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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날 사랑하신다(욥10:3-10 )

주하인 2008. 9. 18. 11:06

 제 10 장 ( Chapter 10, Job )

 

 

 

와.

 

 

아.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취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이제 말이 막나간다.

 


4.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주님께 따진다.

 

 주님도

'사람처럼 판단하십니까? "

그럼에도 조금은 덜 불경스러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5.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사실하시나이까
 
  정말 그럴까?

주님이 우리의 죄를 일일히 찾으실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 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주께서

만드실 때는 언제고

이제 나를 멸하려 하시는 구나...

 

 

 

가을...

 

주님의 가을 하늘...

 

 

 

 

  아침에 나오려는 데

묵상을 펼치기가 싫다.

매일 같이 욥기를 묵상하려니

마음도 무거워 지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 처럼 '생명의 삶'이나 '매일큐티'로 다시 돌아갈까..하다가

그도 주님의 뜻이고

이도 주님의 뜻인 것을

내 마음대로

내 분위기에 맞는 것만 골라 묵상한 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어리석음'일 수도 있겠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감안할 때

그냥

부족한 듯한- ^^;;;-  묵상집에서

욥기를 묵상하게 하실 때는

또 무슨 뜻이 있으실거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해진다.

 

 펼쳐 들었다.

시종일관 '비아냥'이다.

그럼에도

가만히 느껴지는 것은

그의 비아냥은

'죄성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

아픔을 견디다 못해 

자신도 모르게 지르는 '신음'으로 느껴진다.

 견디다 견디다 못해

아버지께 부리는 '투정'이다.

아이의 투정을

혼내는 아버지가 있을까?

그 투정은 혼낼 일이 아니고

불쌍히 여길 일이다.

 

 욥의 투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문득,

반대로 생각하면

그게 주님의 뜻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님이 과연

투정처럼 '사람의 판단과 같이 판단 하실까?'다.

욥은

아님을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친구들의 공격에 신음처럼

반은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초조함에

그리 비틀어서 물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답을 안다.

"주님은  절대로 사람의 판단처럼 판단하지 않으신다. " 는 것이다.

주님은 사랑이다.

사랑으로 우리의 아픔으로 보신다

아이의 투정에

혼내는 아버지는

사랑 받지 못하고 큰

상처입은 자들의 소산일 뿐이다.

 고생 받는 친구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치려는 정의를 가진 자는

인생의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주님은 '사랑'이시다.

 

 

 주님은 내 상처와 실수를 캐묻지 않으신다.

주님 십자가에 올리신 이후

그 분은 절대로 그러지 않으신다.

이전의 죄는 다 잊으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허락한 고통은

나를 멸하시려 하기 보다

날 온전히 하시기 위하심이시다.

 

 너무나도 당연한 구절.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

 

하지만,

이 당연한 귀결을

어찌하여 계속되어야 하는가?

 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분은 말씀으로

내 속을 들여다 보고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시다.

 

 한동안 편하던 마음이

휘청휘청 하려 한다.

물론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과 강도이지만

흔들림은 사실이다.

 욥기를 묵상하며

자꾸만 고만하고 싶은 것이

내 속의 들키고 싶지 않은 죄악성과

주님을 좀더 온전히 알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하려는

어떤 존재의 탓은 아닐까? ^^;;

 

 오늘은

묵상을 통하여

'비난'과 '움추러 들음'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의 소리에  참 민감한 나다.

약간의 질타성 소리도 듣기 싫어한다.

가슴이 패이듯 아프게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정말 뛰어나게 잘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하지 않으려 한다.

조금이라도 비판이나 비평이 있으면

옴추러 든다.

 안다.

그 이유는..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만 들면

여지없이 가슴 앓이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그 때

그 속을 헤집고 다니는 생각이

'아..나는 이래서.. 

 아.. 모두.. ' 였었었다.

완전주의자.

틀리면 자책을 많이 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묵상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은 사람들의 판단과는 다르시고

내 죄를 기억지도 않으시고

무엇보다

날 깊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욥의 입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그래.

그 말씀이 아직은 가슴깊이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주님이 날 생각하시고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주님이 나의 멸망을 원치 않으시니

내가 날 사랑하고

내가 날 귀히 여기고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유지하기에

논리적 기준이 서지 않는가?

 

 

적용

 

1. 죄책감은 십자가에 내려 놓는다.

   절망도 그런다.

 주님은 내 잘못을 기억도 않으신다.

 

2. 기도 열심히..

 주님 십자가는

모든 죄를 잊게 만드는 기본이시다.

 

3. 주님은 사랑이시다.

  감사의 항목을 적어가자.

 

4. 주님은 날 판단하지 않으신다.

 날 사랑하신다.

 날 이해하신다.

 날 위로하신다.

 

 힘을 내자.

 

5. 입을 닫자.

 나의 판단과 나의 위로는 주님 뿐이시다.

사람들의 위안을 구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황할 일도 없다.

 

6. 성경 여섯 장읽겠다.

 말씀이 내가 이 땅위에 두발딛고 설수 있는 유일한 척도이다.

 

 

기도

 

 

주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주님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어찌나 그리도 변하지 못하고

옛 구습을 되풀이 하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 있는지요?

주님은

사랑이시고

주님은 공의시고

주님은 우리의 보호자 이심에도

욥이

힘이 드니

그러하듯이

저도 매일 같이 엉터리 생각으로

제 하루를 얽매어 가고 있습니다 .

특별히

저를 지키소서.

나를 판단하는 자는 주님 밖에 없으심을 믿게 하소서 .

그 판단 조차

서럽고 냉철하고 냉혹한 '정의'를 가장한

권선징악의 칼날이 아니고

나를 세우시기 위한 권면의 판단이길 원합니다.

내 아픈 상처를 아시는 주님

그것은 아픈 것이지

더 이상 때리고 정죄할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 무의식이 확실히 알게 하소서.

주님은 사랑이시고

주님은 나의 도움이시고

주님은 나를 끝가지 인정하고 위로하시는 분이심을

영혼으로 인정하게 하소서.

머리로는 그만하고요.

 

주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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