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불러주실 이름[대상2:1-55]
부제)오직 의미있는 이름은 주님께서 불러주실 이름 뿐이시다 잊지말자
다시한번 말한다 주님 안에 있으면 모든게 의로워진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도 나도 의로울 수 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그가 그들이 주 안에 있느냐 아니냐 뿐이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로 형성되고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훨씬 더 많은 이름으로 얽히고 섥히지만
모두 의미있는 이름들은 아니며
그렇다고 모두 버려야 할 이름들도
또 아니다
그 중
'조상들'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이 인생광야 인생드라마의 주연급들은
주님이 아신다
그렇다
솔직히 세상 사는 것
이 세상에 바둥거리며 드러내고자 하는
그 수없는 존재들의 이름 들 중
관심있고 의미있는 것은
주님이 불러주실 이름 뿐이다
그러기에 주하인아
함부로 자책하고 자괴하지도
또 함부로 타인을 향한 손가락질도
하지 말거라
옳다 옳지 않다 하실 분은
오직 주님 뿐이시기에 그렇다
나는
그는
그들은.. 다만
허락받은 이 잠시의 인생광야 중
우리네 삶의 스토리로
최선다해 올려드릴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 판단
내 이름을
그들의 이름을
기쁨으로 호명하실 분은
주님 뿐이심을
오늘도 또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한다
그게
다윗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꾸미는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한
가장 핵심의 이유다
4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
5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9 헤스론이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10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11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
12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15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오늘 말씀 길이는 자그마치 '55절'이다.
그리고 그 길고 긴 구절을 '이름'으로만 그득채우신다. ^^;
대략 중복된 이름을 정제하고 살펴봐도 80-100명 사이라네..C.가..ㅎ
하여튼 이름이 많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이름들..
어제와 이어서 의미있는 이름들- 유다, 다말, 보아스, 이새, 다윗까지... - 이 '몇명' 눈에 뜨인다.
그리고 그들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어가기 위한 나머지의 이름들이 그렇게나
많이 채워진다는 사실이 의미가 있다.
정말 .. 다윗이라는
걸출한 인물 홀로 만이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의미없어 지워버려도 될 인물들"이 맞는가?...
그리고 그 의미있는 이름 중에는
'다말과 시아버지 유다'라는 인물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묵상에 이어서
그들은 '조상들'...
하나님이 크게 관심을 두고
역사를 위하여 이 땅에 지속되어진
광야 인생드라마의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그 드라마가
현대의 포르노 급이라는 거다.
인권.. 도덕..
뭐 .. 그런거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절대로...
때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어
하나님의 시선에서
인간의 스토리 중에서
쓰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죄덩어리.. 추악함.. .으로 그득그득한 내면을 가졌으면서
아직도 이렇게 '구원의 자식'으로
스스로를 받아 들이고
이 나이까지
이렇게 ..
날이갈수록 더..
소위 평강이라는 단어의 진실 안에서
같이 누리고 살아가고 있음이 아니던가..
나.. 말이다. ^^;
보라.
그 다말과 유다..
그들 사이의 아들의 혈통을 통하여 태어난
다윗.
다윗과 밧세바...
기생 라합...
모두 우리네 시선 - 세상의 첫영걸.. 이스라엘보다 먼저 정비된 나라 에돔의 왕의 기준으로 보면 얼마나 엉터리인가? 하지만 그를 통해서 더 드러난게 '조상들' 아니던가? .. 어제 묵상에서.. .-으로 보면
정말 ... 어이없는 .. 일이지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이시다.
다시한번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으로 돌아와
나를 바라본다 .
내 안에...
그렇게나 많은 생각의 오류들로...
죄덩어리.. 추악하여 견딜 수 없었던
자책과 자괴 덩어리인 나..
그래서 '젊은 시절'.. 아주 많은 '장해물'들을 지고 살아야만 했던
'우울 전문가'.. ㅠ.ㅠ..
그러한 내가
주님의 시선,
주님의 절대적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말씀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고
'성령의 은혜'로 인도하시어 여기까지 오게 하셔서
마침내 '내가 나를 바라볼 때' 조차
이젠 기억도 나지 않을 '조용함'이 내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그러할 수록 커지는 '평안과 평강'의 마음,
덜 흔들리는 ...
초연함에 가까워지는 그러함을 허락하여 주신 거 아니겠는가?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나도모르는 깊은 자괴와
타인에 대한 우월 감 내지 'ㅎ오 ' 비슷한 감정이
완전히 스러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러신다.
" 주하인아.
네 오늘,
네 조상들 중 하나로서의 자격이
네 혼자의 옳음으로만 이루어졌던가?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옳고 옳지 못한 세상의 많은 이름들 중에
네가 들어 씌여지고 선택되어진거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 .. 시는 거 같다.
그리고 ..
절대로 '시간 속에 갇힌 유한한 ' 존재인 내가
함부로
타인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뜻인양
"너는 안되.. 저 사람은...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포르노 영화의 주인공 같은 유다와 다말이 없더라면
다윗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다윗이 없어도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선 '예수의 계보'를 이으셨을 것이지만..
하여튼 오늘 이시간 나는 ..
다른 모습 ,다른 시간대에 서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지금의 나..
주님의 선택 구원 받은 내가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가는 내가 있게 하신 것은
다윗의 존재의 실재로 가능한 거 맞다... ^^*
그리고 그 모든 '옳음'의 기준은
하나님의 시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정죄'도
함부로 용서도 가능치 않은 오류다.
무조건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길 기대해야 한다.
속상하고 힘들고 버겁지만
하나님이 가르쳐주실 때까지
더 내려 놓고 기다려야 한다 .
때로는 수대를 내려가고
수천년이 지나야 이해가 되는 문제들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함부로.. 정죄하지 마라.
하나님 만 바라보라
하나님이 날 '조상들'의 반열에 올려주신 것
그것만으로 감사하고 살아도 될
충분한 조건들 아니던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필연이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매개체이며
과정 중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바라보고 살며
온전히 순종하나 안하나 보시는 것 만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진정하신 뜻'이란 것을
이제는 확실히 아오니...
주여.
제게
우리에게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런 나를 깨닫게 되면
자괴하거나 자학 대신
말씀이 있으시니
주 앞에 나와 어서어서 회개 부터 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주님..
수없이 많은 인생의 만남 중에서
어차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인생 스토리를 꾸미는 이름들로 되고야 말겠지만
그 이름이 '조상들'로 밝혀지는 그때가 되기까지
절대로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정죄하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
오늘 말씀의 주제가 그것이 맞을 듯하오니
주여.. 레마로 깊이 받아 들이게 하소서
오직 주님.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우리..
오직 하나님 영광을 드러냄만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맞음을
영혼 깊숙이 인식하게 하소서.
그리 또 하루 살게 하소서.
주님 부르시는 나머지의 매일들이
긴장보다는 준비..
주님 날을 맞이할 준비로
말씀을 근거로 최선다해 살게 하소서.
많은 이름으로
많은 인생의 부딪침들이 오고 가고 하겠지만
과정에서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말씀대로 세상을 주목하는 기쁨을
주께 드리게 하소소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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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mpt)
역대상 2장을 보면 무려 55절을 이름으로 가득채우네... 낳고 낳았고 낳아서 낳았다... 등등... 거기에 보면 '유다의 며느리 다말'과의 통정, 비록 처음엔 속아서 유다가 가까이 했지만 두 아들을 얻었다는 것은 그 후에도 관계가 지속되는 데.. .현대에도 나쁜 포르노의 스토리로 쓰일 이 희대의 못할일을 통해서 생겨난 것인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제 말씀에 이어 '조상들'.. 이라는 하나님 시선에서 의미있는 '가치'를 가진 '주연급' 인생 스토리 라인을 통해서 , 세상의 가치와는 조금 다른 정말 중요한 '조상들' 라인에 '다윗'을 서게 하심이 오늘 주신 말씀의 요점인 거 같아.... 그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저리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씌여져야 했을까? 이해가 잘 안되어.. 단지.. 나처럼... 그래도 말씀을 근거로 레마를 깨달으려는 자들을 통해 '보석 찾기'.. 보물찾기 하는 것 처럼 주시려는 그러한 의도 말고는 깨달아지는바가 없어.. 도움 줘...
(ChatGPT답)
주하인 선생님,
오늘도 정직하게 말씀을 마주하고 묵상 가운데 질문하신 걸 보며, 허벗으로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말씀하신 역대상 2장은 거의 한 장 전체가 계보(족보)로 채워져 있지요. 그 가운데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사실 창세기 38장의 파격적인 사건이죠—그 충격적인 이야기마저도 하나님은 계보 속에 숨겨 놓지 않으시고, 오히려 정식으로 기록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1. 왜 이렇게 많은 이름을 나열하셨는가?
첫째, 하나님은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쉽게 잊지만,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계보"가 단순한 정보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증명하는 핵심이었지요.
둘째, 하나님은 한 사람의 선택이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십니다.
55절까지 이어지는 계보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앙과 선택이 미래를 어떻게 결정짓는가"**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유다의 후손에서 다윗이 나오고, 결국 메시아 되신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이 계보는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2. 다말과의 이야기를 왜 숨기지 않으셨는가?
말씀하신 것처럼 이 이야기는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사건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도 다말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지요.
그 이유는,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들만을 통해 일하지 않으시며, 죄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통해 구속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말과 유다의 사건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이 중단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3. 왜 많은 이름을 기록하셨을까?
말씀하신 대로, 이건 마치 보물찾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겉으로 보기엔 지루하고 무의미한 기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레마와 메시지를 숨겨 놓으셨습니다.
예) ‘헤스론의 아들 갈미는 여라함을 낳고, 여라함은 엘가나를 낳고...’(2:25-26)
여기 나오는 이름 하나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계승자'**로 연결됩니다.
선생님이 찾으신 것처럼, 이런 묵상 속에서 우리는 다말이 단순히 실수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속에 깊이 참여한 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4. 결론: 하나님은 "조상"이라는 시선으로 보신다
우리는 인간의 기준으로 "잘한 사람", "흠 없는 사람"만을 보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계보’, ‘언약의 통로’를 보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다말도, 유다도, 룻도, 라합도, 다윗도 (심지어 밧세바 사건이 있던 다윗도)
하나님의 구속사에 편입됩니다.
이것은 곧 나 자신도 그 계보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내 과거의 실수도, 상처도, 실망도 "구속사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 허벗이 드리는 한 줄 묵상 제안:
"하나님은 나의 실패마저도 당신의 역사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내 이름도 기억하시며, 그 계보의 한 부분으로 부르십니다
->내 생각 )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한, 하나님의 이름을 잊지 않는 사람 곁에 있는 한...!!
말씀을 사랑하시는 주하인 선생님,
오늘처럼 이름만 가득한 장에서도 보석을 캐내듯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 자세가야말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