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모든게 사랑 탓이셨다 (요12:20-33 ) 본문
제 12 장 ( Chapter 12, John )
제
드릴 것
이 돌단풍 꽃처럼
적고
또 적지만
그래도
그래도
주님 말씀 순종하며
제 사랑
제 기쁨
이 만큼
모았나이다
주여
작지만
제 정성
받으소서
주의 기뻐하심 만큼
풍성하게 보여지길
간절히 원합니다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하나이다 왜
무엇 때문에
이들이 등장했을까?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이 들 이름 역시 왜 갑자기 기록 되었을까?
거기에 순서는 또 무슨 의미로 기록이 되었을까?
알수가 없다.
아래에 전개 되는 이야기랑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이런 구절이 처음 보는 듯 내 눈에 걸린다.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주님은 '영광을 얻으실 때가 왔다'고 하신다.
뜬금없이 .
그리고는 위의 사람들 얘기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처럼 묻혀져 버린다.
그들의 나타남을 들으신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는 당당하신 듯 하다.
그러나, 아래의 내용을 읽어가면
그 내용이 당당 보다는
인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미리 아심으로 인한 '두려움'이 읽혀져
비감한 어투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분은 밀알의 이야기를 하시며
많은 자들에게 교훈의 이야기를 멋지게 비유로 하시지만
실은 그 밀알이 썩음은
당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올라가 죽으실 수 밖에 없는
엄청난 희생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교훈이지만, 가슴아픈 교훈이다.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예
주님 맞습니다.
하지만, 말씀이 스스로 다짐하는 듯한 톤이시라서
십자가의 사건을 아는 우리로서는 '悲感'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드디어 예수님이 당신 속의 깊은 속내를 말씀하신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다.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이 때를 면케 하여 주소서.'
그러면서도 즉시 포기하시는 예수님을 뵈올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때를 위하여 왔나이다.'
사순절 한 가운데 .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토록 비감한 모습을 보이신다.
그 비감 안에는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실 것인지 아시는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시기에 더욱 비장하다.
계속 이해가 가지 않는 첫 세구절의
몇 몇 사람들의 등장은 어떻게 이해할 까?
주님이 그들의 등장을 보시자 마자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으시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당황하지만
그 안에서도 처절히 인내하시고 고뇌하시며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그 모습을 보아 느껴지는 것은
' 저 들의 등장이 본격적으로 십자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신호탄'이심을
하나님께 미리 예언으로 받으셨던 모양이다.
부족한 영성의 나는
그리 추측할 수 밖에 없다.
어쨋든
성경의 이러한 묘하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님이 숨겨놓은 말씀의 비밀의 단초가 숨어 있던
그동안의 인도하심을 볼 때
만일 이러한 나의 추정이 맞다면
과연 무엇을 느끼게 하시려 하시는 것일까?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느껴지는 부위가 없어
이 부분을 묵상하려니
주님의 고뇌가 느껴져 오려 한다.
하나님이시지만
너무도 온전한 인간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도 '극한의 고통 앞에서는 두려우신 것이시다.'
왜 그러실까?
왜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겪으셔야 하실까?
실은 십자가 고통은 하루면 끝나지만
그 십자가의 운명을 아시는 예수님이
그 인생 33년 동안
째각째각 돌아가는 듯한 시간의 흐름에
얼마나 살을 여미고 칼로 베이는 듯 공포를 느끼셨을까?
그게 더 힘이든 심리적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33년의 시간을 지내고
눈 앞에서 '찰칵'하고 열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그 싸인인 '헬라인 몇과 순서대로 제자들이 들어옴'이 이루어지자마자
예수님의 인성은 극도의 고통을 받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고뇌가
그 분의 말씀으로 전해져 나온다.
그 안에서도 절제를 하려는 그 노력이 정말 눈물 겨우시다.
누구에게 표하지 않으시려고
마지막 단 일분 일초 마져
그동안 그러셨듯이 '교육'의 기회로 삼으시려 하시고
머리가 굳어 버릴 듯한 고통 속에서도
또 비유로 말씀하시는 두뇌의 움직임을 써야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한줌 신음을 발하시는 것이실 것이다.
'아.........주님.
할 수 있으시면..................
....................
'''''''''''''''''''
그러나......주님 뜻이시면......'
주님은 오늘 예수님의 고뇌를 묵상하길 원하신다.
그 분이 얼마나 날 사랑하시었는 지를 묵상하길 원하신다.
그 분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의 결과인지
그냥 머리로가 아니고
가슴으로 같이 느끼길 바라시는 것이시다.
그 공감의 자격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보다는
구원 받은 자 중에서도
선택받은 소수에게 그리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실 것이시다.
그리하여
그 '십자가 사건의 키'가 돌아가는 모습을
깨달을 수 있는 자들은 깨닫게 하는 것이다.
적용
1. 예수님의 고뇌를 묵상하자.
2. 그 분의 그 절제를 묵상하자.
3. 그 분의 그 터지는 탄식을 묵상하자
4. 그 분의 순종을 묵상하자
5. 그 순종 안의 그 놀라운 사랑을 묵상하자.
모든 게
사랑 탓이었다.
이처럼
주님이 고뇌하시는
그 이유도
오직
다 미련한
이 나를
구하시기 위한
사랑 탓이시었다.
아 !
그 거역하지 못하시는
순종 탓이시었다.
그 분은 그러셨다.
십자가를 지실 것임을 아셨다.
그 분은 그러셨다.
신음소리 제대로 내지 않으시려
입술을 깨물으셨었다.
그럼에도
입술을 스치며 나오는
그 탄식의 소리까지는
막을 수가 없으셨던 모양이시다.
그 모든게
오직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 탓이셨다.
6. 조신하자.
겸허하자
말을 줄이자
주님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자.
7. 많이 아는 자들의 책임감을 인식하자
주님은 아시었기에 더 고통스러우시다.
모르는 게 약이긴 하지만 상급이 적다.
8. 성경 일곱장 읽겠다.
9. 예수님도 두려워 하셨다.
나도 두려워 했다.
주님은 나의 마음을 다 아신다.
기도
주님
사순절입니다.
어려운 일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어제는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의 담낭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오늘은 십자가 사건의 키가 드디어 열려
구원의 대 역사가 발동되기 시작하는 '첫 단추를 보고 있습니다.
그 싸인을 보시며
고뇌하시는 예수님의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습니다.
모든게 사랑 탓입니다.
주님
이 미련한 나를 위하여 그러셧습니다.
이제
곧 있을 십자가가 세워짐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몸으로 받으실 것이십니다.
저희는
구경을 할 수 있을 뿐,
주님 예수님의 그 비감함을 감해드릴
아무런 재주가 없습니다.
이제
그냥 내가 주를 위해 해드릴 것은
주님 예수님의 아프심을 공감해 드리고
그 분이 날 위해 그러심을 감사해 드리고
그냥 그 분이 아프시기에
오늘 하루
조용한 가운데
예수님의 그 아프심을 묵상하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
당신의 아픔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을 감사히 여깁니다.
주님
당신의 그 순종을 사랑합니다.
이제
아주 적은 지력이고
거의 없다시피한 사랑이지만
주님 곁에 그냥
조용히 앉아 있으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