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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사 본질을 보는가[요5:1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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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사 본질을 보는가[요5:10-18]

주하인 2017. 1. 16. 10:16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유대인들이

병 나은 '기적'을 보지 않고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뭐라한다.


'본질'과 '비본질'

이 미련함.

그런데 이 미련함을 매사에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런거다.

' 성경'을 들고 교회가느냐 '스마트 폰 앱'만 가지고 가느냐?

찬양을 할 때 두손들고 눈감고 하느냐 조용히 하느냐...

예배드리러 갈 때 양복을 입느냐 잠바를 입고 가느냐...

비본질이 항상 중요치 않다고 적극적으로 무시하는 것 도 문제가 있지만

본질인 예배와 하나님 안에서의 '감동'을 유지되는 예배가 본질이지 않던가?

비본질은 본질의 감동을 배가하게 되면 할 수도 아니 할 수도 있다.

난.. 그 근거를 말씀에 의한 그날그날의 레마에 어느정도 의지한다.


그런데..

진정 매사에 내가 그리 옳을 수 있는가?


 아버지의 역할.

자녀들과의 관계.

남편으로서의 역할.

옳은 방향의 교육과 옳은 감성을 위하여

진정한 가장으로서의 나.

그게 본질임에도 난.. 내 위신이 들어가지 않나?

그 비본질을 위하여 가족 구성원에 과도한 무게를 강요하지는 않는가?

 

의사의 역할

환우와 의사의 관계.

진정으로 그분의 병을 고치기 위한 모든 것이 본질이지 않던가?

거기에 혹시 내 위신이 들어가는 비본질이 스며들어가지 않는가?

그래서 그 위신을 위하여 '떵떵 땅땅 '거리지는 않는가?

..

비단 나... 이런 ㅇ...관계 뿐이던가?

세상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모든 '갈등'의 근원이 아니던가?

이 미련함.

이 어리석음.. ..그것을 고민하지 말라고 꼬득이는게

포스트모더니즘이고...


이 비본질과 본질 사이에서

왜 미련한 저들의 저 미련함이

일상에서 버젓이 일어나는가?


 모두 '내 기준'이 아니겠던가?

자꾸만 '나..'  '나.. ' '나..' 가 기준이 되니 그렇다.

내 기분에 맞지 않고 내 기준에 틀리니...

나를 알아달라고 몸부림치는게 아니던가?


 어제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이 그러셨다.

롬15:1  '약한 것을 담당하고' 라는 구절의 '담당하고'가 참고 인내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며

타인의 실수를 '포용' 해주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남들의 약함과 부족함을 받아 들이는 것이 그것이고

그 것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진 '이유'라고

즉,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라고..

 이 큐티 방, 이 블로그에서 15년 가까이 주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지.. 싶었다.


그게 본질이다.

본질은 ' 하나님의 영광'을 이 삶속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 것은 바로 내 눈 앞에 지금 있을 수도 있다.

내 형제로 , 내 자식으로 , 내 아내로, 내 환우로, 내 동료로..

그런데 난..

비본질에 사로 잡혀

본질이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그 귀중한 보물인

내 ... 그들을 백안시 하고 잇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소경이 눈뜬 것'같은 기적을 가지고

나를 보면 바라봐주길 바라는데... ^&*().. ㅠ.ㅠ';;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게 '병'이다.

'영적인 병'이다.

그게 소경이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비본질에 묶여 사는 것.


어제..

말씀을 통하여

'네가 보고자 하느냐'라고 하셔서

'보길 원한다'고 기도햇다.

내 안에 저항이 많았다.

아직도 내 억울함, 내 속상함, 내 기분이 .. 날 사로잡고 놓치 않으려 했다.

내 기준에 맞지 않아서 '핍박'하고 고치라 하고 싶었다 .

그러나.. 그것을 내 힘으로 안되니

이제는 ' 말씀' 앞에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십자가 '앞으로 모조리 끌고 가야 한다.

다행이도 로고스 하나님이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하시고

오늘은 '나를 낫게한'..이라는 나은 나를 확인 시키신다.

그렇다.

난..

본질을 보려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나'를 내려 놓을 것이다.

어렵지만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니 된다.

때가 되어 이리 정리되어 하시니 그렇다.

이전에 수도없이 지나치던 말씀에 또다시 레마로 이렇게 잡아서 말씀하신다.

'본질'이신 하나님 뜻 만 바라보고

그 뜻대로 생각하고

그뜻에 맞추어 느껴지고...

나머지 어이없는 감상이나 감정 반응은 모조리 주님께 맡기어서

그분 성령이 없애주실 것임을 믿는다.

감사하다.


주님


이제 더 본질에 가까워져 갑니다.

머리로 ,

내 생각과 의지로

내 배움으로 이겨내려던 것들...

그러다 confusion되어 버리던 것들..

그러면서 내 안에서 차가운 나름의 합리로 위장된 궤변으로 익어가려던 것..

주님이 이렇게 다시 건드리시고

다시금 주님의 역사를 내 영혼 안에서 시작하십니다 .

아직..

생각과 세상의 조화에서 어떻게 각론으로 맞추어갈 지 잘 모르겠습니다.

배워 본적이 없던 새로운 행태의 과정이 예상이 됩니다.

내 얼굴 근육이 어떻게 힘을 잡고 coordination되어야하는지

내 목소리 톤은 어찌 올라갈지

내 그들에 대한 옳은 생각을 어찌 전해야 할지

내 말투, 내 행동, 내 앞으로의 그러함에 대한 계획들..

생각하면 정말 배운적없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그래서 '안식일을 깨뜨리는 예수님 일행'의 기적에 대하여

미련하게도 흥분하는 결과가 올 수 밖에 없는게 우리의 미련한 운명이지만

아.. 제 그러함이지만

주여.. 다행이도

그동안 수많은 내 속의 변화의 승리 경험들이 있사오니

또 주님께서 그리하실 줄 믿습니다.

아.

소경이 눈을 뜬 후에 얼마나 많은 인생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야할

새로운 지경에 대하여 갈등을 했을 지요.

그리 생각하니

내가 낫고

나를 낫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그것으로 '확'하고 '행운'으로 마무리져 가는 소설이 아니군요.

그러니 .. 다행입니다.

주여.

그래도 '본질'을 깨닫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

그 과정에서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게 정답임을 확신하는 방법을 깨달았으니

주여... 감사합니다.

힘이 되고 너무 감사합니다.

내 주여.

현실의 나는 .. 아니지만

내 장래와 내 영혼의 그 결국은 '소망'입니다.

내 주여.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본질을 깨닫는 회복을 주시니 감사합니ㅏ.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랜시간 ... 주님이 붙드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죽어 주님 뵐때까지

이 말씀을 통한 코람데오의 삶을 놓치 못하도록 하시고

매사 매일 매시 '회복'을 주시옵소서.

주여.

매사 본질을 보게 하는 지혜와 능력으르 주소서.

더 나은 영혼의 성숙을 이루게 하소서.

그리될줄 믿사오며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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