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 하나님 ( 시54:1-7 ) 본문
제 54 장 ( Chapter 54, Psalms )
주님 만이..
주님은
나의 힘이시고
나의 의지시고
나의 구원자 이시고
나를 판단하실 분이시고
환경에 상관없이
나를 돕는 자 올시다.
주님 안에서
난 자유롭습니다.
주여.......
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
아..
하나님이시여.
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아 ..
하나님이시여..
4.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오..
하나님은...나의...
시편은 다르다.
시 같다.
내 마음을
그대로 주님께 올려드리는 '시'다.
아
하나님.. 하는 것만 같다.
그것은
감탄사 같고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어떤 답답함을
그 분을 부름으로 해소시킴을 받는
후련함의 소리 같기도 하고
간구의 외침같기도 하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 시다.
맞다.
주님은
나의 판단 자이시다.
주여
모든 판단을 주가 하소서.
특별히
스스로도
타인에게도
판단하고 정죄잘하는 습관을 가진
그래서
삶이 평온하지 않았었었던
저
주하인에게 그리하소서.
주님.
주님의 힘으로 하소서.. 하는
시편 기자의 뜻을
전 알만합니다.
제 뜻대로 되지 않으니
주님의 힘으로 하소서.
그 말씀인 줄 압니다.
최소한 저에겐
레마로 들리고
제
간구의 소리로
올려드리는 소리로
들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려니
마음이 뒤숭숭 하려 한다.
나라의 모습이 엉터리 같은 것도
환자 분들의 경미한 어려움들도
습관적으로 날 사로잡던
아침의 답답했던
오래전의 경험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과 더욱 깊은 만남을 갖지 못하고
습관처럼 되풀이 하고
자꾸만 짧아지고
형식적으로 되어가는
기도와 묵상이
그 원인처럼 생각이 된다.
베란다 밑의 개울과
산허리의 십자가를 쳐다보며
묵상집을 들춰 보니
'주님이여
기도를 들어주세요.
주님이여
제 말에 귀기울여 주세요..'한다.
그렇다.
그 마져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같은 말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말에 귀기울여 달라고
여러 차례 중언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편에 써 있다.
아.......
하나님이시여.
저도 그렇습니다.
제 기도가
엉터리처럼
습관처럼
주님 앞에 툭 던져놓고
내 일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세상의 일들로
제 짐을 지우려 하고 있습니다.
아
하나님..
제 기도를 살려 주시고
제 간구를 하나하나 들어 주소서...
주님은 '돕는 자'시다.
그 분은
내 부족함을 아신다.
그러시니
'아.. 하나님.. '하고
내 마음을
대신
주님께
시편으로
올려 드리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혼자서는 되지 않는
판단을 대신하시는 문제
구원에 대한 감사의 문제를
주님께 들어달라고
대신 기도하신다.
시편에서...
주님은 돕는 자이시다.
특별히
상황이 어떻더라도
'내 생명을 붙드는 자'가 지극한 혼란에 빠뜨리더라도
주님은 날 도우실 것이다.
출근하려
대문을 열고 바닥을 보니
맞은 편 집 앞
신문이 놓여 있다.
계속 題字로
경기 하강에 대하여 나온다.
어려운 시절이다.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무엇보다
인간에 흐르는 정에 대한 문제로도
지독히 어려울 듯한 시간이다.
마치
목을 죄고 있는
어떤 존재가
갑자기 쥐어 흔드는 듯하게
심한 어려움 들이 몰려온다.
' 우리의 생명을 붙드는 자'가
우리를 노리는 것 만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생명이 위급한 듯해도
주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시다
그 분이 계시기에
우리 믿는 자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환란은
더욱 깨어 있길 바라시는
주님의 마지막 경고시다.
깨어 있어야 한다.
말씀 안에 든든히 서야 한다.
주님의 평강 안에 서야 한다.
회개 해야 한다.
마치 수십년 전
우리 조선이
아무 것도 없이
주님을 영접하고서는
오늘까지 일어 섯듯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하인도 그렇다.
아..
오늘 ..
여기까지 인도하셨던
그.. 그 하나님이 ..
나를 돕기만 하시면
또
다시 전진할 수 있다.
적용
1. 불안한 마음은 아무 것도 아니다.
어쩌면 불안은 '내 '위치에 대한 욕심이 흔들릴 까..하는 두려움일 수 있겠고
어찌하면 남에 대하여 가져야 할 당연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죄책감의 내적인 표현일 수 있다.
주님 안에서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두려움은 의지하면 이루실 것이고
죄책감은 거짓임을 우리는 안다.
마땅히 할 것은
주님을 의지하고 얻는 '평강'이 있어야 하고
장래를 위하여
주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 뿐이다.
현재를 두려워하고
생명을 붙드는 자들을 의식할 이유가 없다.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한다.
그게 누구든..
그리고 기도해야 한다.
서로를 위하여.....
기독교인의 마땅하게 할 일은
정죄가 아니고 비판이 아니다.
내려놓고 기도할 일이다.
2. 성경 여섯 장 읽겠다.
3. 주님은 나의 돕는 자시다.
기뻐한다.
4. 주님은 나의 구원자 시다.
감사한다.
5. 주님은 나의 판단 자시다.
믿고 의지하고
내 머리 속을 비우겠다.
6. 주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은 내 말 하나하나를 귀기울이실 것이다.
든든하다.
감사하다.
묵상하겠다.
기도
주님
주님은 나의 구원자 이시고
주님
주님은 나의 판단 자 시며
주님
주님은 나의 돕는 자시고
주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
주님은 나의 말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분이실 줄 압니다.
주여
나의 하나님이시여
참 감사합니다.
주님
살아계신 주님으로 인하여
제 삶은 가벼워 지고
제 생각은 고요해지고
제 인상은 부드러워 지고
아직은 덜 하지만
조금은
제 혀가 더 온유해 지고 있음을
고백드립니다.
주님
이제
이 나라를 보소서.
그토록 쉴새 없이 달려오며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발전해온 이 나라가
휘청 대고 있습니다.
도우소서.
회개할 것은 회개케 하시고
잡을 것은 잡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