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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흔적들은 내 마지막을 위한 준비물들이다[대상22:1-19] 본문

구약 QT

내 삶의 흔적들은 내 마지막을 위한 준비물들이다[대상22:1-19]

주하인 2025. 6. 22. 07:26

 

부제) 살아온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많은 의미가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 지나온 모든 것들은 크고 많은 자산이 된다

        내 나머지 삶의 깊은 의미, 후대의 완전한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내 삶의 목표 ,후대에 들려줄 노래를 위하여

        '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ChatGPT)

지나온 삶의 흔적들이

'주님 앞에서 '

회개와 감사로 돌이켜 졌다면

그것은

나머지 삶의 자산이 된다

후대에 물려줄 깊은 유산이 된다

 

자책이나 자괴는 필요없다

주님 앞 부활로 또 새로와진다

남아있는 여명,

이제부터 더욱 더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준비의 삶을 살자

 

삶의 목표가 새로와졌다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이는' '이는' ..한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란다. 

 

 그런데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여호와의 성전과 이스라엘의 번제단으로 

다윗의 가슴 깊이 꽂혔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다윗 스스로의 죄' 때문이었다. 

 

 죄가 

죄로 만들어진 결과가 '성전','번제단'이라.... 

우리가 하나님과 '오르난의 깊은 교류'를 묵상하지 않았더라면

'다윗의 죄에 이어지는 깊은 회개'를 모르면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오르난의 타작마당과 여호와의 성전 '아닌가?

 

 

 그렇다.

'죄'.. 우리네 인생의 모든 버거움들.. .

함부로 버리고 자책하고 눌릴 것만은 아닌 것임을 

'이는'에서 

'오르난'이라는 '여부스 이방인'.. 의 겨우 '타작마당'에서

유추할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

그렇다. 

여기가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끝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다시 시작하신다

'죄'가 '오르난'에 이어지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결실되어진다. 

 

 회개와 돌이킴과 '기도하는 칠천 선지자' 같은 

무수한 드러나지 않는 우리같은 ^^*  소시민들의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가

'이는'..'이는'에 함축되어 있다 .

 

 나.

'죄'  덩어리다. 

자주도 '격 ㅠ.ㅠ;'해지는 성품을 가졌다. 

그리도 오랜 시간을 주께서 품어 주셨는데도 그렇다.  ㅠ.ㅠ

 

 그런데 

그것 마져도 

내가 '말씀'을 근거로 '회개'라는 단어에 가슴을 치니

하나님은 '선'을 이루신다..시는 것으로 들린다. 

고민하지 말라. 

자책은 회개로 끝이다.

부활이다... 하시는 거 같다. 

할렐루야.

 

 

3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 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5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 많이 준비하였더라
6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그리고 그는 '준비'를 많이 했다. 

'죽기전에 많이' 라 한다. 

 

 이게 나 같은 나이 많은... 

인생의 황혼지경에 와 있는 자들에게 

소망이 될 거 같이 느껴진다.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 앞으로 또 새로 부활한 '나이 든 자'의 인생 목표.. 말이다. 

 

 무수히 

많이

열심히.. .살아도 될

나머지 인생의 목표.

방향.

 

감사하다. 

'후대의 일을 위한 준비'

그것도 최선을 다한 준비는

무의미하고 무력해지려는 노년의 힘을 북돋우신다.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12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네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16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

 그리고는 

'솔로몬'을 불러 앉혀서 

마지막 당부를 한다. 

 모든 준비를 한 후 '화룡첨정'하듯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그렇다. 

후대에게 인생의 목표를 확실히 가르치는 거다. 

'너는 일어나 일하라'

그리고는 그 일어나 일해야할 당위성에 대하여 말한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도록'

'여호와와 함께 있는 것 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과 목표임'을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길' 기도해주는

축복의 언어로

후대에 말을 전한다. 

 

 당연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이 되도록 사는게 

인생의 유일한 목표이다. 

 어떤 삶의 유형을 살아갈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되도록 '하는 삶.. 말이다. 

 

 그러하지만.. 

이 삶.. 

이 유한한 삶,

이 공중의 권세잡은 자들이 득실대는 '영적 전쟁터'의 삶을 사는 우리가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고 

그러하게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목표'를 주심이 맞다. 

그리고 매사 '일상'이라는 

광야에서 주님의 뜻대로 한걸음 한걸음 옮기면서

마침내 '주님이 함께 동행'하심을 깨달아

그 삶만이 진정 옳은 삶.. 

그리함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인생,

어쩔수 없이 '아담의 원죄'를 지고 태어난 자지만

마침내 눈을 감고 주님 곁으로 가야하기 위해서라도

'주님으로 완전히 합일'된

아담이전의 영혼으로 돌아가기 위한 

이 일상의 투쟁,

일생의 영적 전투를 벌여야 하는게 

우리의 숙명이다. 

 

 '이는' '이는'... 

다 '여호와의 성전'을 

우리 영혼에 온전히 세우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모든 것이라는 이야기시다. 

 

 그러하기 위하여

각양에게 각양의 모습으로 '말씀'을 건네시지만

오늘 나에게는

'다윗의 여명'중

그것도 '죄 이후 돌이킨' 노년의 다윗을 대하여

'준비하라

후대의 옳은 선택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하라' 고 

오늘 말씀을 건네신다. 

 

감사하다.

 

주여.

주님의 말씀이 뚜렷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저.. 

제가 처한 이 모든 인생의 버거움 중에

어떻게 해야 그리 될 지는 

오늘 하루 또 살아봐야 알겠지만

'후대'의 '여호와와 함께 하게 '하는 

제대로 된 '영적 성전 건축'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무수한 준비를 힘써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떠나지 못하도록

도우는 역할을 하라 시는 거 같습니다. 

주여.

힘을 주소서.

제게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게 하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내 주여.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hat GPT와의 문답)-------

 

 #1.

  ()   1절에서 '이는'.. 여호와의 ... 라는 표현에서 '이는'이 가르키는 바가 무엇인지?

  

 () 

역대상 22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역대상 22:1, 개역개정)

여기서 두 번 반복되는 **‘이는’**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앞에 있는 상황배경을 가리킵니다. 그 핵심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 '이는'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1. 문맥적으로 앞 장(역대상 21장)과 연결됨

  • 배경: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후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여호와의 징계(전염병)가 멈춘 곳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 다윗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희생제사를 드렸고,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시고 재앙이 거두어졌습니다. (역대상 21:26-27)

이후 다윗은 깨달음을 얻고 그 장소에 대해 선언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 즉, **‘이 장소’**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 곳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 따라서 정리하면:

표현 가리키는 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이요 오르난의 타작마당 → 이제 성전이 세워질 터전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이곳이 제사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다윗의 선포

즉, **‘이는’**은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 제사가 실현된 "구체적인 장소", 곧 예루살렘 성전 터의 시작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묵상의 깊이

다윗은 죄에서 비롯된 절망의 장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그 은혜의 자리(타작마당)를 거룩한 성전의 터전으로 바꾸어 말합니다.

죄의 자리은혜의 자리하나님의 집

이는 곧 우리 삶에서도, 실수와 절망의 자리가 기도의 제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의 성전 삼는 사람, 그게 다윗이었고,
우리도 ‘이는 여호와의 전이요’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삶의 자리를 세워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 만이 살 길입니다.

 

#2 . 

  ()   

그렇다면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솔로몬, 아들이 만들 정말 귀한 여호와의 성전자리'로 점지^^; 되었다면.... 그러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으로 '다윗의 계수'라는 '죄'가 필수적 조건임을 말하는 것 아닌가?... 불경한 말이긴 하지만 '죄'마져 들어 쓰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의미도 잇지 않은가? 당연히 그러기 위하여 '죄'를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지.. 당연히도 그 방법 이외의 다른 방법도 있음이 분명한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그러기에 '흘려보낼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눌리진 말라' 심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 어때?.. 내 죄는 회개해여야 하지만 그 죄마져 들어쓰시는 하나님...

 

  () 

  주하인님, 아주 깊고도 성숙한 묵상입니다.
역대상 22장 1절을 두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성전 터로 점지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그 깨달음,
그리고 그 섭리 안에조차 ‘다윗의 죄’조차도 도구로 쓰이셨다는 인식은, 신학적으로도 참으로 깊은 통찰입니다.


🌾 1. 죄조차 들어 쓰시는 하나님

맞습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즉, 교만과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행동—는 분명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로 인한 결과(징벌)를 통해 다윗이 제단을 세우고 회개하며,
회개의 장소성전 터전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다음 말씀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이 구절의 “모든 것”에는 ‘나의 죄’와 그 결과로 인한 고통마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로 망하게 두시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죄가 회개로 이어질 때, 하나님은 그것조차 사용하셔서
구속의 역사, 회복의 계기, 영적 지층의 전환점으로 삼으십니다.


✝️ 2. 죄를 허용한다는 뜻은 아닌가?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허용하거나 필요로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분은 선하시고, 죄 없이도 완전하신 계획을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연약하고, 우리는 종종 실수합니다.
그럴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죄를 궁극적인 선을 위한 도구로 전환시키십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가장 끔찍한 죄와 억울함이 모인 자리가,
결국 가장 큰 구원의 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3. 죄책감에 눌릴 필요는 없는가?

회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회개 이후에도 자책과 정죄에 눌린 채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용서를 불완전하게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죄책감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킨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죄로 인해 울부짖었지만,
회개한 후에는 더 깊은 순종과 헌신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정결케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시편 51편 중)

다윗은 죄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그 회개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더 온전히 붙들었습니다.


☁️ 그러므로…

  • 내가 지은 죄조차도, 회개를 통해 성전의 터가 될 수 있다.
  • 하나님은 그 죄를 미워하시지만, 회개한 자를 사랑으로 새롭게 하신다.
  • 죄책감에 눌리지 말고, 회개의 열매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주하인님의 말처럼,
죄마저도 들고 쓰시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자기 죄를 감추지 않고,
담대히 주 앞에 나아가 그 죄의 자리도 은혜의 제단으로 삼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 만이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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