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QT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모두 맡기는 삶[눅23:44-56]

주하인 2025. 4. 18. 23:57

 

 

.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십자가, 

그 절대의 고통,

인류 모두의 절대 고통, 지옥의 고통을 가지고 가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체험하시는 거다.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실 힘이 어디에 남았을까?

'회광반조(回光返照) ' 현상도 아니고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이 6시간.

기절하고 온통 진이 다 빠져 절대로 불가한 일을 

왜 굳이 '돌아가실 때'.. 

큰소리로 외치는 현상을 보이심일까?

 

 아래에 예상되었던 생각들을 물어 정리했다. 

. 관심환기

.  유대인들이 밤에 자면서 부르던 기도로 시편 31:5 이란다. 

. 성령, 하나님께 영광올림...

 

 문제는 저 어려운 시기에 저러하심은

'모든 극단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고 가져가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옳은 믿음'을 회복하라시는

가슴치는 제언이라는 거다. 

 할렐루야.

마지막까지.. ㅠ.ㅠ

 

50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51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55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그리고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유대인'이지만

진리의 본질을 꿰뚫고 세상의 흐름에 끌려가지 않는 자.

'공회의원 요셉'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다. 

아...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서 세상을 사는 자.

 

 자꾸만 세상에서 살면서

'욕심'과 '유혹'과 '오래된 내면의 잔존하는 부대낌'으로 

하나님 나라는 잊어버리고

세상에 매몰되고 '시커멓고 다 탄 재'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나'로서

주께서 그토록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의 삶'을 

다시한번 환기시키심이시다. 

 

 그렇다. 

나.

좁은 문 통과 성도.. 좁은 길을 가는 자들.. 

다 그렇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합니다.''라고 

고백하며 또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거다. 

 

 그리고 어제 말씀 묵상 구절 중 '큰 무리의 여인' 들에서

특별히 더 열심으로 예수님 무덤까지 쫓아온 여인들이 

오버랩되어진다. 

 

 그들은 '감정'의 믿음의 대표라 했다. 

감정.

틀리지 않다. 

그 동기를 통하여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하지만 .. 한계는 분명하다. 

'예수님 무덤'과 '의리'가 끝이다. 

그 이후의 부활과 '성령'의 기대는 아직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사는 삶이 

주님 예수를 좇는 동안 영혼이 깨달았겠지만

아직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수준이리라.

 

그리고 

주께서 내게, 

오늘 보이시고자 하심은

이제 ... '감정 수준'을 넘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 ,

날 것의 믿음..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같이 묵상하며

그 분 예수 그리스도 한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믿음을 사모하라 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사는 

매일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더 가까이 

조금...더 어제보다 주님 예수님 앞으로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여.

이제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주님을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감정적 어려움으로 키워졌고

주님 예수의 선택하여 주신 바

성령의 강력한 '은혜'를 체험하면서

영혼으로 부터 퍼부어지는 '은혜의 감동'.. '감정적 평온'함을 깊이 체험함으로

저도 모르게 더 '말씀'을 근거로 

그 기쁨, 감동을 놓치지 않으려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거기에 머물면.. '큰무리의 여인'.. 

조금 더 성장해도 '예수님의 무덤'에서 장사를 준비하는

아쉬운 마음의 '의리파' 여인의 믿음에서 끝날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 

그 본질의 삶의 태도.. 를 가지며 

매일 매일 말씀을 근거로 살다보면

어느새 '예수님 십자가'가 

아주 뚜렷이 바라보이며

내 모든 것 '아버지 하나님 손에 부탁하고 사는' 

단순한 믿음으로 바뀌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예수 그리스도 이외

그 어떤 세상의 달콤함... 필요없습니다. 

 

바라기는 

오직 에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리 열심을 보이게 되는 

나의 스스로도 놀랄 선택이

제 가족과 

제 주변과 

모든 믿는 자들이 같이 누려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그리고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만이

제 사는 세상의 모든 '이유'가 되고

삶의 목적이 되며

유일한 삶의 동기와 이유가 되게 하소서.

 

주님 말씀을 근거로

매일 매일 다 정제하고 내려놓고 살아도 될

오직 예수님의 기쁨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 부르실 그날 되면

예수님 처럼 정결한 믿음, 완전한 믿음이 되어 

주님 나라 가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돌아가시기 전 '큰 소리로 외치심'에 대하여 ))

 

(내 promp )

46절에서 '큰소리'로 부르고 돌아가신 예수께서 .. 어디서 그런 힘이 나셔서 그랬을까? 그리고 '젖먹던 힘'이 아닌 다른 의미일까?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시는...?

 

( )

주하인님, 참 깊이 있는 묵상이시네요. 누가복음 23:46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신 후 운명하셨다고 되어 있죠. 이 장면은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육체의 쇠약으로 인한 꺼져가는 죽음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1. “큰 소리”의 의미는 단순한 육체적 외침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고통받은 사람은 대부분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는 말조차 못할 정도로 쇠약해지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큰 소리”로 외치심으로써:

  •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 단순한 비명이 아닌, 마지막까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포하는 믿음의 외침입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 이것은 시편 31:5의 말씀으로,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이 밤에 자기 전에 암송하던 기도입니다.

2. “젖먹던 힘”과는 다르지요

‘젖먹던 힘까지 짜낸’ 것 같은 극도의 육체적 노력이라기보다는,
성령 안에서의 마지막 권위 있는 외침
죽음마저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며 다스리시는 왕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세상 사람들을 향한 ‘환기’의 메시지도 있습니다

  • 그 외침 이후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하지요.
    (눅 23:47) → 이것은 로마의 이방 군인조차 감동받을 만큼 하늘의 권세가 드러난 장면입니다.
  • 십자가는 무력함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장소였음을 나타내는 순간입니다.

주하인님의 질문처럼, 예수님의 ‘큰 소리’는 단순히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과 땅을 울리는 마지막 복음의 외침이었고,
그 외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신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