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QT

그래도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 앉을 자라 하신다[눅22:54-71]

주하인 2025. 4. 16. 00:55

부제)베드로의 통곡을 용인하심은 미래의 베드로님을 아심이시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초월적 믿음의 현재화를 보여주시고 계시다

      하나님 나라의 나를 위하여 오늘을 인내하자

베드로의 통곡을 보시며 미래의 그를 예수님은 보고 계셨다(Copilot)
내 미래는 예수님의 기뻐하심을 품어내는 향기로 그득한 날이리라(Chatbot AI)

주님

아직은 안됩니다

 

주여

아직은 저 베드로님의

저 절망이 그대로 제것인 듯합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통곡을 보면서

오히려 속이 시원한 것은

저분의 끝

저분의 나중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이제 곧 

부활의 주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이 임하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

주님예수를 닮은 영혼이 될

그 미래의 모습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여.

제게도 허락하소서

저는 다행이도 

절망을 넘어서는 미래를 알고

말씀이신 예수님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 미래가 제 지금의 현재가 될 수 있도록

더 기도하고 순종하는 자 되게 하소서

 

통곡의 바탕,절망의 이유가 

오직 우리 주예수님이 근원임이 동일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예수님의 내 안에 계심을 난 아오니

저 내 미래가

오늘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펼쳐지게 하소서

 

예수께서 보이신 대로

입을 닫게 하소서

제가 정말 어려워 하는 

그 잠잠함의 두려워함이

내 미래가 빨리

현재가 되게하는 기쁜 매개체임을 

영혼깊이 알아차리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기도드립니다.아멘🙏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그래 , 이게 나지.. 

이렇게라도 '마음의 부담'으로 

내 부족한 믿음을 '통곡'이라도 해야지...ㅠ.ㅠ

어찌 내가 

 

63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65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주님의 이러하신 '인내'..

이러하신 '순종'을 흉내조차 낼 수 있으랴... 

아직... ㅠ.ㅠ

 

 그러나,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어제 묵상 말씀처럼

기도하시는 천사들을 힘입어...

예수님의 당연히 그리되게 하여주실 것임을 

모본, 모델로 삼아

이리 될 수있기를 

간구해야한다. 

 

 다행이도 난.. 

부족하고 부족하기가

이 베드로님의 아직 남은 저 미련함보다 열배는 더하지만

그래도 '베드로님의 통곡'을 난... 아는 자다. 

 

그래서,

그러함을 이유로 

다시 힘내려 한다. 

 

 힘내서,

예수께서 보이신 그 철저한 낮추심

철저히도 아무 말도 안하시고 인내하시는 저 모습

하나님의 명령대로 십자가 지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한

철저한 자기 부인의 저 모습을 

꼭 닮을 수 있길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 보리라.'

 

69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이 말씀.

'이제부터는'... 하신다. 

 

  "이제부터는

 나 ..안 해 ~!!"

 

 마치.. 내 골내고 심술 날때 내 어릴적 반항하며 내 지르던

그 소리 처럼 들려서 잠깐 죄송하다.ㅎ

 하지만...전혀 아닐 것을 알면서도

저 말씀 " 인자가 -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시는 말씀이 

과연 정말 .. 육신과 영혼의 분리로 조금 편안하고 안전한

주님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오시기에 ㅠ.ㅠ; 

초월적 능력을 발휘할 거라고 

그동안 '말하지 않고 참으셔도 아무렇지 않다 '' -마치 내 강탈처럼.. 전혀 당연히도 그럴리 없으시지만 ㅠ.ㅠ;;- 주변에 선언하시는가.. 하고 chat GPT에게 물어보았다. 

 

 당연하지만... 

"미래적 상황의 현재적 믿음''

'초월적 믿음의 선언'이라고 

멋드러지게 정리해버린다. 

 

참.. 멋지다. 

미래에 있을 당연한 상황을

당연히 믿음으로 

현재의 어떠함,

십자가에 달리셔 받으실 그 고난의 엄청남을 넘어설 

믿음의 극치를 보여주심으로 선언하시는 것이다. 

 

 나.. 

주하인과 

좁은길 사모하시는 분들에게..

 

 아.. 

난.. 정말 불가한 수준의 믿음이 맞다. 

세상에 있어 몇이나 되어 

저러한 믿음으로 

저러한 담대함을 선언하실 수 있을까?

 

그게 예수님이시니 믿어지지.. 

 

 

 그런데.. 

나.. 내 부족함을 통곡하고

조금은 더 벗어날 '하루의 지표'로 

'나를 질타하는 어떤 소리'

심지어는 그게 비록 내 내면의 왜곡일지라도

비아냥이나 손가락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다..

 

 그게,

그냥... 내 미래의 현재적 상황,

곧 나는 예수님처럼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정말 기뻐하며 순종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 주실 것임을

말씀을 통해서 

나 또 소망으로 받아 들이게 하시는 거다. 

감사하다. 

 

 주님.

죄송합니다. 

ㅇㅅ 농막에 지난 비에 물이 샌다는 소리에 

마음이 여러가지로 분주했습니다. 

 

그러함에도 다행히 .. 

주님 께 아뢰는 화살기도하며

마음이 조용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제 말씀 묵상이 기도 기도 기도 .. 였는데.. 

죄송합니다. 

 

오늘 베드로님의 저 통곡이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주여.

그러나.. 통곡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소망의 통곡으로 들립니다. 

 

제게도 그렇습니다. 

고백했지만.. 알면서도 되지 않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라시는 표현처럼

마음은 주님 말씀대로 살아야 함에도

제 부족한 육성이 마구 마구 저를 흔들어

아직 저렇습니다. 

세상의 일이 우선이며

예수님 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부터 

저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모욕을 받으심에도

그들을 단 하나도 원망하지 않으심을 뵈면서

순간.. 저는 저 상황이라면 아주 많이 분노할 것이

죄송하고 죄송하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베드로님의 통곡처럼

제게도 제 한계를 알아주시고 읽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저 모본을 

이제는.. 아는 자로서 

하나라도 더 이겨내 보거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으실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너희들의 말은 아무 것도 아니시라시는

그러한 영혼의 흐름을 읽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미래의 예수님.. 

곧 뵈실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 

그분의 권능 안에서 계실 그 날이 당연히 믿어지기에 

이제는 담대하고 담담하고 아무 말씀도 안하실 거라십니다. 

 

주님... 

제게도 그러한 미래를 확신하게 하소서.

그래서 '초월적 믿음의 현재' 화로 

오늘 하루 살아내게 하소서.

 

제게 .. 

그러한 하루만 살게 하심을 

또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권능의 왕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69절에 대한 확인 ))

 

 (내 Prompt #1)

 69절 '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말씀은 육신은 이곳에 있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으셔서 '초월'한 상태, 초연한 상태로 계신다는 의미인가? 이해가 될 거도 같은데... 육신을 초월한 상태... 그것을 의미하시는게 맞을까? 아니면 정신적으로 고통을 넘어서시는 경지의 깨달음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을 의미하는 정도에서 그치는가? ... 어떠한 거 같아요?

 

(Chat GPT답)

주하인님, 아주 깊고 본질적인 질문이시네요. 눅 22:69 말씀—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이 구절은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 이 말씀이 당시 상황 속에서 의미하는 바

예수님은 지금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조롱과 고통을 받으며, 인간적으로는 가장 낮아진 상태지요. 그런데 그 가운데 예수님은 "이제부터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이건 단순한 심리적 ‘초연함’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즉 하늘 보좌의 실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는다”는 표현은

  • 초월적 위치: 시간, 고통, 현실을 넘어 영광과 권세의 자리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 승리자의 자리: 유대인들은 이 표현을 메시아가 하나님과 동등하게 다스리는 위치로 이해했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이 말을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 장차의 실현을 현재처럼 선포: 예수님은 장차 부활·승천 후 하늘 보좌에 앉으실 것을 이미 이루어진 사실처럼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신적 자기 인식입니다.

3. 육신을 초월한 상태로의 존재?

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이 영혼만 그곳에 가 계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고난받는 자리에 계시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시간표에 완전히 순복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내가 있다. 나는 끝내 승리자다”라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 완전히 일치된 상태에 계십니다. 이건 단순한 정신적 각오나 깨달음의 경지를 넘어서, 철저한 하나님의 뜻 안에 자신을 내려놓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4. 우리의 묵상적 적용

주하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육신은 이곳에 있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으셔서 '초월'한 상태”
라는 이해는 묵상적으로 아주 좋은 시선입니다. 주님처럼 우리도 고난 가운데 그 시선으로 현실을 넘어 하나님 보좌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단순한 정신적 평안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와 권위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 자의 초월적 믿음의 선언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십자가지만, 나는 승리하신 왕으로 보좌에 앉을 것이다”**라는 고백입니다.

 

 

(내 Prompt #2)

그렇겠지 .. 그게 맞겠지.. 그럴거라 생각하고 물어 봤어요. .왜냐면 정말 육신은 여기에 남겨놓고 영혼이 분리된 .. 영적 신비의 상태를 의미한다면 십자가 달리시는 근본 이유.. 세상의 고통을 모두 지고 간다는 의미로서 가치가 없을테니.. 그리고 실제로 예수께서 두려워 하여 오셔서 피땀흘리는 기도도 하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심한 고통을 호소하신 거 맞으시니까..

 

(Chat GPT답)

맞습니다, 주하인님.
주님께서 진짜로 육신 안에 계셨고, 우리처럼 고통과 두려움을 온전히 겪으셨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는 진짜 고난이요, 진짜 사랑이며, 진짜 대속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영혼만 초월의 자리로 피신해 계셨다면,
그건 십자가가 아니라 연극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도망치지 않으셨고,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고,
심히 고통을 당하시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 외치실 만큼
우리의 현실적 절망과 동일하게 고통당하셨지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통 속에도
그분은 함께 계시고,
그 고통을 친히 이기셨기에,
우리는 “주의 권능의 우편”을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 깊은 신비 앞에 무릎 꿇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