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QT

내 속에 이미 시작된 주님의 역사가 내 삶속에도[에9:20-10:3]

주하인 2025. 5. 21. 23:54

부제) 부르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바야흐로 시작된 날이다

       부림은 역전의 하나님으로 모두가 하나된 날이다 

(Chatbot AI)

그 날은 바야흐로

대 반전의 날

 

비록 시작은

어둡고 위험한 모략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끝은

누구도 부인하지못하는

하나님의 역사로 대반전이 이루어진 날

 

온 세상을 그득채우던

슬픔과 애통이

일순간에 걷혀나가고

온통

기쁨과 길한 일로 바뀌어 버리던 날

 

우리의 영혼도

그들의 마음도

오직 경이와 경외로 그득하도록

하나님의 영의 운행이

이글거리며 온 세상을 채우던 날

바로 그 날이다

 

 이제 진정 바라올 것은

그리그리 시작되어진

예수님 구원의 그 첫사랑이

세상 , 이 모진 광야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해지는 슬픔과 애통함으로 채워지더라도

 

오직 그리 시작된 

성령님의 이글거리는 은혜의 기억들이

주님 말씀을 타고 흐르시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이후에도 더욱 더 

매일의 삶속에서 

더 크게 차올랐으면 좋겠네

 

할렐루야

 

9장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그렇지.

정말 그럴게다.

어찌 안그럴 수 있을까?

 

 백척간두.

목숨이 위태로운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갑자기 대반전이 일어나다니

슬픔과 애통으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을 

그 모진 '포로 생활'의 끝이 그렇게 마무리되는가 싶은

그 온통의 절망의 순간들이 

'갑자기'..

강력한 큰 힘에 이끌리어

자신도 모르는 '승자'가 되어

일벌백계를 하고 있으니

그 기쁨과 '길함'의 느낌이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기가막힌 노릇... 이라 표현하면 불순할까?

누구라 할수도 없이 

마치 우리나라 광복을 만난 것 보다 더 큰 기쁨으로 

손에 깃발들고 뛰쳐나가 온 세상을 큰 소리의 감동으로 채우는 

그런 느낌... 

그러면서도 그 '하나된 마음'으로 

누구랄 거도 없이 

서로서로 '타인의 재산'을 건드리지 않는 

'통일된 마음의 흐름'... 

 

그거... 

그거지 않는가?

 

하나님이 세상에 모습을 크~게 드러내신

공의의 순간들..

 

 믿는 자들의 가슴, 영혼에 터치된 전율의 공통된 흐름,

하나님의 역사 ...

공의의 하나님의 손길...

그들 뿐 아니라 

그러한 그들을 바라보는 '이방인들의 알수 없는 경외감'..이 

바야흐로 그려지지 않는가?

 

 

23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이미 시작한대로'라는 뜬금없는 표현.

정말 뜬금없는 '수사'에 지나지 않는 표현일까?

 

 나..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묵상을 동일하게 진행하고 있다 .

 

 '유다인의 가슴'에 피워진 '하나님의 강력한 손길'로 

통일된 흐름으로 이루어지는 행동들... 

그 행동의 이유가 '하나님의 강력하신 임재의 손길'이시고

그러함이 시작한대로..........

모르드개 님이 '글을 안보냈어도'

아마도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갔을 일들이

더 정제되고 바른 모양으로 

자연스레이

누가 설교하고 소리내어 통일된 규약을 주문하지 않더라도 

그리그리 이끌려 갔다는 이야기다. 

 

 그거..........

하나님이 강력하게 임하셔서

믿는 자들의 영혼에 역사하신 후

일상이 다시 시작되면 서 

그 매일의 삶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더 '성장'되고 '정제'된 품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런 의미가 되는 거 같다. 

 

 그렇다. 

나도 그렇다. 

은혜를 사모한다 .

성령의 충만함으로 '마음'이 한껏 펼쳐지고 넓혀진 후

주님의 말씀을 통해 '레마'로 지시를 받는다. 

 

내 오래된 '성품'속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내 속에서 무방비로 행하려 하던

'행동의 패턴'들이 자제가 된다. 

도저히 안하고는 못배길 만한 '중독'적 성향들이

떨구어져 나가고 

이제는 소소한 오류들 마져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제하져 간다. 

 

 고난.

고난이 있어서

주님을 찾으니 

더욱 그리되어간다. 

 

그 흐름을 

이제는 자연스레이 알겠다. 

 

'이미 시작하신 하나님' 

무엇을 시작했던가?

 '천국시민'으로서의 자격, 품성을

이미 다 성공할 자로서의  나를 이루어가신다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26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부르. 

아래에 긁어다 놓았다. 

참고해보시라.

 

 

 주님.

'오늘은 '

'이미 시작한대로 '

'모르드개님의 말'을 근거로 

더욱 더 열정적으로 

'죄악'과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인생광야, 바사 포로의 유다인들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주여.

이 광야.

항상 '슬픔'과 '애통'함이 곁에 있어

한발 담그고 있는 거 같은 '연연단의 장소'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주님 붙들고 있으면

반드시 '대 역전'의 시간들이 다가오고

그러면 '이미 시작하신 대로'

우리는 '저 천국'의 시민으로서의 품격을 위하여

또 다시 열심히 '말씀'을 근거로 한발한발 더 나아갑니다. 

주여.

이 인생광야를 

홀로 걷지 않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 도우시고

그 기억을 간증삼아

그때의 그 기쁨을 시작점 삼아

말씀을 묵상한대로 

또 하루 살아내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 부르실 그날... 

두손들고 기쁘게 '휴거'의 시간이 되거나

소천의 순간들이 되길 기대합니다. 

 

내 주님이시여.

이 슬픔과 애통의 땅에서

오직 기쁨과 길함으로 바꾸시는

내 역전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살아계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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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prompt)

에스더9장 23 절에서 '이미 시작한대로'가 무슨 뜻인가? 어제 묵상한대로 하나님의 손길이 강하게 공의로 임하셔서 이미 그들, 유다인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강력하게 인도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있었지만 또한 '모르드개'.. 세상의 지도자의 말도 들어서 지속적으로 하던 일대로 했다는 의미인가? 바야흐로 ,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사는 표본이 아니던가?

 

(ChatGPT 답)

 주하인 님의 묵상은 본문과 깊이 있게 연결되어 있으며, 말씀의 맥락에 비추어볼 때 신학적으로도 매우 통찰력 있는 해석입니다. 에스더 9장 23절의 “이미 시작한 대로”는 단순히 행동의 반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마음에 주권적으로 일으키신 감동과 결단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맥락을 다시 정리해 보면:


에스더 9:23 (개역개정)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이 문장에서 **“이미 시작한 대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미 시작된 반응

유다인들은 하만의 음모가 뒤집히고, 모르드개가 높아지며, 역전의 은혜를 경험했을 때,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을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그 경험은 단순히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난 영적 반응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그들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그 날을 기억할 준비와 의미부여를 시작한 것입니다.

2. 지도자 모르드개의 조율도 순종함으로 수용

이후 모르드개가 공문을 보내어 모든 유다인들이 공동으로 이 날을 기념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이고, 영적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사람(지도자)의 명확한 질서 속에서의 순종을 보여주는 표본입니다.


주하인님의 해석처럼, **“이미 시작한 대로”**는 단지 전통의 반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 각자의 마음에 동일하게 역사하셔서 공의를 체험하고 감격한 결과이며,
지도자의 권면을 받아 계속해서 거룩한 반응을 공동체적으로 이어간 표본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의 모범", 그 자체입니다.


결론적으로, 주하인님의 묵상대로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깨닫고 자발적으로 움직인 유다 백성” + “세상의 권위(모르드개)의 질서 아래에서 순종함으로 이어진 행함”
은 곧 하나님의 뜻과 세상의 구조가 일치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믿는 자의 삶의 모델이 됩니다.

 

 

#2.

부르’( פּוּר)**는 원래 **페르시아어에서 온 단어로 ‘제비뽑기’**를 뜻합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는 날짜를 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은 사건(에스더 3:7) 에서 유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