정한 재물'에 의한 온전한 '축복'일 뿐이다.
야베스의 기도는
그래야 주시는 정한 재물에 대한 갈구일 뿐이다.
사람마다 상황은 다르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있는 정한 재물의 개념은
이렇다.
주님은
조금 더
의롭고
경건하길 권하신다.
조금은 더
사랑이 넘치기 원하신다.
믿고
인내하길 권하신다.
작은 꽃들도
하늘의 하늘 색과
주위 풀 들의 녹색 속에
그들 만의 색을 띠우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적용
1. 인내하자
2. 경건하자.
3. 사랑을 베풀자.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5. 남은 시간을 말을 줄이겠다.
기도
주님
어찌합니까?
매일 같이 죄 속에서 허덕이면서도
이제 그럭저럭 흘려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당혹스럽습니다.
말씀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절제하고
인내할 수 있는
조금은 이전과는 변화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스스로 돌아보아도
큰 변화가 없는 듯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직'
'너 '
'하나님의 사람아'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혹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주님
절 도우시사
조금더 열심을 보이고
조금 더 부지런하게 하시고
조금 더 경건하게 살도록 인도하소서.
주님
제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향한 열정이
더욱 더욱 일어나
주님을 향한 제 마음이 불타듯이 만드소서.
외부적인 어떤 이유에도
제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지 않게 하소서.
주여
지금껏 그랬듯이
한걸음 더 성장하게 하시고
주여
인격이 한층 더 성화되게 하소서.
주님의 향기가 드러나게 하소서.
제가 절 용인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랑으로 절 이끄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