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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 만 바라보다 (마6:1-15 )

주하인 2010. 1. 12. 12:58

제 6 장 ( Chapter 6, Matthew )

 

 

아침이 춥습니다

 

그러므로

더 추운 분들이 걱정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리하지 못하던

내 강팍한 불신과

내  영적 어린 시절이

참 가련합니다

 

주여

당신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인하여

기도하는 자 되길

원합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그리하지 아니하면

행동에 대한 책임.

잘못된 선택의 결과.

부정적인 면.

벌.

 

  잘못된 선택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외식적 '의'를 행하는 것.

구제할 때도 사진찍고 법석이고

기도할 때도 보란 듯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하고

주님 앞에서도 중언 부언하는...

즉, 본질 상

사람을 보랴 하나님을 보랴 하는 문제다.

당연히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한다.

 

 책임 문제.

기도하는 자

십자가의 원리를 알고

또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야 있겠지만

잘못 선택하여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자에게는

'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주님의 뜻을 선택하여 조금 더 자중하여

행동하거나 판단하지 아니하면

상급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어떤 당위성으로 ..

 왜 ?

어떤 논리적 이유로?

긍정적인 면.

상.

 

단지 상급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까...

그보다 더욱 나를 이해시키고 행동을 바꿀

어떤 논리적 이유가 있어야

부족하고 거친 이 주하인의 심령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어려서 부터 그랬다.

어이없는 자 들의 어이없는 주장 (?) - 최소한 난 그리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삶이 재미가 없었다 - 은 참 힘겨웠다

버텨내기..

그래서 내가 간절히 바라던 것은

나이들어서 '미국'에 가서 사는 것이었다 ㅎㅎ

아니면 얼른 나이 들어 죽는 것이거나...ㅜ.ㅜ;;

미국이나 서양 사람들은 서로 간의 간섭이 별로 없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자신의 것에 대한

침범이 별로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많이 들어서이다.

 각설하고 그런 나에게

'그러므로 '를 말씀하시기 위해서는

적절한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가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레마'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

그리하지 아니하면의 거꾸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선택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의 상급이 커진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오늘 말씀 중의

'그러므로'는 용서하면 하나님이 날 용서하시는 그러므로다.

내가 용서할 결심을 하고

용서를 하게되면 주님이 기뻐하신다다.

그러므로 내가 용서해야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

이 '그러므로'가 눈에 들어온다.

위의 외식하지 말아야 할 그러므로

기도할 때 주님 만을 바라볼 그러므로도 눈에 들어오지만...

 

 

 

금요일.

하기오스 찬양팀.

금요 성령집회 때 앞에 나가 CCM계통의 찬양을 통하여

영광을 올려드리는 찬양팀.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는 성품이라서 ^^;

실크로드라는 남성중창단 팀

교회 시온 성가대에 들어 있고

교회의 남성 중창팀에도 들어오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악보에 갇혀 규격 안에서 작곡가의 의도에서

최대한의 것을 표현해내야 하는

성악적 발성의 중창 내지 합창도 나름대로는 매력은 있지만

늘 free 한 것을 좋아하고

갇히기 싫어하는 성품인 바

중창팀 보다는 '하기오스 찬양팀'에 들어갔다.

훨씬 나의 성격에 맞는 듯 싶다.

인도하시는 대로

내 가진 음악적 달란트를 표해내는 것.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감해서

그들의 영혼에

내가 아는 하나님의 그 절절한 감동의 기쁨이

함께 느껴지기를 바라는 것.

 그게 내가 하기오스 찬양팀을 들어가려는 이유였다.

 그러나 막상 입단을 하고 서기 시작하려니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에 비해 마이크 수는 절대 부족이다.

라인이 부족한 것이다.

총무님께서 그러신다.

새로 입단하신 분들은 6개월 간은 마이크 없이 서라고...

20 몇명이 서는 데  반 이상은 마이크 없이 선다.

다행이도 입단 하기 전

하나님께서 느낌을 주시길

'목소리를 적게 하는 찬양은 내가 받는다'라 하셔서

그리 해보니 정말 은혜로움을 안 체험이 쌓여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연습단원의 시절을 거쳐

막상 금요예배에 찬양하기 시작하니

손에 마이크가 없는 게 당황되었다.

남들이 내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내 멋진 소리가 괜히 사장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지고

목이 아프려 한다.

 '이것이 외식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한번 발동걸린

사람들을 신경쓰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정말 힘들다.

 

' 사람들에 대한 칭찬 받고 싶은 욕구'

' 그들의 관심'

 사람들이 사는 유일한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 싶다.

돈을 많이 벌면 무엇하는가?

물론 편한 것도 있지만

남들에게 자랑하고 잘보이고 싶어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사려는 것은 아니던가?

 왜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는가?

남들의 칭송.

그들, 무지하게 보이는 자들을 마음대로 뒤 흔들어

그들의 칭송을 받고 싶은 욕구는 아니던가?
 자식의 성공.

노후를 보장 받고 싶은 생각을 제외하면

그 역시 '엄친아'라는 요샛말의 표현처럼

남들이 칭찬해주는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마음껏 으쓱대고 싶은 마음은 아닌가?

 부부 관계는 또 어떤가?

가족 사이에서 생기는 모든 갈등은

서로 사이의 관심의 부족이 그 시발점이 아닌가?

직장에서는?

교회에서는?

시험들고 실족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 관심'을 받지 못함은 아니던가?

 내 발전욕구.

내 자아 성취.

내 모든 것은

내 자신이 나를 인정해주는

스스로의 관심에 대한 자존감이 아닌가?

아무리 고상한 이유를 붙혀도

인간의 행동의 근본 동기는

'사람들의 관심'이다.

 이 관심을 받고 칭찬을 받기만하던 사람들의

극단적 말로의 예는 '연예인들의 자살'이 아닌가?

그들.

늘 칭송과 관심의 영역에 있다가

인기가 떨어지면서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나타나는 '금단 증상'이 우울증과 자살로서 나타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어쩌지도 못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나.

젊었을 적

저러한 관심을 깊이 갈구하면서도

그 관심의 허무함을 알기에

그 사이에서 이리도 저리도 가지 못하고 좌절하던 나.

그렇던 무기력한 나에게 찾아온 기회와 해결이 바로

주님이시다.

 주님이 주시던 그 놀라운 행복감

그 평강은

날 살 수 있던 의미로 날 인도하셨었다.

죽어도 좋고

살아도 기쁜..................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자의 기쁨'

' 하나님 '으로 만의 관심의 전환 !'

 

그런데 그러한 것을 아는 나도

아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본능으로 찾아오는

이 '사람들의 관심에 대한 허겁증'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말씀 앞에 서면서 

주님에 대한 관심으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아직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다음 주인 지난 금요일.

역시 마이크를 안들고 섰다.

서는 이유.

'그냥 내가 가진 달란트가 이것이고

 주님께 받치는 시간'이 유일한 이유로 삼기로 했다.

목소리를 적게 주님과 속삭이듯 하기로 했다.

훨씬 은혜롭다.

내 목소리가 안들어나도 좋다.

주님 만 좋아하시면 좋다.

밴드들이 마구 굉음을 쏟아내며

기존 멤버들이 마이크를 잡고 찬양을 드린다.

그 속에서 내 소리는

주님께 조용히 올려진다.

객석 , 아니 기도하는 좌석에서는

하두 목소리 크니 이곳 저곳에서 힐끔대서

금요 찬양예배에 조금은 신경쓰이더만

이곳에서니 손을 들어도

눈을 감아도

목소리 적게해도

목소리 크게해도

아무도 신경 안쓴다.

자연스레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서 멀어지고

더구나 주님께만 받친다 생각하니

하나님 만의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

그런 이유로 주님이 날 훈련시키시려

이 늦은 나이에

이곳 젊은이들이 서야할 성령예배에 서서

찬양할 이유를 주셨나 보다.

혼자 많은 은혜 가운데 깊은 기도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난 주님만 바라보며

찬양을 드리는 금요 예배가 되었다.

 

 

 아들.

지난 주 병원에 입원했다고 전화가 왔다

배가 많이 아프다 하여 경찰 병원에 입원하여 CT를 찍으니

다행이도 맹장같지는 않고

대장 부위의 임파선 염같다고 주치의가 전화를 왔다.

아빠가 의사라서 상의 한다고 전화가 온 것이다.

면회를 가니 건강하다.

경과가 괜찮다 하여

오늘까지 입원하고 퇴원하라고 하니

아이는 이곳 저곳 자꾸 더 아프다고 한다.

어려운 것을 피하는 듯.

속이 상하려 한다.

아이의 마음가짐이 읽혀지는 듯하여 속도 상하다.

한편으로 그리 꾀병성으로 병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그 아이의 마음의 연약함이 불쌍하게 느껴져야 함에도

아이를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화가 나려한다.

 염려가 올라오려하다.

화가 올라 오려한다.

머리가 복잡하려 한다.

자식 기르는게 이리도 힘이 드는가?

하루에도 수차례씩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을 때가

불현듯 찾아온다.

이게 나만 그런가?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으로 그러신다.

'용서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용서하면 주님도 날 용서하신다.

'그러므로 용서하라' 라 하신다.

일단 속상함은 가라앉는다.

 

오늘은 말씀으로 그러하신다.

' 사람의 관심을 구하지 말라'

' 용서하라'

그 이유는

주님의 뜻이시기에

그러므로 용서하라신다.

그렇게 하면 상급이 많을 것이기에 그러라 하신다.

 

 

 

적용

 1.  기도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식 문제도 그렇다.

 내 문제도 그렇다.

 그냥 기도하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 들의 장래도

 그들의 선택도 모두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2. 그러므로.

 주님이 모든 이유다.

 그러므로...

 난 용서한다.

 그러므로 난 목소리 낮춘다.

 그러므로 모두 받아 들인다.

 

3. 그리하지 아니하면...

 용서하지 아니하면

 조용하지 아니하면

 주님 만을 바라보지 아니하면... 안된다.

 난 조금은 다른 선택받은 사람이다.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원리는

 '주님을 더욱 바라봄'이다.

 

4. 성경 여덟장 읽겠다.

 성경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더욱 더 감사하고 귀하겠지만

 난 그렇지 못해도 말씀을 억지로라도 가까이 하는

 내 노력 만을 주님께 바쳐도 된다.

 주님은 이해하시리라 안다.

 이 적은 몸부림으로 주님은 날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내 적은 선택을 주님은 기뻐하시리라.

 

 

기도

 주님.

어찌 그리 매사에 선택의 기회가 널려 있는지요.

주님 일을 한다고 선택하고 나서는

어느새 사람의 칭찬을 다시 바라고 선택하고

그것을 옳은 신앙으로 착각하게 되는지요?
어찌 자식을 위한다는 선택을 하고는

자식에게 부담이 되고

자식을 걱정하게 하는 선택만 하게 되는지요?

언제나 가야

내 모든 어이없는 인간적 바램들을 내려놓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에서

가장 선한 방향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선택을 할 수는 없는지요?

주님.

저 ...

부족한 자입니다.

순간적으로 걱정과 염려와 괜한 자존심이

주님의 선하신 자리를 차지하려 하게 훈련되어 있는 자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어리석은 지요?

그리하면 난 여지없이 주님의 길과는 거리가 먼상태로 됩니다.

어찌 정신만 차리지 못하면

순간적으로 이리 기회를 놓치는 지요?

주님.

간절히 빕니다.

주님이 원하시기에

주님이 날 그 놀라운 평강으로 채우시기에

매사에

그러므로

힘들이지 않고

주님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길 소원합니다.

이제

그만 주님의 방법대로 늘 생각할 영혼의 흐름이 될 수 있길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람으로 합당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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