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밭의 바람 속에서도 느끼는 평강에 대하여[눅24:36-53] 본문
부제)믿음의 정리 삶의 돌아봄 & 주님의 도우심
부는 한줌 바람에도
난
충만한 충만함을 느낀다
비록 내 육신은
이곳 ㅍㅌ과
자주도 ㅇ산 밭에 가있지만
마음은 천국을 달린다
주님 덕이시다
예수님의 부활 덕이시며
성령의 은혜가 그 이유임을
난 이제는 확실히 안다
내 갈구하고 원해왔지만
어디서도
어떻게도 이룰 수 없던 그것
예수님의 허락하신
평강으로 인하여 그리됨을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게 감사하다
그것이 말씀으로 인하여
은혜로 인하여
밭에 부는 바람에도 그리됨을
운율의 시로 깨달아 알게 됨이
진정으로 감사하다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갑자기, 뜬금없이 , 벽을 통과하시듯, 성난 군중 사이를 걸어 나오듯이
주께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 하셨다.
'식사하셨어요'' 같은
그 시대의 인삿말이기도 하지만
'평강'의 중요성,
그 평강이 필요한 곳에
완전한 평강이 되었으니 '안심하여도 되신다'는 의미로
그들에게
'나, 주하인'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신다''
나.
지금까지 살아오게 된것.
'평강'이다.
평화를 넘어서는 충만한 행복.
넘치는 감성으로 채워져 더러운 찌거기가 밀려나가는
그 충만한 충만함의 감동이 겨워
여기까지 왔다.
내 조건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점차로.. 1997.12.28 .. 그 첫사랑 이후에도 꺼지지 않고 지속되는
내 내면의 이 감동이 겨워
여기까지 왔다.
주께서
마지막으로 '글로바'들이 모여있는
그 곳..
도저히 내 어제의 실패와 실수로는 생각하기도 힘든
여전히 주님 주권의 은혜로
'평강'이 밀려온다.
그렇게 평강으로 살다가
평강의 삶을 흘려보내다가
주님 부르실 그날에 보자시면서
마지막 다짐의 말을 하시기 위하여
내게 '평강'을 주시는
정말
축복의 말씀이시다.
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그리고
당연히 '죽음과 절망과 놀람과 혼란과 혼돈'의 지경은 사라지고
'그들이 너무 기쁘'게 됨이
'평강'의 현상들이다.
공통된.. .믿음, 믿는 자들만 아는....
이 불쌍하고 가련한 세상의 불신자들은 도저히 알 길조차 없는....,
좁은 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주님의 선택받은 소수가 아니면 이해할 수조차없는 ...
그 특별한 공통의 감정 - 평강의 충만한 기쁨-이 넘치는 중에
예수님은 "먹을 것을 달라신다''
마치 배고픈 지인이 찾아와 서스럼없이 냉장고를 뒤지는 분위기...
아니.. 가까운 어르신이 '배고프니 먹을 것을.. '' 이라시는 분위기..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체험들을 쓴.. 간접적 증거.
그런데........
그 먹을 것이란 거.
육신을 가진 '우리'의 실제를 의미하시는 거 아니시던가?
주님은 환상속의 꾸며진 존재나
너무 멀리 계셔서 닿을 수 없는 고귀하기만한 분이 아니심을
'평강'과 더불어
기쁨과 더불어
이렇게 가까이서
실제로
살아계신 주님이심을
마지막까지 정리하고 인도하여 주시고
모본을 보이심이시다.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리고 그러하신 예수께서
당연하고도 너무도 당연하지만
살다보면 매사 매시 깨닫고 알아차리고
삶속의 영성으로 '하루하루 ' 전진하고 나아가야 함에도 잊어버리는
기본 중의 기본을 말씀하신다.
' 성경을 깨닫는 매일의 삶'
또 이르시고 깨닫게 하시되
'십자가 고난은 우리의 필연이며'
'고난 뿐인 삶, 새디스트들의 모임이 아닌
부활의 삶..
삶속에서 '매일 부활'한다는 체험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하시고자 하심이시다.
그것을
나..
주하인에게
다시한번 마지막까지 다짐하고 가르치시고 계심이시다.
할렐루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또 그리고,
그러함의 우리의 결심과 인내로만 나아가게 된다면
바리새파와 무엇이 다를까?
성령님..
보혜사가 오셔져야 만 완전한 이룸이 완성되어진다 신다
무엇인가?
모든 예수님의 공생애 가르치심과
마침내 십자가와 부활을 이루시고
성령의 임재로 완성되기 전까지의
예수님의 사역을 다 이루시기 까지의 과정을 압축해서 말씀하시는데
그 과정이
너무도 실제적이다.
그리고 다시한번 '다짐'시키시고 가르치시고
마침내 마지막 식사 까지 마치시고는
홀연히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시었다.
나.
흔들리지 말라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
이제 곧 바야흐로 주님의 시간이오리라.
흔들리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기대하고 사모하라하신다.
일상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가는
모든 '완전하지 못한 자'들에게
완전함을 위하여
또 다시 기도하고 기다리며 기대하라 심입니다.
주님.
제게도 '평강'을 주소서.
주님의 평강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소서.
이 마지막 시대에
오직 주님으로만 살게 하소서.
오직 평강으로만 에너지 삼게 하소서.
주여.
홀로 영광 받으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평강에 대하여 ))
주하인님,
‘평강’이라는 단어 하나 안에 얼마나 깊은 영적 감정과 갈망이 담겨 있는지,
오늘 이 대화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허락하신다면, 허벗이 조금 더 깊이 묵상해본 ‘평강’의 본질과 그 감정에 대해 나눠볼게요.
1. 평강은 ‘고요함’이 아니라 ‘충만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종종 평강을 ‘조용함’, ‘갈등 없음’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shalom)”**은
단지 전쟁이 없거나 문제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는 말씀은
단지 두려움을 덜어주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하니, 너는 온전하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이에요.
2. 평강은 감정 그 이상입니다.
감정은 흔들릴 수 있어요.
기분이 좋다가도, 불안이 스며들 수 있고
기쁨 뒤에 슬픔이 찾아오기도 하죠.
하지만 **평강은 감정을 품는 ‘그릇’**입니다.
감정이 춤추는 그 마음 밑바닥에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인도하신다. 사랑하신다.”
라는 고백이 있을 때,
그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평강에 뿌리를 두게 됩니다.
3. 평강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자리에서 옵니다.
주하인님이 밭에서 느끼는 그 바람,
혼자 계셔도 결코 외롭지 않은 그 순간,
말씀 한 구절이 뇌를 넘어 심장에 꽂히는 그 찰나—
그건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 계심’으로부터 오는 평강입니다.
4. 평강은 믿음의 선물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우리가 염려를 내려놓을 때,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일 때,
그 다음에 임하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이건 우리 안에서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선물이에요.
5. 그래서…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주하인님, 이 말이 핵심이에요.
"그는 우리의 평화이시라..." (에베소서 2:14)
예수님 자신이 곧 우리의 샬롬이십니다.
그분이 계신 곳이 바로 평강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주하인님이 평강을 갈망할 때,
사실은 예수님을 더 깊이 원하시는 것이고,
그분과의 친밀함을 더 깊이 사모하고 계신 거예요.
평강은 감정이 아니라 인격이며,
기분이 아니라 관계이며,
정적이 아니라 임재입니다.
오늘도 그 평강이
ㅇ산 밭의 고요함 속에,
말씀 묵상의 한 문장 속에,
주하인님의 깊은 영혼 안에
고요히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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