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QT

내가 당한 일로 그리스도가 더욱 존귀하게 [빌1:12-26]

주하인 2025. 5. 23. 23:49

 

 

 

.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내가 당한 일' 

 

 가슴 떨리는 일.

 어제..이곳 . PT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집에셔 유트브로 금요예배 드리고 

'축도 예배 ' 끄치는 순간,

격렬한 두드림과 더불어 아주 거친 - ㅈㄱ인이나 ㅈㅅㅈ 동포로 의심이 강하게 되는 ㅠ.ㅠ- 이웃의 항의와 마주하게 되었다. 

 평시에 , 오랫동안, 자주 하던 '예배'라서 

큰 신경 안썼는데 '이웃'에서 보기에 아주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그제야 '아차'했다 

날씨가 격변되면서 '베란다' 문을 열고

그러고 보니 '문'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는지 

현관을 나가면서 보니 문이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 소음처럼 나갔던 모양이다. 

 

 소위 수모를 겪었다. 

항의라 하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준의 거친 언사.......ㅠ.ㅠ

 

거기에 *&^(*&... 

더 이상 깊이 설명하기 어려운 몇가지 문제들이 

'당한 일'로 기억되기에 충분한 트러블을 동반해온다. ㅠ.ㅠ

 

최대한 온건한 말투로 대응을 하고 진정을 시켰다. 

'예배' 직후의 잘못 오해로 

가득이나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불순한 '이단' 모임으로나 비칠까 

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지'로 그랬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나름 잘 '마음'을 정돈하고 그랬다. 

 

마음이 혼돈 스러운 것을 사실이다. 

미운 마음, 쪽팔리는 마음, 속상한 마음,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깨달아 지는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이유로 참아가게 되는것,

내 인성이라는 이름하에 흐르는 불쑥 거리것을 정제 하려하는 결심.. 

그 하나만 가지고도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라는 나름 다행한 생각도 한켠에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말씀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겨우 자기 전 옮겨 놓은 구절에서 

"내가 당한 일" 

진전.. 이라는 단어들이 눈에 들어옴을 보고

복잡한 머리를 뉘였다.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아침에 일어나서도 한참 동안을 멍하게 되려 했다. 

'억울함' 속상함, 그리고 요며칠 신문지상에 나오는 ㅈㅅ족동포 사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하는 거나 옷이나 .. 옆집 그 분이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아주 오랫동안 옆집 사람은 우편물, 쓰레기 문밖내놈..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던... 뭐.. ㅜ.ㅜ- 등이 떠오르며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잠시 묵상을 했다. 

하나님의 내게 원하시는 뜻... 의 일환,

그리고 말씀을 통해

'내가 당한 일'이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데 

하나도 지장이 없음,

도리어 어찌되었든 '전파' 되는 것이

'그리스도'라시는 말씀...

거기에 '도리어' 기뻐하고 기뻐하라시는 말씀이

하나로 꿰어져 온다 .

 

 이전 같으면 '전파' .. 복음 전파.. 전도.. 에 대한 말씀의 부담으로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이 일상의 소시민과 괴리... 로 받아 들여졌을 것이

오히려 오늘은 좀 다르다. 

 

 어차피.. 저 분에게 가서 '더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복음의 태도를 취하라.. 심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것.. 그렇게 된다면 또 하나의 간증거리긴 하겠지만

그보다는 '위의 고백' 처럼

'내가 당한 일'이 

내 영혼 깊숙이 그리스도께서 자리잡는

'도리어'의 유익이 될 거라는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그래서 '위안'이 되었다. 

도리어 기뻐하여도 될 만한 

대 반전은

이러한 어이없는 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이를 참으면 아름다우나 ' 하셨던 

말씀과 일맥상통하며

내 안에 '말씀'이 더 '품성'으로 자리잡는 기회가 되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근거로 

금새 일상에서 '평화'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기뻐하고 기뻐할 일 아니겠던가?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나는 정말 많이도 고백해왔지만

'부끄러움'이 많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에 대한 수치감'.. 

우울 전문가 ㅜ.ㅜ; 였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참 좋았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정확히 알아진 것도

주님 안에서 복이다. 

그 기대와 소망소망을 가지게 되면

'아무 일에도 부끄러워 아니'할 당연한 당연함을 가지게 된다. 

 

 어제 당한 일.

분명히 부끄럽고 속상하고 빙빙 돌 일이 맞다. 

그러나, 주님 일로 마음을 돌리면

담대해도 될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온전히 담대'해지기 시작하는

말씀을 붙드는 이 아침이 감사하다. 

 

 점차 '내 몸'.. 

이 부족한 '영혼'을 실고 다니는 

이 늙어가고 부족한 '육신'..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그러한 가능성을 마주하게 되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잇다는 말인가?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라

이는.. 

나는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는 ' 일상,

내게 사는 것은

또 그렇다고 쭉 평안으로 유지되지만은 아니할 거다. 

 

마음이 들쑥 날쑥.. 

롤로코스터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아셔서 그렇다. 

'사는 것을 그리스도로 살게 되니'

'죽는 것도 유익'함... 

자아를 십자가에 달고 죽어봄을 기뻐함... 

오늘은 또 그렇게 

내 영혼에 

그리스도가 깊이 전파되는

하루를 살아봄도 괜찮지 않은가... 하신다. 

 

철저히 말씀을 근거로.. 

성령을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고 ... 

그것을 기뻐하는 체험하며.. 말이다. 

 

할렐루야

주님.

알람 울린지 오래라 출근해야 합니다.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절 '내몸에서 '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상의 실제적'의미-------

 

주하인 님, 빌립보서 1장 20절 말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 말씀 안에 담긴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라는 구절은 깊고도 실제적인 고백입니다.


1. "내 몸에서"의 헬라어 원문 의미

  • "ἐν τῷ σώματί μου" (엔 토 쏘마티 무)
    → "내 육체 안에서", "내 육체를 통해", 혹은 "내 존재의 드러남을 통해"라는 뜻입니다.
    즉, 단순히 육체적 신체 기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의 모든 존재 방식과 삶의 현장 전체를 포괄합니다.

2. 사도 바울이 의도한 핵심

  • 바울은 지금 옥중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자기의 구속 상태와 죽음의 위협, 또는 자유와 생존의 가능성 모두를 두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자기 몸을 통해 존귀하게 되시길 원한다고 말합니다.

즉, 죽음을 통해서든, 삶의 사명을 통해서든
자기 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3. 우리 삶에 적용되는 의미

주하인 님이 느끼신 것처럼

"육신을 가진 나는, 주님 앞에 의미 있게 드릴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내 몸'이며,
이 몸이 예수께 드려져 예수 안에 있고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는 상태"

이건 복음의 가장 실제적인 표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몸을 통해,

  • 내가 하는 말
  • 내가 움직이는 손
  • 내가 인내하는 고통
  • 내가 드리는 수고
  •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이 모든 것으로 예수가 드러나고,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이 ‘내 몸’을 통해 존귀하게 되신다는 것

이는 내가 나 자신을 자랑하거나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이기 위해”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늙어가고, 병들고, 고난받는 그 순간조차도,
그 안에서 예수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드러나는 것
— 그것이 바로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5. 주하인 님에게 주는 적용의 말

하나님은 지금도 주하인 님의 몸을 통해,

  • 이른 새벽에 밭으로 향하는 발걸음,
  •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손길,
  • 손녀를 품에 안고 축복하는 눈빛,
  • 외로움과 대인관계의 한계를 기도로 바꾸는 시간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시는 중입니다.

주님의 진리는 삶의 연기나 개념이 아닌,
몸으로 살아내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