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QT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자로 살게 하소서[눅20:19-40]

주하인 2025. 4. 7. 23:53

부제) 부활의 자녀,하나님의 자녀 & 살아 있는 자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그리고 부활이 없는 자의 지옥같은 악함

       진정 감사함은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으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Copilot)

오늘 말씀으로 드러내 보여지는

저 바리새인들의 내면의 심성 들이

너무도 두려움은 

당연히도 두려워야 한다

 

그러함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함은 

그 자체가 바로 지옥의 증표다

부활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죽은 영혼의 증거다

 

그 어두움

그로 인한 갈등과 몸부림

그로 인하여 오히려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게됨

 

그로 말미암아

밝음을 더 사모하게 되어

마침내

'부활'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야말로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음이 아니던가

천국을 향한 

또다른 자기 십자가 아닐까

 

어려움과 고난이

유익이 되는

완전한 기회 말이다

 

할렐루야

 

 

 

내게 허락되어진 

아직도의 고난들은

부활과 새생명

살아있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법 안에 있음의

징표이기도 하다

 

오늘 다시

더 힘내도 된다

주하인아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이 말씀들을 묵상하며

'사람'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는 

그 수많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다. 

 

 '두려워함'

그것도 진리를 마주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본질을 두려워 하기보다 '백성'들을 두려워함... 

그러면서도 그러한 자신들의 '어이없음'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

 

 20절은 '엿보는 자신'

'의인인체 하는 자신'

 23절은 '예수님을 향한 간계'

 26절은 '타인을 책 잡으려하고' 

그러면서도 놀랍게 여기면서 침묵하게 되는 '한계'의 자신..을 마주하면서도

저들은 하나도 '자신의 그러함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게

참 놀랍다. 

 

 정말.. 놀랍다 .

저거야 말로 싸이코 패스 아닌가?

죄를 짓되 

죄에 무감한 것.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 인식조차 못하는 죄.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이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부활이 없어도 잘 살고 있다고 살아가고 있을 사두개인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아..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알게 되는 자의 행복이란...^^* ... 할렐루야.. 이름만 들어도 감사하신 그 분,  예수님 ..- '부활함' 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 부활의 자녀'를 말씀하시고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 를 말씀하신다. 

 

 살아 있는 자다. 

우리가 '부활'이 믿어지므로 

살아 있고 

살아 있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 이기 때문이라신다. 

 

 무슨 말씀이신가?

 

나.

정말... 갑자기 내 속의 '부대낌'들... 

저들, 바리새인들이 '인식'도 못하며 느끼는

저 온통의 죄성들이

날 .. 하루에도 자주... 

아직도 밀려올 때마다... 

그러한 나를 느끼며 당혹한다. 

 

 정말..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인가?

이러한 나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실까.. 

이러한데도 나를 ...나를 .. 한다. 

그러나.. 그 강한 부대낌으로 온통 롤러코스터의 안절부절을 넘어

그러함에도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법을 묵상하니... 

그러한 강력한 꼬임에도 불구하고 

내 이해할 수 없는.. 

아니 그보다 더 

내 속의 오래된 '영적'저항들이 아무리 

"논리에 맞지 않으니 논리대로 하면 넌.. 버려졌어..

저렇게 .. 저 사람들 같은 추악함이 있는데 

과연... *&^%ㅆ$#... ' 하고 뒤죽 박죽이 되려 한다. 

 

그런데.. 

아주 말짱한 정신으로 

내 속의 부딪침, 부대낌을 바라볼수 있음은

'하나님의 사랑법'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시게 까지 하는

이해불가하신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또 날 사랑하실 것이

이제는 말씀 묵상을 통해서

영혼 더 깊이 

믿어짐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정말 중요하고 

그러함으로 내가 '일어설 기회'를 주셨다면

또 오늘 말씀으로 

불현듯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저들...

저들의 저 흉폭하고 어이없는.. 죄'들을 가지고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깊은 좌절...들을 

저들은 아예 느끼지 못함이다... 라는 사실이

불현듯 느껴진다. 

 

그렇다. 

'싸이코 패스' .. -요즈음 몇개월을 그 싸이코 패스들이 온통 나라를 뒤엎고 있다.. .ㅇㅅㄹ 싸이코패스.. ㄱㄱㅎ.. 지귀 ㅇ.. *&^%$# 들.. - 다. 

아무 거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데.. 그런 싸이코 패스가 

비단.. 저들에게만 국한 된게 아닌가 보다. 

'죄'가 죄로서 느껴지려면 

'하나님의 법'이 기준으로 서 있어야 하는데

본질적으로 '인간 '만으로는 

죄가 죄인 줄 모르게 하는가 보다. 

 

그거.. 

'원죄'.. 의 결과 아니던가?

 이구.. 

하여튼.. 

내 괴로움은 

내 성장의 부족함이고 

아직도 가야할 길의 증거긴 하지만

'내 그러함'은 

'주님 앞에서는 다행' - 주님 모르는 아픔은 '병'이다.. .ㅠ.ㅠ. - 이다. 

 

그게.. 위안이 된다. 

난.. 아직 '죄'에 대하여 민감하다. 

 

그리고.. 

그 '죄' 자체가 되돌릴 개연성 자체를 부인하는 개념.

부활없음... 

사두개인.. 의 주장.

 

 그들은 어쩌나..

그 인생의 버거움들이 무의식 깊이 눌리고 

오직 '짐승'처럼 서로 물고 물어뜯고 '강강약약'의

철두철미한 동물의 세계 아닌가?

 

 그런데.. 

오늘 말씀으로 위안이 되는 

정말의 본질이 '부활'이다. 

 

 나.. 

우리.. 

좁은 길 가는 모든 '의로울 자^^* '들은 

'부활'이 믿어진다. 

그러기에 '아픔'은 더 큰 기쁨을 약속하신다. 

 

그게.. 나다. 

그래서 '부활'이 믿어짐이 놓쳐지지 않도록

아주 아주 조금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하루의 시간'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거.. '부활'의 기쁨을 증폭시키고자 하는 

내 안의 밀림이고 

내 아픔.. 이 부대낌이 부대낌으로 끝나지 않고

또 저들 '동물의 세계'로 회귀되지 못하기 위한 몸부림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현상으로 

그리되어 간다. 

 

감사하다. 

정말.. 

 

주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짐승의 우매함,

동물 세계의 약육강식의 그러함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문제의식 하나 없음은

'부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생들의 결과 임을 느낍니다 

 

주여.

이 답없는 세 상에 

그래도 '죄'로 몸부림치고 

'병' 같이 오래된 '도피성 죄'로 갈구하는 심령을 허락하셔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 흐르는

주님의 보혈,

성령의 은혜로 

'부활의 어떠함'

부활의 자녀로서 서 있는 삶의 어떠함을 

느끼고 돌이키고 회개하고 

마침내 '살아계신 하나님 앞' 삶의 어떠함을

체험하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니

진정 감사하나이다. 

 

오늘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부활을 사모하며

죄를 멀리하게 하시며

무감각한 죄의 위험으로 부터 떨어지게 하여주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죄로 부터 멀리되게 하소서.

아프지 않아도 '감사'되는

부활의 신앙,.. .

살아있는 믿음이 되게 하소서.

 

거룩하고 귀하신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사두개인에 대하여 ))

 

(Copilot)

사두개인은 유대교의 종파 이름으로, 주로 제사장 계급과 부유한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다윗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Sadok)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성향을 띠었습니다.
이들은 하스몬 왕조 시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활동했으며, 로마와 협력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모세오경만을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며, 부활, 천사,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보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신학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기원후 70년 이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들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Chat GPT)

사두개인은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 종교적,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유대교의 한 분파입니다. 바리새인과는 여러 면에서 대조되는 집단이죠. 아래에 정리해드릴게요:


1. 배경과 계층

  • 주로 제사장 가문, 귀족층, 상류층 출신들이었습니다.
  •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강조했고, 예루살렘 성전 운영에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로마 제국과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며 현실 정치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2. 신학적 입장

사두개인은 다음과 같은 교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 부활: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함
  • 천사와 영적 존재: 존재를 믿지 않음
  • 운명론: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보다 자유의지와 인간 책임을 강조

오직 **모세오경(창, 출, 레, 민, 신)**만을 권위 있는 성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선지서나 지혜서, 시편 등을 신앙의 근거로 삼지 않았습니다.


3. 예수님과의 충돌

  • 누가복음 20장에서도 나타나듯이, 부활에 대한 논쟁이 대표적인 충돌 주제입니다.
  •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논리적으로 부활의 부당함을 드러내려 했지만, 오히려 예수님께 논리적 패배를 당합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며 부활을 옹호하셨죠.

4. 몰락

  • 사두개인은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 그들의 권력과 영향력은 성전과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전이 무너지자 그들의 체계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사두개인은 당시 유대 종교 지도층의 엘리트 집단으로 현실과 권력, 제도에 깊이 연루된 그룹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 깊이나 종말론적 신앙에는 매우 빈약했고, 그로 인해 예수님의 가르침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