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그러함도 나의 이러함도[창37:1-17]
이 나무
오랜 세월을 기다리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이 있었을까
세찬 바람을 피하려 애쓰고
내리는 서리에 몸서리 치며
온통 분개만 했더라면
저 지는 해의 빛조차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그 담대함과 풍성함이
또 가능했을까
모든게 하나님의 뜻
어째도 주님의 선물
그것을 믿으며 지내온
인고의 시간들은
그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훌륭한
영육간의 양식은 아니었을까
감사하며 살자
하늘 만 바라보자
주님은
막장의 세상마져
가장 아름다움으로 만드실 것이다
( 2014.10.30(http://blog.daum.net/kbclmy/13417652) 묵상글에서 따옴)
2.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솔직히 요셉 형제 중 하나였더라면
요셉은 미웠을 것이다. ㅜ.ㅜ;
4.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거기에
그를 편애하는 아버지가 있으면
요셉은 많이 미웠을 것이고
그런 가족 중의 나는
버거웠을 것이다.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그 요셉이 꿈을 꾸고
개념없이 ^^; 함부로 지껄이면 (내 생각 ㅠ.ㅠ;;)
더욱 미웠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11.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시기가 나고
질투가 되고
저러하게 자라날 동생 요셉이 한편
세상에 적응 못하는 자 될 것을
불쌍히 여기(아마 조금 ... 조금이지만..^^;;) 거나
그의 그러한 장래로 고소하게 여기기도 하는 (미리 예측해서.. )
양가의 감정들이 횡행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했다' 한다 .
창세기에 나오는 아버지 역할들이
대부분 그리 훌륭하지는 못하던 바
야곱 역시 형제의 우애를 위하여 노력하기 보다는
일방적 편애를 하는 경향이 있는
비교적 지혜롭지 못한 아버지 (아버지로서...^^;) 이긴 하지만
그의 영적 성향은
요셉의 요셉다움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간직해 두었더라'고 나온다.
의미하는 바가 있지 않던가?
우리는 안다.
요셉을 통하여
'가족'이 구원을 얻어 심한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새로 한 민족을 이루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지구적 역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결국 수천년 후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남의 바탕이 되었음을..
그런데 또한
요셉의 저러함,
저런 밉상의 행동은
과연 그의 심성에 밉게 태어났을까?
아니다.
그는 영적인 사람..
하나님의 인도하심 대로
그냥 꾸밈없이 그대로 행동하였으나
그것을 '관계'.. '인간 속의 관계'에 들어가
그것이 단점으로 인식되게 만들어지고
그를 통하여
요셉이 결국은 모진 고난 후
국무총리가 되어
현재의 우리에게 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는가?
다행이도.........
그렇다면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본다.
나.
스스로 참.. 그랬었다.
수도 없이 늘어 놓았지만
별로 스스로 맘에 안들었었던 시절을
오래 지나오면서 많이 갈등했었다 .
주변.
내가 보는 주변.
솔직히 .................죄송하지만.......
그랬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나.
재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과 다른, 그들보다..한.. 나를 바라보면서
한편의 두려움과 더불어 피하고 싶은 상대였을 것을
미루어 짐작한다. ㅠ.ㅠ;
각설하고
그런데
그러한 내가
지금 돌아 보면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그러한 면은 있지만
그러진 않다.
요셉이 그런 면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남은 또 어떤가?
그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던가?
우리.
인간들은
관계를 해가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과 마주하는 각각 자신의 일부분과 타인의 일면 만을 본다.
그리고는 그게 전부인양
그를 인식하고
그에 맞추어 대응하면서 살아간다 .
때로는 강한 충격이나 성향, 이벤트 등을 촉매로 하여
그들의 관계는 파국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파국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처참한
가족 중의 모의 된 살해의도..............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이들, 정말 귀한 믿음의 계보에서 일어나고 있다 .
여러 생각들이 마주하게 된다 .
위에 늘어 놓은 대로
바라보는 '그'가 정말 '그'인가?
느껴지는 '내'가 정말 '나' 맞는가?
그를 통하여
내가 행한 잘못들은
과연 정말 '죽어 마땅한 ' 죄일 뿐이던가?
그들을 통하여
내게 주어진 '그 어떤 나쁜 일'이 정말
나쁜 일일 뿐이던가?
개념없이 행하는 그가
그리 행함에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를 바라보는 내 안의 '질시'와 '당혹감'이나 '좌절' , 혹은 '열등감'은
정말 쓸데 없기만 할까?
그렇다면
그들........그런 부정적 생각과 마음에는
난 어찌 대할 것이던가?
그 어느 것도
'답'이 없다.
주님의 뜻을 제외하고는
살아서 존재할 가치도 없는게
우리들이다.
이 가족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죄'들이 횡행하며
얼마나 많은 비극과 어려움들이 존재하는가?
아무리 애를 써도
삶은 그 고난을 벗어날 수 없다 .
그것, 아담의 원 죄 이후로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이땅이 힘듦과 어려움 뿐이고 죄뿐이라면
이곳이 '지옥'과 무엇 다름일겐가?
오늘 이후의
요셉들에게서 펼쳐지는 현상을 보면
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와 .....그러함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구원과
우리의 구원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 세상사람 모두가, 나도
그런 죄를 짓는게 괜찮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주'안에서
긴 시간을 바라보면
하나도 버릴게 없었다는 이야기다.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정확히는 그들의 행동을 용서하고 )
나의 부족함을 용인하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게
책읽고 변화되어 버리는 게 인생이라면
어찌 세상이 이처럼 혼미할까?
몰라서 그럴까?
알아도 몰라지는 게 맞다 .
사단은 우리의 앎이 지속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우리의 앎을 무뎌지게 ,우습게 만들 거고
상황에 들어가면 까맣게 만들어
또 똑같이 질투하고 소리내고 위험한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다르다 .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도로 따르는 은혜를 기대하면 된다 .
나.
내 삶,
그리 녹록하지도
그리 자랑스럽지도
그리 내 세울 것 없지만
내 그리도 추악하고 질투심 많고 부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왔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은혜로
깨달음으로
그리 인도하신바
이제
말씀이 있으시면
깨달아지는게 늘어나고 깊어지며
은혜로 인하여
단 몇시간이라도 하루에서 더
그런 ,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내 안의 왜곡되어진 판단에 대하여
그리 당혹스러워 하고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미워하던..........
그 모든 일들이
점차로 짧아지고 있어
조금 있어
내, 주 앞에 소천 될 그날이 이르면
지금 보다는 더 성숙하여
옳게
크게 바라보고
더 사랑하는 시선,
더 인내하는 마음
더 기뻐하는 영혼을 지닌
그런 자 될 수 있을 거 같은
소망이 나도 모르게 돋는다.
주여.
저들
선택받은 가족이란 자들의 마음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비교와 질시와 살심(殺心) 이 있음을 보며
인간들은 어쩔 수 없어 .. 라 포기하고 백안시 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잠시 묵상을 하는 동안
그것을 통해
주님의 역사는 그래도 이루어 가심,
아.. 설령 그렇지 않아도
더 다른 방법으로 이끌어 가실
모든게 주 안에서 있으면
옳은 결과로 거듭나게 됨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
그들의 그러함도
내 자신의 이러함
이 부족하고 어이없음의 내재함을
그냥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 들일 수 있길 기대합니다
주여.
그런 부족함을 나 자신이나
그토록 주님께서 귀히 여기셔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사랑한 그들을
핍박하고 무시하고 좌절하지 않길 원합니다
내 안에 너무 오랫동안 자리잡아
알면서도 그리행하지 못하고
그리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못했으며
올바로 더 큰 주님의 뜻을 바라보며
인내하지 못했었음을 고백합니다.
내 주여.
오늘 말씀 묵상에
'그들의 그러함 나의 이러함'이라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들의 그러함 나의 이러함을 포용하다.. 라 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서 그랬습니다.
주여.
주신 말씀대로
그들과 나의 이런 부족함, 너무도 부족함에 ......
힘들어 하고 밀어내지 않도록 하소서.
그 안에서도
주님이 역사하심을 믿으면
다른 큰 인도하심이 느껴질 줄 압니다.
주여.
아시오매
제 문제.....
제 스스로의 문제
그의 문제
주님 주신 오늘 말씀대로
더 크게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시여
도우소서.
거룩하고 귀하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